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27. 2025 주일설교

(부활절 제2주)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The Lord is Always at My Right Hand

시편 16: 8–11

8 내가 항상 주님을 내 앞에 모셔 두고,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즐거우며, 나의 육체도 소망 가운데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10 정녕 주께서는 이 몸을 보호하시어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주의 거룩한 자를 무덤에서 썩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1 주께서 내게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실 것이니, 주 앞에서 나의 기쁨이 항상 흘러넘칠 것이요, 주 옆에서 나의 즐거움이 영원히 충만할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8 I know the Lord is always with me. I will not be shaken, for he is right beside me.

9 No wonder my heart is glad, and I rejoice. My body rests in safety.
10 For you will not leave my soul among the dead or allow your holy one to rot in the grave.
11 You will show me the way of life, granting me the joy of your presence and the pleasures of living with you forever. (New Living Translation)

부활절을 지나 꽃이 피어나는 봄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교회 화단 앞에도 튤립과 수선화가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하나님의 섭리와 생명의 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은 시편 16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메시야의 예언시로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1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정녕 주께서는 이 몸을 보호하시어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주의 거룩한 자를 무덤에서 썩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며 다윗이 먼 미래를 내다보며 한 말씀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증언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이라고 설교합니다. 사도행전 2장 31절, 32절입니다. 2:31 그래서 다윗은 장차 올 일을 미리 내다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분은 무덤 속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분의 몸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다. 32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증인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시편 2편과 본 시편의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셨다고 설교합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로 35절입니다. 13:33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후손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2편에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13:34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시고, 다시는 죽지 않게 하신 이 사실은, 성경에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도 확실한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3:35 또 다른 시편에도 기록되기를 ‘주님께서는 주님의 거룩하신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편의 예언과 사도들의 증언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부활의 믿음은 죽음보다 강한 생명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믿음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의 인생에는 위기와 위험의 순간들이 참 많았고,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광야에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항상’이라는 단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며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16:8) 다윗은 삶과 죽음의 외나무 다리 위를 걸으면서도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을때 하나님은 더욱 더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항상’ 그리고 ‘언제나’라는 표현 안에 다윗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양을 돌보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신다는 보호의 의미를 삶을 통해 배웠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라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사랑하는 딸의 손을 붙잡고 결혼식장에서 함께 걷는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딸의 손을 사위의 손에 넘겨주는 것은 앞으로 딸을 든든히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또한 험한 세상 마지막까지 보호해 주고 싶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는 옆이 아니라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오른편은 하나님의 힘과 보호, 구원과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자로 서 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의 절규는 승리의 선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의 손을 놓치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손쳤을 때에도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강한 손으로 우리를 변함없이 붙잡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새사람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 사랑의 즐거움이 아니고서는 바울과 베드로의 생애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위기 가운데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즐거움입니다. 성도는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 믿음의 길 위에서 즐거움의 대상이 바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옛삶의 마침을 의미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새사람된 성도는 주님이 여전히 함께 계신다는 참된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 말씀을 하실때 제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양과 이리의 싸움은 당연히 이리의 승리일 겁니다. 양은 이리보다 느리고, 겁도 많고 약합니다. 양의 입장에서는 위태롭고, 불안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 세상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여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면서 ‘나는 언제 믿음을 불들게 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불확실한 삶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은 우리에게 불안이 아닌 소망을 전해줍니다. 때때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주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전의 습관과 삶의 패턴,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참된 믿음으로 이끄시는 연단의 여정 속에서 예수님은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알의 씨앗이 죽어져야 이를 통해서 뿌리 깊은 곳에서 부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의 길을 주신 것입니다. 죄의 지배아래 살던 우리를 건져내시고 존귀한 자녀로 삼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속에서 주님이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며, 세상 속에 감춰진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씩 삶속에서 풀어내며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속에서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우리가 평생 붙잡고 가야 할 생명의 말씀을 찾아냅니다.

2025년 2월 5일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황가람이라는 가수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고, 돈을 아끼기 위해 노숙자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그의 인생에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자기도 하고, 라디에이터가 켜져 있는 화장실에서 자기도 했답니다. 쓰레기를 모아 생활하고 노숙생활을 하면서 몸무게는 40kg까지 빠지고, 이러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온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벌레 같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무명의 삶을 벗어나 빛나는 별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벽에 부딪히고, 현실의 어둠을 만나기도 하고, 절망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스스로 빛이 날거라 기대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빛날수 없었던 존재입니다. 그의 오랜 무명생활은 “나는 반딧불” 이라는 노래를 통해 알려졌고 그의 고통과 눈물의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황가람이 부른 “나는 반딧불” 이라는 노래 가사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그분 안에서 빛의 자녀인 것을 깨닫는 성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과 실패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주의 자녀들은 빛처럼 세상을 밝히고, 소망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 시민의 명예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책임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앞서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에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고, 죄된 본성을 거슬러야 하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을 붙들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여겨질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본 시편은 메시아의 예언시로 우리로 하여금 부활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11 주께서 내게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실 것이니, 주 앞에서 나의 기쁨이 항상 흘러넘칠 것이요, 주 옆에서 나의 즐거움이 영원히 충만할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3가지로 표현합니다.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는 분, 나의 기쁨을 흘러 넘치게 해 주시는 분, 나의 즐거움을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 마음 안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언제나 저 멀리에 있기에 현실은 여전히 흔들림 속에 있습니다. 막막할 때도 있고 잘 해내고 있지 못하는것 같은 마음에 하루에도 몇번씩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불안속에 머물러 있는것이 아니라 새 삶을 살아갈 믿음의 용기와 인내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불안에 흔들리고 상처에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에서 말하는 화려한 성공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의 위기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비록 그 안에서 느린 걸음일지라도, 분명한 믿음의 발자국이 남겨질 것입니다. 옛것을 잃고, 놓아버린 자리에서, 현실의 유혹 속에서도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 가는가?” 삶에서 진지하게 반복되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오직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 답이 명확하지 않으니 우리가 씨름하고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헨리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 ~ 1996)의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라는 책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감히 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 죄 때문에 다 내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합당한 반응을 찾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주님의 거룩한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노라면 저는 겸손히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고 주님의 십자가는 소망의 새 징표로 이 세상에 우뚝 섰습니다. 오 주님 십자가 아래 살면서 십자가의 소망을 끊임없이 전파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에 분명한 소망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영원에 이르도록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주저 앉게 될 때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단순히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위로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의 기쁨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구체적인 실천의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깊이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주님은 우리 모두의 속도에 맞춰가며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주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완고했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가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픔과 죄의 모습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압박과 미래를 향한 불안함은 우리를 낙심하게 하지만 부활의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작고 낮은 자리 그리고 여전히 상처 난 자리, 반복적으로 씨름하는 자리에서 믿음의 훈련과 순종을 통하여 부활의 능력이 생명의 길이 되는 부르심의 현장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깊은 영적 기쁨과 부활의 소망은 우리의 삶에서 생명의 능력이 되어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죽은 것 처럼 보였던 꽃이 다시 피어나듯 무감각 했던 우리의 삶과 마음에 참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주 앞의 기쁨과 주의 오른편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며 진정한 생명의 기쁨을 찾아가시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