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설교/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 설교36)
내가 세상을 이겼다!
I Have Overcome The World!
요한복음 16:31-33
김태환 목사
3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잘 들어라. 너희가 뿔뿔이 흩어질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이미 그 때가 되었다. 너희는 저마다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쉬운성경)
31 Jesus asked, “Do you finally believe? 32 But the time is coming—indeed it’s here now—when you will be scattered, each one going his own way, leaving me alone.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33 I have told you all this so that you may have peace in me.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New Living Translation)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 영국)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흔히 감리교회를 창시하신 분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분에 대한 일화들이 많습니다. 그는 평생 말을 타고 다니면서 노방전도를 했는데, 그가 52년 동안 전도하러 다닌 거리가 무려400,000km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거리는 지구를 열 바퀴 돌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42,000번의 설교를 했고, 200여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그가 쓴 책 중에 ‘기초 물리학 (Primitive Physick, 1747)’이라는 의학 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병원 치료 값이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 갈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이 책은 식이요법이나 민간요법에 대한 것이어서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무려 32판이나 찍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웨슬리의 사회 개혁의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1791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임종 전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작 와츠 (Isaac Watts, 1674-1748, 영국)의 찬송가 ‘숨쉬는 동안 나는 창조주를 찬양하리라 (I’ll Praise My Maker While I’ve Breath)’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오늘 요한복음 16장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게 되겠지만 그 때도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엄청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떻게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편 46편 말씀을 한번 보세요. 이 시편은 ‘고라의 자손 (the descendants of Korah)’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 안에 계시므로, 그 성(城)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그 성을 도우실 것입니다 (God dwells in that city; it cannot be destroyed. From the very break of day, God will protect it., NLT).” (5절) 이 말씀에서 ‘성’은 문자 그대로 ‘castle’ 혹은 ‘city’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을 그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우리의 산성 (fortress)이신 전능하신 ‘엘 샤다이 (El Shaddai)’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온 종일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고린도후서 4:17). 이 말씀에서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이란 말과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이란 말을 대조해서 읽어 보세요.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당장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된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희망이고,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로마서 8:28).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던 사람들(히브리서 11:27)’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8:24).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
오늘은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의 빈무덤을 처음 발견한 여자들이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던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드리는 주일 예배의 기원(起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부활절 예배가 분주하고 번잡한 예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례식이 있습니다. 예배 후에 식사가 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은 평소보다 마음이 더 분주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활절 예배가 행사처럼 치러지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했을 때도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나면 늘 “이게 아닌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온 마음을 다 해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 보세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33절)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절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세상을 이긴 분 (One who has overcome the world)’입니다. 이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나를 믿는 너희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기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그리스어 원문에 ‘코스모스 (κόσμος)’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 속에 다양한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영적인 실체 (實體)’를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 ‘마귀’, ‘바알세불’이란 말을 사용하셨고, ‘이 세상의 통치자 (the ruler of this world)’라는 말도 사용하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말합니다.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the commander of the powers in the unseen world, NLT, 에베소서 2:2)’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마음을 붙어 넣습니다. 이밖에 ‘이 세상의 신’, ‘속이는 영’, ‘빛의 천사 (고린도후서 11:14)’라는 말도 사용했습니다.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의로운 하나님의 일꾼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사탄은 제자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와 마치 예수님을 위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일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8:32-33). 사탄은 제자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요한복음 13:26-28). 이처럼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게 만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인 죽음 (spiritual death)’이라고 합니다.
죄를 히브리어로 ‘하타트(חַטָּאת)’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합니다. 모두 ‘과녁에서 빗나가다 (missing the mark)’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떠난 자기 시대 백성들을 향해서 “우리는 다 (목자를 떠난)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NKJV, 이사야 53:6, 베드로전서 2:25)”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길을 잃은(astray)’, ‘돌아서다(turn)’, ‘제 자신의 길로(to his own way)’라는 말들은 모두 ‘과녁에서 빗나간’ 죄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보면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어느 책을 읽다가 본 것입니다만,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미국)가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목적과 방향이 없다면 노력과 용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fforts and courage are not enough without purpose and direction).” 무조건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 올바로 설정되지 않으면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은 삶의 목적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유용하고, 고결하며, 동정심을 가지며, 잘 삶으로 말미암아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The purpose of life is not to be happy. It is to be useful, honorable, and compassionate, making a difference by living well).” 삶의 목적이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은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된 삶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고귀한 희생과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산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우리의 삶을 낭비하며 헛된 일에 사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쩌다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 (standard)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판단했지만, 이제는 인생의 목적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됩니다. 내가 이룬 업적과 명예와 그리고 내가 축적한 부와 상관없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인생의 목적에 충실하게 살았다면 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유감스럽지만 실패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서른 세 살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제자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학생이고, 언제까지 청년으로 내 젊음이 계속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What on earth am I here for)?” 이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잘못된 과녁을 설정하고 우리의 시간과 젊음의 화살을 낭비하도록 우리를 유혹해서 죄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6:23에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쉬운 말씀 같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wages’는 보통 우리가 ‘임금’, ‘급료(給料)’, ‘대가(代價)’, 혹은 순수한 우리 말로 ‘삯’이라고 해석하잖아요? 하지만, “죄의 삯은 죽음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 뜻이 금방 들어오지 않지만 ‘wages’라는 말을 ‘대가’로 번역하면 뜻이 금방 들어옵니다. 이 경우 ‘대가’라는 말에 ‘결과(結果)’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혹은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환난도, 죄의 권세도, 죽음도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담대하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살아계신 주 (Because He Lives)’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게이더 부부 (William J. & Gloria Gaither)가 가사를 쓰고 작곡을 했습니다. 이 찬양의 후렴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주께서 살아 계시니 내일을 마주할 수 있네).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주께서 살아 계시니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네).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주께서 나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내 삶은 살 가치가 있네. 주께서 살아 계신다는 이유만으로).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그리고, 성경적인 가사입니까?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두려움 없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 때문에 삶에 의미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삶의 의미와 목적과 이유가 생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당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의회를 나왔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 뜰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내용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5:29-30, 32, 5:41-42).” 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불안한 내일을 마주할 수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도 달게 받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살아야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톰 라이트 (N.T. Wright)라는 영국의 성서 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완성하는 사건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부활절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드러났으며, 이제 당신도 그 나라에 속할 수 있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입니다 (The resurrection completes the inauguration of God’s kingdom…. It is the decisive event demonstrating that God’s kingdom really has been launched on earth as it is in heaven. The message of Easter is that God’s new world has been unveiled in Jesus Christ and that you’re now invited to belong to it).” —Surprised by Hope: Rethinking Heaven, 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N.T. Wright, 2008)
톰 라이트는 사탄이 패배하고 무력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9-13)”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대로, 이제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이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이렇게 확장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학교에서나 우리가 주어진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살고, 진리와 거짓이 싸울 때 망설이지 않고 진리 편에 서고, 정의와 불의가 싸울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정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을 밝힙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완성하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우리는 나만 위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를 구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종려주일)
머릿돌이 되었도다
The Cornerstone
시편 118:1~2, 19~29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2 이스라엘 백성들아,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하고 외쳐라… …19 그러므로 나를 위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다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0 이 문은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 21 주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내게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으니, 내가 소리 높여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2 집 짓는 건축자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23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니,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놀랍기만 하여라. 24 이 날은 주께서 구별하여 정하신 날이니, 이 날에 우리가 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소서. 26 ○ 복 되도다, 주의 이름으로 나오는 자들이여! 주의 성전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손과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축제의 행렬을 벌여, 다 함께 제단의 뿔로 나아가자!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진실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쉬운말 성경)
1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2 Let all Israel repeat: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
19 Open for me the gates where the righteous enter,
and I will go in and thank the Lord.
20 These gates lead to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the godly enter there.
21 I thank you for answering my prayer
and giving me victory!
22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now become the cornerstone.
23 This is the Lord’s doing,
and it is wonderful to see.
24 This is the day the Lord has made.
We will rejoice and be glad in it.
25 Please, Lord, please save us.
Please, Lord, please give us success.
26 Bless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We bless you from the house of the Lord.
27 The Lord is God, shining upon us.
Take the sacrifice and bind it with cords on the altar.
28 You are my God, and I will praise you!
You are my God, and I will exalt you!
29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faithful love endures forever.(New Living Translation)
본 시편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참 좋아했던 말씀입니다. 루터는 시편 118편을 가장 사랑하는 시편이라고 설교에 자주 인용하곤 했습니다. 특히나 ‘건축자들이 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가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총(Sola Gratia)을 선택했을때 그의 인생은 로마 교황청에 의해 버림 받는 돌이 되었습니다. 1521년 4월 18일 보름스(Worms) 의회 앞에서 카톨릭의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 결정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루터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옳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습니다. 그가 지은 찬송시를 듣고 있으면,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갈보리산 언덕 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은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심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옳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때때로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찾아와 주셔서 우리의 삶을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2 이스라엘 백성들아,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하고 외쳐라…19 그러므로 나를 위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다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20 이 문은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오르며 할렐시편를 불렀습니다. 이 할렐 시편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시편 118편은 제 1할렐 시편(시편 113~118편)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시인은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 감사를 노래합니다. 시인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의인들이 다 그리로 들어가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 시편 안에는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요 10:9) 종려주일 왕의 입성이 곧 ‘생명의 문’을 여는 것이었지만 갈보리는 십자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1장에서 자신을 가르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시편 118편을 인용하십니다. 21:42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지 못하였소? ‘집 짓는 이가 버린 돌이 이제는 모퉁이를 받치는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이루신 이 일, 우리 눈에 너무나 놀라워라.’ 머릿돌이 되었다라는 뜻은 부활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교회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며 예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워갑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께서 계심을 믿을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초대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밀려온 박해로 인해서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던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흩어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버려진 것 같은 상황에 떠 밀린 인생속에서도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의해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동족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을 죽인 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심한 조롱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예레미야를 붙드셨고, 그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은 놀라운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어떤 순간에는 버려진 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를 믿은 이후, 유대인들에게는 배신자로, 기독교인들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다양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이해와 판단을 내려놓게 하심으로 그 공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인생의 닫혀진 문, 절망의 문, 관계의 깨어짐의 문 앞에 서게 되지만 그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가 겪게 되는 외적인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을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바울의 사역의 핵심에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고난은 성도다움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갈때입니다. 그는 익숙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불안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벧엘에서 잠을 자는데 하늘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 28장입니다.
“28:13 주께서 그 사닥다리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28:14 네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 동서남북 어디로든 네 후손이 퍼져나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8:15 나는 늘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 전에는 내가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익숙한 삶을 떠나 고독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 처절한 고독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대한 경험입니다. 잠을 깬 야곱은 열린문을 경험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기뻐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것은 자기세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경의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8:16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다. “주께서 바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몰랐구나.”
28:17 야곱은 두려워하며 말했다. “이곳은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 아닌가? 이곳이 바로 하늘로 가는 문이로구나!”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갖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은, 평범한 일상이 주 안에서 거룩해졌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를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참여하여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번 성찬을 통해 죽음과 부활 사이에 있는 예수를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성찬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성찬은 부활의 소망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도록 돕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뉴스만 보아도, 세상은 성과중심의 구조 속에서 사람을 상품화하며,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버려져야 할 존재로 여깁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날에 많은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그것도 며칠후에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정치적 구원자로서 강력하게 나타나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침묵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세상의 능력과 권세를 발휘하는 구원자로 기대했으나, 예수께서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셨고, 그 길은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세상은 쉽게 관계를 끊어내고, 안전이 보장된 길만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믿음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절대 쉬운 길이 아니지만 외롭고 고단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십자가 부활의 생명을 발견하게 하실것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성도의 삶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 죽음과 부활 사이에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이 문을 통과한 성도는 자기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거룩한 성전을 지어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종려주일은 슬픔을 안고 나아가는 기쁨입니다. 존재가 흔들리는 불안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23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니,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놀랍기만 하여라. 23절은 예수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신 것은 사람에 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24 이 날은 주께서 구별하여 정하신 날이니, 이 날에 우리가 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소서.
26 복 되도다, 주의 이름으로 나오는 자들이여! 주의 성전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손과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축제의 행렬을 벌여, 다 함께 제단의 뿔로 나아가자!
28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진실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렵니다.
2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마음이 무거운 소식들이 참 많습니다.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의 소식과 분쟁과 갈등의 이야기들, 거기에 인생의 짐까지 더해져 마음이 멈춘듯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 주시고, 온갖 죄와 사망을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날 예배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하며 믿음의 흔들림과 내적 갈등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하늘로 열린 문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다시 살아나는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빛을 완전히 잃어 버리는 고난 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삶의 목적도 의미도 잃어버린채 살 소망 조차 없는 것 같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제 믿는이들이 바라보는 인생의 문제는 돌파 할수 없는 벽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시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잃지 않고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고 약속하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문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지만 그 외침은 어느새 분노와 의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 죽음의 자리로 향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자리도 기대와 실망, 사랑과 미움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나의 삶의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픔과 고난의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소망이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에는 더 큰 기쁨과 소망이 넘치시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간구하실때,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은혜의 문을 활짝 여실 것입니다. 그 문은 이미 열려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성찬을 함께 나누게 됩니다. 더 깊이 그 은혜를 느끼며 성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한주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느껴 보시고, 말씀을 따라 가는 삶에 축복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