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1.2023 송구영신 예배


(성탄 후 제 1주, 송년주일)
마리아의 찬가 II
The Magnificat: Mary’s Song of Praise II
누가복음 1:50-55
유민용 목사
50 그분의 자비가 그분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대로 있으리로다. 51 그분은 강하신 팔로 능력을 베푸시고, 교만한 자들을 산산이 흩으셨도다! 52 그분은 왕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자들을 높이 올리셨도다. 53 그분은 굶주린 자들을 기름진 것으로 배불리 먹여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도다. 54 그분의 자기 종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도다. 55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자비는 그분의 백성들 위에 영원토록 있으리라.” (쉬운말 성경)
50 He shows merc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o all who fear him. 51 His mighty arm has done tremendous things! He has scattered the proud and haughty ones. 52 He has brought down princes from their thrones and exalted the humble. 53 He has filled the hungry with good things and sent the rich away with empty hands. 54 He has helped his servant Israel and remembered to be merciful. 55 For he made this promise to our ancestors, to Abraham and his children forever.”(New Living Translation)
한해도 살아보지 않았던 낯선 세상을 마주하며 믿음으로 잘 살아내셨습니다. 2023년은 ‘기도시리즈’를 시작으로 성령강림절기를 기점으로 사도행전을 묵상하며 설교를 전했습니다. 대림절기를 시작하면서는 예수님을 기다린 여인들 시리즈로 시작하여 한해 마지막 주일설교를 ‘마리아의 찬가’로 마칠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도 지난 한해를 회고해 보면 케임브리지 한인교회가 걸어온 비전과 사명을 이어받기 위해서 씨름했던 시간들입니다.
영성학자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51 ~ 1968)의 ‘사랑과 삶(Love and Living)’ 이라는 저서를 보면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아기 속에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우리 인생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소란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의 ‘여관’에서 방이 없는 분을 받아 들인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그 아기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오만한 권력의 세상 속에서 그분과 함께 성장해야 하며, 그분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간 그 길을 함께 여행하면서 세상의 권력에 맞서서 저항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는 세상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씨앗이 되어 오셨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으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밀알이 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한해도 섬김의 자리에서 수고한 모든 교우들에게 하나님이 채우시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의 원리 안에서만 자라갑니다. 어둠속에서 한줄기의 빛이 길을 밝혀 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굳어진 마음을 녹여 주지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도 저절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으로 오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밭에 심겨져야 합니다. 씨앗은 심겨지고 죽어져야 씨앗이 발아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지난 주 마라아의 찬가 1악장은 아브라함때 부터 계획된 언약이 성취되고 있음을 노래합니다. 오늘 마리아의 찬가 2악장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하실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열어 줄 새로운 나라를 기대하는 노래입니다.
마리아의 찬가에는 악에 대한 승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찬양은 자유로운 영이면서 동시에 질서의 영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확인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한해동안 교회력에 맞춰 매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력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개인의 신비와 영성보다 하나님의 주권이 더 우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해서 이길 절대자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절대자라는 수식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헤롯왕의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안전하게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혼돈과 어둠이 드리운 시대 한복판에 태어나셨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도 희망이 됩니다. 우리는 이민자로 살아가며 낯선 세계속에서 약자로 서 있습니다. 나라를 떠나 살면서 겪는 고통과 설움은 약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뜨는 경험이 되었고,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었던 찬송은 무엇입니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둔 길에서 마음을 위로해 주던 찬양은 무엇이었습니까? 마리아의 찬가에는 세상을 뚫고 들어오셔서 위 아래가 바뀌는 하나님 나라가 나옵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갈곳이 없는 이들의 고향땅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악에 대한 승리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자들을 산산히 흩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어려워 질수록 누구나 더 움켜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뒤틀려진 마음으로 인해 세상은 전쟁과 폭력이 끊이질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하는데요. 저절로 성숙해 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빚진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은 영혼을 향한 감각이 무뎌지고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으로 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지나친 탐욕의 마음 위에는 악이 자랄 것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때 사랑의 마음 위에는 거짓이 없는 선한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 사회학자가 현대사회를 평평한 운동장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하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차별로 인해 극복할 수 없는 불공정한 사회를 표현한 말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면 낮은 쪽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길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정점에 우뚝 선 사람들과 깊은 골까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엄연히 구조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를 거리낌 없이 흡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누리면 누릴수록,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삶의 가치를 내 안에서 찾게 됩니다. 그러니 불평등한 사회속에서 하나님의 가치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이 신이 되고자 수많은 우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비천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믿음으로 희망찬 나라를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성육신적 삶을 배움으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씨앗이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과 사랑의 토대위에서 자라납니다. 돈이 신이 되어진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이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아같이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테레사 수녀는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 볼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탈무드에는 ‘누워 있는 자는 넘어질 염려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마리아의 찬가를 천천히 충분하게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울림이 되기까지 지속적으로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마음에 넘쳐납니다. 마리아는 이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히 깨닫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들이나 왕들이라도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치 않으면 얼마든지 끌어 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고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그 사명을 확인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가리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막 5:7)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에 중독되어 속절없이 끌려가던 사람도 주님을 만나면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천사도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예수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녀를 감싸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눅 1:32,35) 사가랴는 자기 아들 요한이 가장 높으신 분의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눅 1:76) 누가복음은 예수가 세상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거절한 이야기로 시작하며(눅 4:6) 십자가에서 세상의 임금들은 쫓겨났습니다. 예수께서 악의 세력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내신 것입니다. 공생애 동안 예수의 삶은 언제나 통제가 아니라 감화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성도들을 훈련시켜 나가십니다.
새해에 우리는 경제적인 힘, 지식의 힘, 인격적인 힘이 주어질 때에 바르게 사용할 힘을 길러야 합니다. 세상은 더 높은 지위와 권세를 위해 몸부림치며 바라는 소원들이 다 충족되면 만족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길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을까? 질문하며 영향력을 행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허락해 주신 권력을 소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선한일에 사용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초대한 식탁의 자리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남과의 비교속에서 오는 불행을 떨쳐 낸다면 살아가는 삶이 한결 가벼워지라 생각이 됩니다.
1:53 그분은 굶주린 자들을 기름진 것으로 배불리 먹여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도다.
이스라엘 사회에는 약자들을 위한 보호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자주 언급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아와 과부는 누구입니까? 당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부양의 책임이 아버지나 아들들에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을 경우에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 밖에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소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고아 과부를 돌보는 것을 하나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방민족 신들과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돕고 베푸는 것에 있어서 자선행위 차원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치장하는 도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겉으로 선한행위일지라도 그 동기가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자랑과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주린 자를 배불리 먹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린 자란 육체적인 배고픔만이 아니라 심령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고 주리는 자들에게 부족함 없이 가득 채워 배부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은 평생을 움켜지는 삶을 살면서 형의 장자권도 쟁취하고 형을 피해서 외삼촌이 있는 이방땅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공하고 난 후에 많은 식솔(食率)들을 거느리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합니다. 평생 저는 다리로 살아야 했지만 야곱은 이후 과거의 이기적인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어 야곱이 아니라 민족의 조상인 이스라엘로 살게 됩니다. 환도뼈가 어긋나는 상처는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한 사건이며 평생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출발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 살아가며 우리 안에 소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한 보배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 용기가 없고 내가 믿고 있는 힘의 원천이 무너질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도 예수의 흔적이 없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1:54 그분의 자기 종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도다.
1:55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자비는 그분의 백성들 위에 영원토록 있으리라.”
인간은 누군가에게 나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도 안되고 베풀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돈이 힘이 되는 시대에 움켜쥔 손을 펼치면 잃어 버린다는 생각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움켜쥔 손을 펼치고 나눌 때에 빈손이 아니라 하나님은 놀랍도록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바닷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베풀고 흘려 보내면 또 채우시고, 공급하셔서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베푸는 것도 섬기는 것도 내가 지닌 컵의 크기만큼 퍼내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 큰 그릇으로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동안 무시 당하지 않게 악착같이 모았던 돈을 토색한 것에 대해서 4배나 갚겠다고 결단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삭개오를 찾아 가셨던 주님께서는 이 자리에도 찾아 오십니다.
예수의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자리에서 주께서 이미 이루신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심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인생의 그릇에 담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이 마음에 이르러 찬양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비천한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지친 마음에도 이미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초대를 받고 초대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예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분의 하신 일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지고 곱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을 평탄해져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눅 3:4-6)









(대림절 네번째 주일, 성탄전일)
기다림 시리즈 4
마리아의 찬가I
The Magnificat: Mary’s Song of Praise
누가복음 1:38-42, 46-49
유민용 목사
38 마리아가 말했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이 제게 다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39 ○ 며칠 후, 마리아는 일어나 유대의 한 산간 마을로 서둘러 갔다 40 그녀는 사가랴의 집으로 들어가서, 엘리사벳에게 인사했다. 41 마리아의 문안인사를 받을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서는 아기가 뛰놀았다. 그때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42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마리아야, 너는 여인들 가운데서 큰 복을 받았구나. 네 태중에 있는 아기도 복을 받았구나 … 46 ○ 그러자 마리아가 이렇게 찬양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주 하나님을 내가 진실로 기뻐함은, 48 주께서 비천한 이 몸을 돌보셨음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축복받은 자라 하리니, 49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그분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음이라.(쉬운말 성경)
38 Mary responded, “I am the Lord’s servant. May everything you have said about me come true.” And then the angel left her. 39 A few days later Mary hurried to the hill country of Judea, to the town 40 where Zechariah lived. She entered the house and greeted Elizabeth. 41 At the sound of Mary’s greeting, Elizabeth’s child leaped within her, and Elizabeth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42 Elizabeth gave a glad cry and exclaimed to Mary, “God has blessed you above all women, and your child is blessed…46 Mary responded,“Oh, how my soul praises the Lord. 47 How my spirit rejoices in God my Savior! 48 For he took notice of his lowly servant girl, and from now on all generations will call me blessed. 49 For the Mighty One is holy, and he has done great things for me.(New Living Translation)
대림절기 4주 동안 기다림의 여인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라합과 수가성의 여인, 룻에 이어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살펴 볼 여인은 마리아입니다. 누가복음 1장 46절로 56절까지의 표제어가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누가복음 1, 2장 안에는 3개의 찬가가 나오는데 축복의 노래로 불리는 사가랴의 찬가(1:67-79),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므온의 찬가(2:29-31), 오늘 본문인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라틴어로 힘누스(Hymnus)는 ‘기도의 노래’라는 뜻인데요, 찬가를 모아 놓은 책이 바로 성가집입니다. 위키백과 사전은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의 종류 가운데 하나라고 찬가를 정의합니다. 대개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는 찬미가(讚美歌)라고 표현하고, 개신교에서는 찬송가(讚頌歌)로도 말합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발표하는 부서별 드리는 찬송도 찬가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메갈뤼네이: Μεγαλύνει’ 라는 단어는 ‘크다’ ‘위대하다’ 등의 뜻을 지닌 ‘메가스: μέγας’단어에서 유래된 동사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를 라틴어로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부릅니다. 메시야를 기다린 마리아의 찬가에는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찬양하는데 2주 동안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 곁에 들려오는 찬가를 통해서 마리아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인류 구원을 이루는 약속된 말씀의 성취를 노래합니다.
누가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여인으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가 ‘두려워 말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는 기다리던 메시야가 자신의 몸을 빌려 나온다는 천사의 말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합니다.(눅1:38) 마리아는 예수의 성육신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마리아는 구약의 말씀을 믿고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기다린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야를 수천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을 통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시작합니다.
아브라함때 부터 계획한 언약이 마리아를 통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보도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토록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말씀의 성취를 실제적으로 누린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리아의 찬가’는 아기 예수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 힘찬 팡파르 악기로 시작을 합니다. 이 구원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감사의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문을 쓰며 바흐의 마리아의 찬가를 들으며 준비했는데 여러분도 이번 성탄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헌신적이며 진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아브라함부터 계획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쁨인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제품을 좋아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절에 독일이나 미제 제품을 좋아하던 이유가 생산품질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Made in God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처럼 인간의 모습 지니고 오셨습니다. 웃고 울고 외로움을 느끼는 분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주님은 궁극적인 인간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낮고 낮은 자리로 오신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받기 전의 이방인의 모습을 5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첫째는 그리스도 밖에 구원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둘째는 언약백성이 아닌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셋째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언약에 들어오지 못한 외인이요. 넷째는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자요. 다섯째는 이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인생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이 담을 허물기 위해 예수께서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받는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삶으로 성도로 칭해 해주시니 주님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일은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자나 이방인들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데 마리아의 찬가는 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예수가 이땅에 오시기 700여년전 이사야 선지자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것이요.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사 9:6,7)라고 예언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의 하나이지만 너에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다. 그는 영원 전부터 있는 자이다.”(미가 5:2) 매우 세세하게 탄생을 예고합니다. 찾아보면 구약성경은 온통 예수를 이야기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한 사건으로 끝나 버린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이 구원을 노래했고 현재까지도 생생히 살아서 우리 곁에 들려오는 것입니다.
(2) 마리아의 찬가는 말씀을 향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침에 눈을 뜰 때 떠오르는 생각이 어떤 것들입니까? 우리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대면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은 말씀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할 때에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고백했습니다. 20세기 영국의 의사 출신 복음주의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1899-1981)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침체되어 있는 영국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아서 ‘영적침체’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침체하는 원인과 치료방법을 성경에서 파헤칩니다. 그리고 21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영국 성도들의 마음에 불신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낳게 되리라는 천사의 말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유대법으로는 돌에 맞아 처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반응한 마리아에게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이 임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약 150km 떨어진 남쪽 헤브론 유다 지역까지 족히 4일 이상 걸려서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서둘러 자신의 친족 엘리사벳에게 가서 천사의 소식을 전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감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라고 마리아에게 용기과 확신을 줍니다. 이때 엘레사벳은 세례요한을 임신한지 여섯달쯤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눅 1:36) 뱃속에 있던 세례 요한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소식을 듣고 태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기록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이 얼마나 서로를 복되게 하는 만남입니까? 세례요한은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습니다. 참된 삶은 무엇보다 만남이요. 그 만남은 전인격적인 삶의 변화의 사건을 가져다 줍니다.
비천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순간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엄청난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48 주께서 비천한 이 몸을 돌보셨음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축복받은 자라 하리니, 49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그분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음이라
마리아의 찬가에는 분명한 자기고백과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큰일을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몸이라고 고백합니다. 복은 우리의 부요함과 가난함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자기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 자체가 복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부요함과 비천함은 아무런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낮은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의 복입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위하여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을 누리를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평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고 약속이 온전히 성취될 것을 믿었던 여인입니다. 메시아가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했던 마리아는 자신의 삶에서 준비한 옥합을 깨트렸고 순종함으로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통하여 세상이 전해주는 낙심과 불안의 메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수많은 낙심의 일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받는 자로 삼아 주셨고 우리를 통하여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마리아의 찬가’가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