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후 제 4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18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
Jesus’ Parable of the Kingdom of God
마가복음 4:26-34
유민용 목사
26 ○ 예수께서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그 씨는, 농부가 자든 깨어 있든 밤낮으로 싹을 틔우고 스스로 자라난다. 씨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스스로 자라나는지 농부는 알지 못한다. 28 그것은 땅이 저절로 씨를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싹이 돋고, 다음에는 이삭이 나고, 마침내 낟알이 알차게 맺힌다. 29 그래서 곡식이 익으면, 농부는 낫을 대어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추수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무슨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수 있을까? 31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도 같다. 겨자씨는 모든 씨들 가운데 가장 작지만, 32 일단 땅에 심어지면 어떤 식물보다도 더 크게 자라서,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무성하게 된다.” 33 ○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많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34 그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뜻을 따로 설명해 주셨다. (쉬운말 성경)
26 Jesus also said, “The Kingdom of God is like a farmer who scatters seed on the ground. 27 Night and day, while he’s asleep or awake, the seed sprouts and grows, but he does not understand how it happens. 28 The earth produces the crops on its own. First a leaf blade pushes through, then the heads of wheat are formed, and finally the grain ripens. 29 And as soon as the grain is ready, the farmer comes and harvests it with a sickle, for the harvest time has come.”
30 Jesus said, “How can I describe the Kingdom of God? What story should I use to illustrate it? 31 It is like a mustard seed planted in the ground. It is the smallest of all seeds, 32 but it becomes the largest of all garden plants; it grows long branches, and birds can make nests in its shade.” 33 Jesus used many similar stories and illustrations to teach the people as much as they could understand. 34 In fact, in his public ministry he never taught without using parables; but afterward, when he was alone with his disciples, he explained everything to them.(New Living Translation)
하워드 A. 스나이더(Howard A. Snyder 1940-현재) 박사는 한국교회에도 잘 알려진 기독교 미래학자이자 선교신학자입니다. 그는 세속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교회, 세상에 대한 주제로 많은 책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대해 한 사람의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매일의 삶에서 그 실제적 관심을 그의 책들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스나이더 박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모호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하나님의 통치와 새로운 질서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없는 나라이기에 아무리 설명하려고 애를 써도 쉽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7가지 주제를 평화로운 질서, 약속의 땅, 하나님의 집, 왕의 도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 안식과 희년으로 분류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는 달랐습니다. 세상은 불신과 폭력이 가득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평화의 질서를 회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평화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본향 땅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 은혜의 신비는 맡겨진 사명의 무게를 지니고 일상의 자리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로 살아가도록 합니다.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새로운 질서 가운데 서로의 시간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나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매주일마다 우리는 한주간의 리듬을 다시 확인하고 몸과 마음에 참된 안식과 평화가 임하도록 하나님 나라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 관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고, 뿌려진 씨는 농부가 자든 깨어 있든 밤낮으로 싹을 틔우고 저절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나중에는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무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다른 비유들보다 복음서 앞쪽에 배치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나라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마가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를 기록하는데 서른 다섯절의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드러났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사람들과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 뿌려진 씨앗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 전까지 하나님 나라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물리적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국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좋은 땅에도 뿌려진 씨앗입니다. 주님은 모든 세상에 뿌려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편협한 마음으로 인해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의심이 많아서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여 시험에 들기도 하며, 재물에 대한 염려와 여러가지 욕심과 육체의 유혹들로 인해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자신들만의 나라라고 믿는 이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씨를 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의지나 욕망으로 세워지고 무너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햇빛과 비를 통해 식물이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창조하신 법칙이듯, 숨겨진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가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았고, 버려져 뿌려진 씨처럼 땅속에 묻혔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도 상처받은 마음이 뿌리 내리고 있고 스스로의 멸시와 거절감으로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전의 삶의 뿌리가 뽑히고 우리 안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죽고 사라진 줄 알았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는 마치 씨가 땅속에서 껍질을 벗고 줄기가 뻗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참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진행방식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고작 사람의 됨됨이나 생김새에 의존하지만, 거대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성경에는 땅속 깊이 감추인 보화가 가득합니다. 예수의 비유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결핍을 채우고 감탄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주시는 천국의 보화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서 또 다른 농부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그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려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4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농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힘이 이 땅에 열매를 맺을 사람들을 만들어 갑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물을 주고 거름을 줄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에 뿌린 씨앗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씨 뿌리는 비유의 요점을 놓쳐 버리고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못된 이해를 지닌 채로 전해진 복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역동적으로 다가왔고,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약속된 언약을 오랜 세월 밤낮으로 싹을 틔우고 저절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계시기에 때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개인의 역사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독일의 문학가 괴테의 말이 생각납니다. 방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뒤척이는 밤을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지 않으며 내 입술의 말과 생각이 주님께 올려드려 짐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이 성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 길을 걷습니다. 내 속도가 유난히 더딘듯 느껴지고 내 삶에 사랑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 시선의 방향이 분명해지면 목적이 분명해지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문제들 안에 억눌려 있는지 얼마나 편협하게 비판하고 살아가는지 마음의 방향을 주님께로 바로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걷다가 본향집 꽃피는 산골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수고했다고 안아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이 되시는 주님의 사랑과 마음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것과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빚으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해 버린다면 더 이상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답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임을 설명하시며, 내가 너희를 떠난 뒤에도 너희가 절대로 혼자가 아니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말씀에 무관심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어떤이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믿음이 성숙해 지는 사람은 경험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복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씨름한 흔적이 보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고백 되어지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간이 땅속에 심겨진 씨와 같아서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어진 때를 성실하게 걸어가다 보면 땅속에 있던 씨앗이 껍질을 벗고 생명이 자라듯이 우리의 믿음도 성숙해 질 것입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땅속 곰팡이가 지구 상에 있는 식물의 뿌리들이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낙엽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분해한다고 합니다. 식물 뿌리 자체로는 땅속에서 뻗어 나가는데 한계가 있는데 뿌리가 영양분을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뿌리균이 돕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보이지 않지만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가는 나라입니다.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서도 연결되고, 선한 영향력을 통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밭을 가꾸는 순서를 보면 먼저는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고, 좋은 모종을 골라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이후 농부는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고, 주위에 잡초를 뽑으며, 새싹이 자라면 솎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추수할 때를 기다립니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농부가 자든 깨어 있든 밤낮으로 싹을 틔우고 스스로 자라나게 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30-32절)
30 ○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무슨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수 있을까? 31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도 같다. 겨자씨는 모든 씨들 가운데 가장 작지만, 32 일단 땅에 심어지면 어떤 식물보다도 더 크게 자라서,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무성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단서가 겨자씨입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들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자라서 새들이 가지에 깃들일 만큼 무성해집니다. 작음과 무성함은 서로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비유는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가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겨자씨 비유일까요? 오늘날 교회가 대형화되고, 마케팅을 통해서 세상의 방법으로 부흥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제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은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자유와 새로운 질서 가운데 완성되는 나라입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무성해져서 새들이 깃들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최종 목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서로가 큰 사람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작은 새들이 와서 깃들일 만큼 누군든 와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바른 신학으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33 ○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많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34 그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뜻을 따로 설명해 주셨다.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들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영적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하여 설명해 주신 후에 제자들에게는 비유안에 감추어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세례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는 말씀을 실제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단순한 신앙형식에 매달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거하는 일에 쉼없이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작은 겨자씨가 뿌려졌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일상에 펼쳐진 하나님의 나라, 세상에 가득 찬 하나님의 나라를 보라고 하신 예수의 비유가 깨달아 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령강림후 제 3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17
회개의 열매를 맺는 교회
The church that bears the fruits of repentance
누가복음 13:1-9
유민용 목사
1 이 무렵, 예수께서는 희생제물을 드리려던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학살되었다는 말을 몇몇 사람들에게서 전해 들으셨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죽임당한 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 같은 변을 당했다고 생각하시오? 3 아니오!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오. 4 또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무너져서, 거기에 치여 죽은 열여덟의 사람들은 어떻다고 생각하시오? 그들이 다른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특별히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시오? 5 아니오!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오.” 6 ○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과수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소. 그 사람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혔는지 보려고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번번이 실망하고 말았소. 7 그러다가 마침내 그 사람은 과수원지기에게 말했소. ‘보시오, 내가 3년 동안이나 이 무화과나무를 참고 기다려 왔건만, 단 한 개의 무화과도 맺히지 않았소! 그러니 이 무화과나무를 당장 베어 버리시오. 무엇 때문에 아까운 땅만 허비하고 있단 말이오?’ 8 그러자 과수원지기가 대답하였소. ‘주인님, 금년에만 더 그냥 두십시오. 제가 나무 둘레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듬뿍 주도록 하겠습니다. 9 그렇게 해서 내년에 무화과가 맺히면 좋고, 만일 그때 가서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때는 미련 없이 베어 버리도록 하겠습니다.’”(쉬운말 성경)
1 About this time Jesus was informed that Pilate had murdered some people from Galilee as they were offering sacrifices at the Temple. 2 “Do you think those Galileans were worse sinners than all the other people from Galilee?” Jesus asked. “Is that why they suffered? 3 Not at all! And you will perish, too, unless you repent of your sins and turn to God. 4 And what about the eighteen people who died when the tower in Siloam fell on them? Were they the worst sinners in Jerusalem? 5 No, and I tell you again that unless you repent, you will perish, too.” 6 Then Jesus told this story: “A man planted a fig tree in his garden and came again and again to see if there was any fruit on it, but he was always disappointed. 7 Finally, he said to his gardener, ‘I’ve waited three years, and there hasn’t been a single fig! Cut it down. It’s just taking up space in the garden.’ 8 “The gardener answered, ‘Sir, give it one more chance. Leave it another year, and I’ll give it special attention and plenty of fertilizer. 9 If we get figs next year, fine. If not, then you can cut it down.’”(New Living Translation)
팀 켈러 목사(Timothy J. Keller, 1950 ~2023)는 고통의 문제를 성경 안에서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죄에 대한 결과로서의 고통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나라는 사람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른 지역으로 가다가 겪게 되는 죄로 인한 고통입니다.
둘째로 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요시야 왕 13년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자 듣는 것도 고통이지만, 나라가 망할 것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몰락한 제사장들이 유배간 지역에서 태어나서 살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말씀을 주시니 말씀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능력으로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될 것을 전하면서 그 고통을 견뎌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눈물이 마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웁니다. 회심이후 복음의 사도로 살았던 바울도 복음을 증거하며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셋째는 자연적 이별로 인한 육체적 죽음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육신의 한계가 있는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때 겪는 육신의 이별로 인한 고통입니다.
넷째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욥인데요. 욥은 이유 없이 어느 날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게 되는 재난을 겪게 됩니다. 주변 친구들도 거의 모든 신학적 논리를 활용해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지만, 결국 이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욥이 폭풍 속에서 하나님에 의해 깨닫게 되는데, 인간이 다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2가지의 사건이 나옵니다. 첫번째 사건은 총독 빌라도에 의한 갈릴리 사람의 살해 사건이며 두번째 사건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갑자기 죽게 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 갑작스런 재난이나 사고가 나면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타켓으로 정해 놓고 자신의 의로움이나 정치적 목적을 드러 내고자 합니다. 서로가 명예 훼손으로 법적 다툼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을 행사하며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들이 사회나 정치 분야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판단자의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1 이 무렵, 예수께서는 희생제물을 드리려던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학살되었다는 말을 몇몇 사람들에게서 전해 들으셨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온 갈릴리 사람들 중 일부 순례자들에게서 폭동의 조짐이 보였고, 빌라도가 이를 강력하게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희생 제사를 드리던 몇몇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빌라도는 냉혹하기로 악명 높은 총독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이 예수께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 유월절 절기에 예배하러 왔다가 갑작스럽게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에 대한 판단을 요구받으신 것입니다.
사실, 이 사건을 전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듣고 싶었던 말은, 죽은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든 고통의 이유를 개인이나 조상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처벌을 받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영적 우월감을 느끼며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절로 5절입니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죽임당한 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 같은 변을 당했다고 생각하시오?3 아니오!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오.4 또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무너져서, 거기에 치여 죽은 열여덟의 사람들은 어떻다고 생각하시오? 그들이 다른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특별히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시오?5 아니오!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오.”
예수님은 악독한 빌라도이든, 죽은 갈릴리 사람이든 죄인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죽은 사람들이 너희보다 악한 사람이라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바라보지 말고 너희 자신을 바라보며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자리에 없었을 뿐이지 너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동일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판단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너희도 다를바가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너희가 판단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며 누군가에게 그 죄를 전가하려 한다면 이로 인해 너희도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알수 없는 고통과 재난에 대해서 판단과 정죄로 연결하는 인과응보 논리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다른 이를 비난하고 심판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 앞에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세상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날 수 있느냐고 하나님의 존재를 반문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롱하며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교회 안에도 영적 우월감으로 자기의를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들은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재난으로 부터 하나님이 벗어나도록 보호해 주셨다는 영적 우월의식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판단자의 자리가 아니라 용서와 자기반성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시각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건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각은 유대인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을 바라보며 죄를 지적하기 바빴지만 예수께서는 그 초점을 판단하며 말하는 무리들에게 두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빌라도에 의해 저질러진 끔찍한 정치적 학살이나 실로암 망대가 붕괴된 자연적 사건 모두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그들’만의 사건이 아니라 ‘모두’의 사건으로 해석하신 것입니다.
복음주의 목사인 A.W. 토저는 “하나님을 추구하라’는 책에서 현대교회의 약점은 성장하지 않는 믿음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분열을 일삼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각종 재난의 소식을 통하여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답을 낼 수 없는 영역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일으키는 악의 실체를 정확하게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마치 죽음이 내 삶을 삼켜 버린 것 같지만 주님과 함께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죽음까지도 서서히 힘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이 겪게 되는 상처와 아픔도 주님의 사랑을 사그라지게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별되는 것은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회개의 열매이며 회개의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회개는 부도덕한 나의 습관과 행위를 고치기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를 지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행실에 대한 죄는 사회의 법으로도 그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깨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이 되는 것이고 주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변화된 인생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고정할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난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 받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의 손은 죽음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끊어내지 못합니다.
셋째로 회개의 기도는 인생의 기회입니다.
6 ○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과수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소. 그 사람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혔는지 보려고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번번이 실망하고 말았소.
7 그러다가 마침내 그 사람은 과수원지기에게 말했소. ‘보시오, 내가 3년 동안이나 이 무화과나무를 참고 기다려 왔건만, 단 한 개의 무화과도 맺히지 않았소! 그러니 이 무화과나무를 당장 베어 버리시오. 무엇 때문에 아까운 땅만 허비하고 있단 말이오?’ 8 그러자 과수원지기가 대답하였소. ‘주인님, 금년에만 더 그냥 두십시오. 제가 나무 둘레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듬뿍 주도록 하겠습니다.
9 그렇게 해서 내년에 무화과가 맺히면 좋고, 만일 그때 가서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때는 미련 없이 베어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 3년 동안 무화과 나무를 참고 기다렸다는 구절은 우리에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회개의 시간이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3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는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수많은 선택 앞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도전이 올때에는 말을 줄이고 기도할때 믿음이 성숙해 져 갑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헤쳐 나갈 지혜를 주시고, 마음에 성경구절과 찬송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수원 주인이 누구이고 과수원지기가 누구일까요? 과수원 주인은 3년 동안 열매가 없어서 번번히 실망했으니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베어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당장 나무를 베어 버리라는 말씀이 성도들에게 영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과수원 지기는 주인에게 일년만 참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과수원지기는 더 신경을 써서 거름을 주고, 그때에도 만약 열매가 없으면 그때 베어 버리자고 합니다. 열매를 맺을 기회를 주고 나름의 노력을 해보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구절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믿음의 토대 위에 인생을 세워가야 함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과수원 주인의 탓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과수원 지기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열매가 없는 것을 땅이 좋지 않다고 핑계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수원 지기의 간청에 모세의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요구받을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기도를 드립니다. 출애굽기 32장 30절로 32절입니다.
30 ○ 이튿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주께 올라가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빌어야겠습니다.”31 모세가 주께로 가서 여쭈었다. “주여, 이 백성이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32 하지만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만일 주께서 저들을 용서하실 수 없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차라리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또 다른 사람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오심을 외치기 위해 광야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자라고 광야에서 소명을 받고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혹시 지금 나의 삶이 너무 풍요롭고 편안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는 영적인 광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회개의 초점이 나에게 향하지 않고 누군가의 탓으로 향하고 있다면 아무도 없는 광야로 나아가 세례 요한과 모세의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광야는 하늘의 음성이 가장 가까이 들리는 장소입니다. 주님께서는 광야에 물이 넘쳐나 흐르게 할 것이며, 꽃이 피고 향기나게 하실 것이며,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께서 당신을 통하여 영혼들이 돌아오도록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나를 포함한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의 열매는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것입니다. 이 여정을 가다보면 광야도 만나고 좁은 길도 만나게 되지만 돌아서야만 보이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전히 정죄하고 판단하며 세상의 소리와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을 감당해 보는 것. 울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것, 이제 우리는 불확실한 소식들 앞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매일 주시는 기회의 말씀을 간절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