(부활절 제3주)
진노는 잠깐, 은총은 영원
Anger for a Moment, Grace Forever
시편 30: 5–12
5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도다. 비록 밤에는 슬피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아침이 되면 기쁨이 흘러넘치리라. 6 내가 잘 나가던 형통의 시절에는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하였지만, 7 오 주여, 나를 어여삐 여기시어 산처럼 크고 든든한 은혜로 나를 지켜주시던 주님께서 그 얼굴을 돌려 나를 외면하시자, 나는 그만 큰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8 그때에 내가 주께 부르짖고, 주의 은혜를 바라며 간구하기를, 9 “주여, 내가 이렇게 죽어, 저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주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죽어, 한 줌의 티끌 된 자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주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10 하오니 주여, 내 간구를 들어 주소서. 이 몸을 어여삐 여겨 주소서. 제발 나를 도와주소서!” 하였더니, 11 그제야 주께서 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고, 나에게서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 옷을 입혀 주셨도다. 12 그러므로 내 영혼이 어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어찌 입 벌려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렵니다.(쉬운말 성경)
5 For his anger lasts only a moment, but his favor lasts a lifetime!Weeping may last through the night, but joy comes with the morning.
6 When I was prosperous, I said,“Nothing can stop me now!”
7 Your favor, O Lord, made me as secure as a mountain. Then you turned away from me, and I was shattered.
8 I cried out to you, O Lord. I begged the Lord for mercy, saying,
9 “What will you gain if I die,if I sink into the grave? Can my dust praise you? Can it tell of your faithfulness?
10 Hear me, Lord, and have mercy on me. Help me, O Lord.”
11 You have turned my mourning into joyful dancing.You have taken away my clothes of mourning and clothed me with joy,
12 that I might sing praises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you thanks forever!(New Living Translation)
교회력에서 부활절기는 7주간 지속되며, 이 절기를 보내고 나면 성령강림절이 옵니다. 지난주에 비해 한주 사이에도 더 많은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생명을 지닌 인간의 마음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칼빈(John Calvin:1509-1564)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감각이 인간 안에 내재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멀리하게 만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감각을 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한 시간에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삶의 예배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을 찾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은 복음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니다.
본 시편은 다윗이 심각한 질병에서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감사시입니다. 다윗은 6절에서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진술합니다. 30:6 내가 잘 나가던 형통의 시절에는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하였지만, 30:7 오 주여, 나를 어여삐 여기시어 산처럼 크고 든든한 은혜로 나를 지켜주시던 주님께서 그 얼굴을 돌려 나를 외면하시자, 나는 그만 큰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번영의 시기에 그 형통함으로 인하여 교만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자기를 과신하는 교만과 자만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시기를 다윗 통치의 말기로 봅니다. 당시 다윗의 왕권은 견고했고, 그를 위협하던 주변의 적들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이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에도, 다윗은 그것을 자신의 인간적 성취로 착각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감각이 무뎌지면,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지게 됩니다. 다윗의 마음에 교만을 보시고,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 -1963)는 『순전한 기독교』 에서 “교만은 본성이 경쟁적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모든 나라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 주된 원인은 바로 교만입니다. 다른 악들은 그래도 사람들을 맺어 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여러분은 술 취한 사람들이나 방종한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거나 농담을 주고받거나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언제나 적대감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일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교만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은 통치 말기에 인구조사를 합니다. 왕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가 했던 인구조사는 자기 나라의 국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한 후에 그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7만명이나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로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내면에 자만한 마음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셨던 것입니다.
교만은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며 하나님을 보여지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교만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인간 안에는 내가 높아져서 인정과 영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말씀만을 고집하다 보면 이것도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빚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계명 1, 2계명에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출애굽기 20:3-4)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주께서는 그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아주 싫어하시므로, 그런 자들은 반드시 주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잠 16:5) “교만은 멸망으로 이끄는 앞잡이요, 거만한 마음은 몰락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잠 16:18). “주께서는 교만한 사람의 집은 사정없이 헐어 버리시지만, 과부의 담장은 튼튼하게 지켜 주신다”(잠 15:25)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노가 함께 언급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국 회복을 위한 길로 이끄시는 사랑입니다. 오히려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하나님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인구조사 이후 하나님의 징계에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자신이 한 줌의 티끌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1절로 4절에 보면, 그는 죽음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 짖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위기에 처했던 이유가 자신의 죄에 대한 주님의 진노 때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다윗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푸시고 다윗을 죽을병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모습을 자신이 경험과 삶에 비추어 연결 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웠던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더 두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부재 속에 결핍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실감하는 것이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본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0:5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도다. 비록 밤에는 슬피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아침이 되면 기쁨이 흘러넘치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나 구속적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의 인생에 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얼굴을 돌리신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밤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진노는 끝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때면 하나님의 은총은 짧고,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한 것 같다 여겨지겠지만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되는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8절로 12절입니다. 30:8 그때에 내가 주께 부르짖고, 주의 은혜를 바라며 간구하기를, 30:9 “주여, 내가 이렇게 죽어, 저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주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죽어, 한 줌의 티끌 된 자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주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30:10 하오니 주여, 내 간구를 들어 주소서. 이 몸을 어여삐 여겨 주소서. 제발 나를 도와주소서!” 하였더니, 30:11 그제야 주께서 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고, 나에게서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 옷을 입혀 주셨도다. 30:12 그러므로 내 영혼이 어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어찌 입 벌려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렵니다.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 왔습니다. 불순종은 교만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순종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안에 자랑 할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을 좀더 낮은데 두시고, 주님의 겸손함을 배워 보시면 좋겠습니다. 복음이 효과적이려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의 이 기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여러분은 한마음과 한뜻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행함으로써,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2:3 무슨 일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십시오. 2:4 무엇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
예수께서 죄인들의 편에 서자 당시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 버린 그들의 외식적인 모습을 드려내셨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복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적 행위로 의로워 질수 있었다면 주님께서 인간의 죄로 인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우리를 위한 구속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이러한 겸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심으로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할 때 종종 인간의 분노처럼 감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불안정하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함과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공의의 표현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본 정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표제어는 ‘성전 봉헌하는 찬양시’입니다. 하지만 성전이 다윗 시대에는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 봉헌과 다윗의 시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후대에 시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표제가 붙여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유대인들이 성전을 완공하고 찬양을 불렀던 그들의 심정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은 후 다시 살 기회를 얻고 부른 노래와 같았을 것입니다. 죄로 인해 무너졌던 마음의 회복은, 마치 고칠 수 없었던 중병이 의사의 손길을 통해 완전히 치유된 뒤, 밀려오는 깊은 감사와 기쁨을 노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죽을 병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음의 성전을 다시 점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낮과 밤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건강할때와 질병이 찾아올때, 기쁠때나 슬플때, 멈춰야 할때가 있고 나아가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밤의 시간은 절망과 좌절, 답답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로 비유되는 밤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시 동안 그러나 더 큰 긍휼과 자비로 자기 백성을 품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기쁨의 아침이 오게 됩니다.
현재 내 삶이 고통스러운 밤의 시간이라면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해도 주님이 나를 외면하시면 우리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 조차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반응할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믿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은 단순히 은혜의 간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한 살아있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은혜와 사랑은 단지 말과 경험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었고, 십자가에서의 피흘림으로 남겨진 생명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의 속삭임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선택하는 담대함, 가정과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치열하게 살아내고, 엎드려 기도로 나아가는 삶이 진정한 복된 삶임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달려갈 길 모두 마치고 주 얼굴 볼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의 공로를 포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바쁘게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지만 주 얼굴볼때 주앞에 설때 나의 공로 전혀 없음을 고백하게 될텐데, 왜 이렇게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움켜쥐고 갈등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면서도 진정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20절은 ” 사실 율법이 더해짐으로써 죄가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죄가 많아진 그만큼, 은혜 또한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서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그 죄가 많아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죄보다 더 크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걷는 걸음이 참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세상의 가치 앞에서 복음을 아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이 외로울지라도 힘써 지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실력이 없기에 반복되는 쓰러짐에 길을 잃어 버릴지라도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값진 은혜 앞에서 결단하고, 두렴 없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박우정의 “나의 하나님” 이라는 찬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다윗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겠다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잠시의 기쁨이 아닙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려움 없는 믿음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함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기뻐할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감사의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의 기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살아냄 속에서 그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 받은 자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을 모신 사람들이지만 매 순간 마음을 돌아 보아야만 합니다. 형통하고 평안할 때 일수록 주님을 더 깊이 의지하고 곤고한 날에는 주께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교만과 은혜는 같은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겸손한 자에게 허락됩니다. 교회 문을 열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실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을 남겨두고 가지 않도록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