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4 2026 주일설교

신년주일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1주: 삶 속에서 말씀을 붙드는 힘

Week 1 : The Power of Holding Fast to God’s Word

신명기 6:1-5

6:1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명령과 계명과 규정들을 내가 이제 전하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하고 살 그 땅에서 지키고 행해야 할 법입니다. 6:2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길이 복을 누리며 잘 살게 될 것입니다.  6:3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6:4 ○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6:5 그러므로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쉬운말 성경)

6:1 “These are the commands, decrees, and regulations that the Lord your God commanded me to teach you. You must obey them in the land you are about to enter and occupy, 2 and you and y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must fear the Lord your God as long as you live. If you obey all his decrees and commands, you will enjoy a long life. 3 Listen closely, Israel, and be careful to obey. Then all will go well with you, and you will have many children in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just as the Lord, the God of your ancestors, promised you. 4 “Listen, O Israel!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 5 And you mu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and all your strength. (New Living Translation)

202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한해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라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둘 때,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갑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태어나서 모세 오경의 말씀을 듣고 암송하면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두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의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라는 구절이 히브리어로 ‘쉐마’인데요. 말씀을 잘 듣는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고 생존하며 번성할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삶의 예배가 잘 세워지려면 내 생각과 내 뜻이 기준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1. 삶의 중심이 세워지는 예배

시내산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며 성막을 이동시키고 가는 곳마다 예배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대로 성막이 설계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배는 내 생각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마음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내게는 능력이 부족하고 바로 왕 앞에 서는 것도 두렵다고 호소합니다. 사명을 감당을 능력이 부족하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적을 통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며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을 경험한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가졌던 권세와 신분이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힘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6:2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길이 복을 누리며 잘 살게 될 것입니다. 6:3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6:4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6:5 그러므로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싶어 결단하셨던 분들이라면 가정 예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마음 다해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작은 기도의 씨앗이 가정을 세우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속한 자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세워 나갈 때, 인생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랑의 힘에 붙들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의지하며 나를 이끌고 가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 마음과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에는 “1 주여, 주께서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2 산들이 생기기도 전에, 땅과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노년에 드린 시편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 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것들이 기원이 있어요. 성경에는 밤낮의 기원, 공간의 기원, 가정의 기원, 결혼의 기원, 죄의 기원, 인류의 기원을 말씀하는데, 하나님만은 기원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시작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때 약속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동시에 환경과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고, 관계에서 느끼는 상처와 실망은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믿음의 힘을 잃어 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사랑 안에 붙들릴 때 현실의 불안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게 되고 걸어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 모여 예배드리며 힘을 주시는 분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필요를 채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때 성령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살아갈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고,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내 안에 약함을 초월하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성도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연결되는 힘을 경험해야 합니다. 모세는 삶의 가치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마지막 호흡을 다하여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라고 외칠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조급함으로 서두르고 세상과 비교하며 예배로 살아내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연약함속에서 정체성이 흔들리면 예배하는 것 조차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초대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힘을 경험하게 됩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장이라는 시의 몇 구절을 보면,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사랑하고 싶지만 상처받을까 망설이고 전부다 내어드리고 싶지만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태워 주신 분이 계십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모든 삶을 내어 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모세의 간절한 외침이 보다 더 가깝게 들려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가 학교나 직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에 비하면 삶의 작은 부분처럼 느껴지겠지만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길 때 삶의 중심이 하나님을 붙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과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늘 예배하고 있는데 왜 다시 예배인가? 라는 질문이 우리 마음에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이 너무도 커버린 지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붙들리겠다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쁨의 힘에 붙들리라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개역개정)

예배를 드리기 전, 예배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예배를 위한 전 단계의 예배입니다. 성경에서 “복을 받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יָטַב (야타브)는 “좋아지다, 기쁨이 되다, 유익이 되다”라는 뜻을 지니며, 이는 형용사 טוֹב (토브)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고 하신 것처럼, 말씀을 듣고 삶으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온전한 모습에 가까워지며, 우리의 삶 속에 기쁨과 유익이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입니다.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기쁨의 복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장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는 자리, 예배보다 더 나를 흔드는 그 자리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불안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해도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불행한 삶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인 우리가 기쁨과 사랑을 놓쳐 버린다면 신랑 되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새해에는 더 거룩하고 깨끗한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어떤 죄 가운데서도 회복과 새 삶의 기회를 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세상 즐거움과  슬픔을 내려 놓을 때 임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세상이 주는 슬픔에 마음이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이것만 해결되면 이라는 조건을 세웁니다. “주님, 상처와 아픔은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죄책감이 아닌 하늘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세번씩이나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 빛이 되고, 산 위에 세운 동네가 되는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옷을 입혀 주시는 기회입니다. 이 자리를 떠나는 걸음에서 우리의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주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사는 우리의 예배, 삶 전체에서 말씀에 붙들릴 때 하나님의 파워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초대된 많은 예배들 중에 주일의 한번의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예배가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삶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함께 살아내며 함께 울고 웃으며 매일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삶으로 살아내는 우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로 살아나는 우리의 한주를 위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선택들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 성경을 한 구절 읽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주기, 일터와 학업의 현장에서 축복의 언어로 삶을 바꾸어 보기, 아침의 첫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며 시작하기 등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으로 사랑하는 것 만큼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매주 우리의 작은 선택과 실천들이 모여 우리 삶 전체가 예배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힘으로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 가시길 축복합니다.

12. 28. 2025 주일 설교

송년주일

예수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

Jesus is not ashamed of us

히브리서 2:10-11, 17-18

10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완전케 하셨는데,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

1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자기 형제인 우리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형제인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18 결국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쉬운말 성경)

10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was made, chose to bring many children into glory. And it was only right that he should make Jesus, through his suffering, a perfect leader, fit to bring them into their salvation. 11 So now Jesus and the ones he makes holy have the same Father. That is why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his brothers and sisters… …

17 Therefore,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made in every respect like us, his brothers and sisters,[h] so that he could be our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before God. Then he could offer a sacrifice that would take away the sins of the people. 18 Since he himself has gone through suffering and testing, he is able to help us when we are being teste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송년(送年)주일입니다. 지난 한해도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매일 드렸던 새벽기도회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등불이 되었고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2025년 사순절 새벽 기도회는 ‘섬김의 십자가’란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코비드로 인해 우리의 신앙생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듯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주의 뜻을 따라 함께 걸으며 인도되는 길이었기에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금요찬양 예배를 통해서는 봄 학기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를, 가을 학기에는 야고보서 강해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에서 무신론자 철학 교수는 수업 시작전 80명의 수강생들에게 종이 위에 ‘신은 죽었다’라고 쓰라고 강요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평하지만 학점을 받기 위해 ‘신은 죽었다’라고 적었지만 조시라는 주인공은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화가 난 교수는  3주 동안 조시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을 과제를 주고 증명하지 못하면 낙제 시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의 인내로 복음을 전하고 결국 무신론자 교수는 논쟁에서 패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조시는 과제를 풀어낸 것이 아니라 진리의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히브리서 2장 18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2:1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진리 보다는 거짓을, 사랑과 용서보다는 권위와 압박의 시험에 부딪히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 길을 먼저 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시험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는 위축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죽음의 위협에서 풀려지도록 자신이 온 몸으로 죽음을 껴안고 자기 안에 받아 들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예수께서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가 주는 고통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죄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죄의 즐거움이 우리를 여전히 유혹하지만 성령께서는 죄의 쾌락과 영적 싸움을 하게 하십니다. 죄는 지금도 기회만 나면 틈을 타고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하지만 성령은 죄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말씀의 빛으로 우리 안에 죄를 드러내셔서 죄의 열매를 제거해 나가는 일이 어렵거나 두렵지 않도록 한없는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덮어 주십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율법과 형식의 경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을 하나의 형제로 묶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도해도 여전히 응답이 보이지 않을때가 있고, 선하게 살려고 애써도 고난과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의 거절감이나 마음에 남은 상처들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죄성은 우리를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살아가게도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 속에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섬김의 자리에 서고, 오래 교회에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괜찮은 신앙인으로 인식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인간의 신념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신념 위에 세운 신앙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결핍을 느끼게 되고 복음이 아닌 판단과 기준으로 불평하게 합니다. 그 불평이 기쁨보다 커지니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스스로의 신념으로 변화가 될수 있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확신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굴곡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지니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복음 안에서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능력이 우리를 다시 은혜의 자리로 데려다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현실속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다 여기지 않으시며 형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결핍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걸음을 걷다 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또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세상오시던 역사적 상황도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로마제국은 칼과 창으로 주변 민족들을 다스렸습니다. 헤롯 왕의 위협속에서도 동박박사들은 특별한 한 별을 보고,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별을 따라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사들의 순종과 믿음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도전을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무엇인지, 성경은 마리아와 요셉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예수를 뱃속에 품고 수태해야 했던 마리아는 사회적인 수치와 오해와 말없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도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주의 천사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마리아를 보호해 주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에게는 마리아 데려오는 일이 부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도 성령으로 수태된 아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세상이 알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께서 이렇게 오셨습니다. 혼란스런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오해 한가운데로, 부끄러움이 아닌 사랑을 안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연약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주저함없이 가족으로 대하시며 “너는 나의 형제요 나의 친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의 감추어진 보석 중 하나라고 불립니다. 말씀 앞에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서 지쳐 있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되어 버려 순종이 아니라 나의 열심으로 하다가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섬김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시기보다,  이 자리에 나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왜 이 자리에 있게 하시는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 뿐입니다.

함께 회복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속에도 주님의 모습이 조금씩 배어 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문제와 우리의 신앙의 길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주님이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형제 된 우리를 회복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때, 앞으로 이루어질 몸의 부활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시편34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바라보고 그 삶을 닮아가려고 할 때,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세상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정이 들고 익숙해지듯 우리 삶에도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삶을 닮아가고 따르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는 다른 가치와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외롭고 힘들때가 많지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함께 걸으며 함께 회복하고 격려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함께 도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믿음 생활이 종교적 열심으로 멈추어 있거나 주님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마다 이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러게 살순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알지만 여전히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형제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진정한 새해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는 넘어지고 현실에 매여 세상의 유혹에도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마음이 조급하여 요동칠 때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일어서도록 기다려주십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주저하고 버틸 힘이 없어 낙심했습니다. 삶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고 가장 두려운 것은 주님 없이도 예배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고 자녀삼아 주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회복하며 걸을 때 세상과 다른 가치속에서도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이 아파하고 눈물 흘려야 했던 순간 조차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거룩한 여정은 참 감사한 길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고 주님의 마음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삶의 다른 조건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이 진리를 깨닫는 귀한 은혜의 삶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