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후 제 11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4
그러므로, 하나됨의 신비를 풀다
Therefore, The Mystery of Unity Was Solved
에베소서 4:1-10
1 그러므로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2 곧,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시고, 많이 참으십시오. 3 평강의 띠를 매고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 모두는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5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천지 만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일하시고, 만물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7 ○ 하지만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신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가 높은 보좌로 올라가실 때 포로들을 사로잡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9 이처럼 그가 “올라가셨다.”라고 하셨으니, 이 말은 곧 그가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또한 이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던 그 자신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니, 그것은 그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1Therefore I, a prisoner for serving the Lord, beg you to lead a life worthy of your calling, for you have been called by God. 2 Always be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with each other, making allowance for each other’s faults because of your love. 3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 united in the Spirit, binding yourselves together with peace. 4 For there is one body and one Spirit, just as you have been called to one glorious hope for the future.5 There is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6 one God and Father of all,who is over all, in all, and living through all.7 However, he has given each one of us a special gift[a] through the generosity of Christ. 8 That is why the Scriptures say,“When he ascended to the heights, he led a crowd of captives and gave gifts to his people.”[b]9 Notice that it says “he ascended.” This clearly means that Christ also descended to our lowly world.[c] 10 And the same one who descended is the one who ascended higher than all the heavens, so that he might fill the entire universe with himself.(New Living Translation)
1985년에 발표된 “We Are the World”는 천재지변과 기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2차 대전 이후에 1990년 초까지 전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로 국제 질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6.25 전쟁 이후 분단된 조국땅에서는 올림픽 개최식 때 ‘손에 손잡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노래는 이념과 민족의 장벽을 넘어 하나됨을 위한 갈망의 노래였습니다. 이번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는 희소병을 겪고 있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셀린 디옹이 1년 7개월 만에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개막식때에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국제 대회인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서, 인류의 통합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지나친 경쟁심은 하나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경기를 보는 국민들도 민족주의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시간이지만 세계인들의 하나됨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은 고대 세계에서 힘과 용맹을 과시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축제는 종종 종교적 행사와 결합되었고, 그리스에서는 그들의 신이던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종교적 축제를 벌이며 더 강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가나안에서는 풍요와 다산의 신과 관련된 종교적 축제를 열었고, 남성의 힘을 과시하는 종교 의식을 갖었습니다. 로마시대에 로마가 추구하던 코스모 폴리탄(cosmopolitan) 즉 세계시민의식과 바울이 추구하던 코스모폴리탄은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그는 헬라 문화권인 다소라는 도시에서 성장하며 나는 유대인인가? 아니면 헬라인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이방인 유대인으로 생활하면서 외국인로서의 경험을 직접 피부로 겪었습니다. 오늘날의 이민 2세대가 부모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새로운 시각이 열렸습니다. 유대의 종교관을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됩니다. 당시 로마 사회가 군사적 힘으로 ‘하나의 도시’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그의 삶을 헌신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 ‘그러므로’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복음의 연결 다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두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고,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구약 성경의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성경의 전통적인 관점을 배웠고,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1장부터 3장까지 기독교 믿음의 교리, 즉 믿음의 이론에 대해서 서술했다면 4장 부터는 믿음의 실천편을 기록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한 하나의 공동체는 다원주의나 종교적, 사회적 통합, 전인류적인 사랑 차원의 하나됨이 아닙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구별됨에서 시작을 합니다. 출발점이 한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예수의 마음에서 확장되어 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까지도 감수하며 기뻐했고,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연대했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하나됨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연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에 담긴 하나됨의 신비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1절에서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몸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한다고 말합니다. 순교를 앞둔 바울의 이 권면은 힘이 있었고,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빚진자들입니다. 죄사함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누군가를 환대하고, 용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누구나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뜻대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아들의 결말이 어땠습니까? 모든 재산을 잃고, 그 삶이 궁핍해 졌습니다. 결국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를 먹는 지경에 이르러 비로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내면의 결핍감이 있습니다.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어합니다. 나를 증명하는 일,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 게다가 소비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부족함을 주입합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유대교적 성전의 의미를 뛰어 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종교적 형식 안에 갇혀 있다가 성령 안에서 내면의 충만함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변화가 됩니다. 그 새생명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일치와 하나됨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며, 하나됨을 기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되게 하신 것을 믿고 지켜 나가게 됩니다.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믿음을 통해서 하나됨을 경험하고 연습하며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4:2 곧,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시고, 많이 참으십시오.
4:3 평강의 띠를 매고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바울의 권면들은 그리스도의 집을 튼튼하게 세우는데 필요한 재료들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겸손과 온유함의 모델이신 그리스도께 길들여 져야합니다. 멍에를 매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께 배워 나가야 합니다. 배우라는 것은 훈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기질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고유한 것이기에 상대방을 변화시킬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용납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변화가 됩니다.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마음을 돌이키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던 모세는 이땅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12:3) 성도는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질 때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내 것을 위해서 상대방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용납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뿌리가 됨을 증거하십니다. 우리의 내면에서는 인간의 욕구와 하나님의 성품이 충돌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되게 하시는 평강의 띠가 되십니다.
계속되는 권면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4절로 6절입니다. 4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 모두는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5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천지 만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일하시고, 만물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몸은 참 신비롭습니다. 우리의 눈이 하루에 몇 번이나 깜빡일까요? 인간의 뇌의 저장용량은 얼마나 될까요? 몸속의 세포는 몇 개나 되며, 피를 생성하는 심장은 하루에 몇 번이나 뛸까요? 물론 기본적인 지식은 검색하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몸의 신비로움입니다. 우리의 몸은 유기체적으로 여러 기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며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를 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한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를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한소망 안에서 부르십니다. 성령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천지 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우리교회는 지역 특성상 신앙생활을 하다가 공부를 마치고 나면 보스턴을 떠나게 되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지역 교회 안에서 한몸이 되려고만 한다면 시간이 흐르고 떠나는 교우들을 볼 때마다 허전한 마음이 들고 지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교우들이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세례가 하나라는 것은 한번 세례를 받음으로 일생동안 교회의 일원으로, 세상속에서 한 사람의 교회로 살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자아가 죽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의 믿음이 다르고, 예배하는 방법이 달라도 한 분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의 교회가 됩니다.
또한 몸은 시간이 흐르면 녹슬게 됩니다. 어느 한 기능이 약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부서의 지체들이 함께 이루어 나갈 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한몸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연약한 지체들을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4:7 그러나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신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4:8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가 높은 보좌로 올라가실 때 포로들을 사로잡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4:9 이처럼 그가 “올라가셨다.”라고 하셨으니, 이 말은 곧 그가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4:10 또한 이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던 그 자신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니, 그것은 그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성도의 공동생활’의 책에서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몸과 몸을 부대끼며 함께하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옥에 갇힌 바울은 죽음이 임박하여 디모데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찾아와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다시 보길 원했으며 디모데를 보는 것이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사귐을 갖는 것이 육신적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과 친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축복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각자가 그리스도께서 나눠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은사를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서로의 다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한 몸에서 손과 발의 역할이 다르고, 눈과 귀의 역할이 다르듯이, 교회 안에서도 각자가 맡은 역할과 은사가 다를 뿐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나치게 한 사람이 많은 짐을 지고 섬기다 보면 지치게 되고, 섬기는 사람들은 번아웃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며 맡겨진 분량에 따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3에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하며 사역 중 갈등이나 위기를 극복하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샐러드는 다양한 재료들이 각각의 맛을 내지만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요리가 됩니다. 서로 달라도 조화를 이루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 힘을 모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은 서로의 다름이 기쁨이 될 것이며, 상대방의 부족함은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의 신비를 경험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강림후 제 10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3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기도
Finding Light in the Darkness through Prayer
에베소서 3:14-21
14 ○ 이런 이유로, 나는 무릎을 꿇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립니다. 15 정녕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주신 분입니다. 16 그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굳세게 해 주시고, 17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여러분이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크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나아가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우쳐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의 정도까지 여러분이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20 진실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21 교회 안에서와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빕니다. 아멘! (쉬운말 성경)
14 When I think of all this, I fall to my knees and pray to the Father,[e] 15 the Creator of everything in heaven and on earth.[f] 16 I pray that from his glorious, unlimited resources he will empower you with inner strength through his Spirit. 17 Then Christ will make his home in your hearts as you trust in him. Your roots will grow down into God’s love and keep you strong. 18 And may you have the power to understand, as all God’s people should, how wide, how long, how high, and how deep his love is. 19 May you experience the love of Christ, though it is too great to understand fully. Then you will be made complete with all the fullness of life and power that comes from God. 20 Now all glory to God, who is able, through his mighty power at work within us, to accomplish infinitely more than we might ask or think. 21 Glory to him in the church and in Christ Jesus through all generations forever and ever! Amen.(New Living Translation)
팀켈러 목사 (Timothy J. Keller, 1950~2023)는 2001년 9.11사태로 인해 뉴욕 도시 전체가 어둠의 그림자로 몇주간 뉴욕을 짓눌렀다고 고백합니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크론병 증세로 씨름하고 있었으며, 그해 본인도 갑상선 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외적으로 보면 그의 인생은 어둔 그림자가 드리운 것입니다.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던 때에 기도를 깊이 묵상하며 세상에 나온 책이 우리가 잘 아는 “팀켈러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3장 1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이라고 시작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일로 죄수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지 4년 남짓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몸은 감옥에 있었지만 옥중에서 성경의 많은 서신서들을 남겼습니다. 외적인 환경이 바울의 마음 안에 있는 복음을 향한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시간을 통해 바울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우리는 바울의 옥중서신들을 읽으며 하나님의 깊고 넓은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절실한 기도를 합니다. 당시 서서 기도하던 풍습속에서 무릎 꿇고 하는 기도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마치 예술가들이 처해진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처럼 바울의 기도에서 창조의 힘으로 그를 깨우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보게 됩니다 옥중에서 드리는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의 기도였습니다. 바울의 기도를 묵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힘이 느껴집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사명감과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드리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현실로 인해 감사의 마음을 잃어가고, 마음이 불안하고 즐겁지 않다면, 어둠속에서도 빛 가운데로 초대하는 바울의 기도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한 기도가 언제 시작될까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인식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그의 마음을 닮아가는 시간입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대부분은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을 앞두고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점검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첫째, 바울은 기도하는 대상이 분명했습니다. (15절)
3:15 정녕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주신 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해 주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의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다른 집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는 않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아빠와 같이 친밀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아버지로 인식하고 친밀감을 지니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아이가 다가와 부르는데 대답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를 향한 갈망과 주어진 현실 사이에서 주님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방향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정말 주님이 함께 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실수가 없는 분이 맞는 것일까? 의심하고 낙심하기 충분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을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바울은 어둠속에서도 빛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어둔 골방의 감옥에 있었지만 바울의 마음만큼은 하늘과 땅과 모든 족속들에게 이름을 주신 분께 향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의 세계가 펼쳐지듯이 기도는 우리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깊은 세계를 알게 해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잠잠히 구하면 구원의 기쁨을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시 62:1) 오히려 고난속에서도 우리를 깊은 기도속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깊은 기도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할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 질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기도하는 내용이 분명했습니다. (16-19절)
16 그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굳세게 해 주시고,
바울은 성령 안에서 속사람을 굳세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기도의 힘이 바로 성령에 힘입는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육신의 몸은 갇혀 있지만 그의 영혼이 억눌리지 않았던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겉모습은 웃고 있으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속사람은 참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사연들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힘들어 하면서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잘 가고 있다고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용기를 지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지만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사람은 억압받고 고통 받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데 불행함을 느끼고, 경제적 억압에서 벗아나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무지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배우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학문의 깊이 가운데 스스로의 존재가 주눅 들게 됩니다.
영성가인 리처드 포스터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은 지능이 높거나 혹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고,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힘은 바울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역사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으니라”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치유할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3:17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여러분이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서,
공동번역의 성경으로 보면,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번역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마음의 집 주인으로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의 집에 들어와 사실 수 있도록 믿는자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사는 것이 어떤 삶일까요?
마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고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바울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계시면 여러분이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게 될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마음 안에 두고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이 사랑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미워하는 방식에 더 익숙합니다. 시대정신이 경쟁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마음에는 미움이 자리하게 됩니다. 사회에서는 마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불편하면 만나지 않으면 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사귐을 갖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3:18 모든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크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3:19 나아가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우쳐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의 정도까지 여러분이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에서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 사랑과 신뢰는 돈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가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교육도 돈을 주고 배우고 사랑도 돈의 가치로 평가되는 시대입니다. 사제 관계도 돈을 주고 배운 선생이고, 돈을 받고 가르치는 제자가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관계 보다 세상의 가치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들을 그 안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의 죄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워가야 합니다.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깊이와 넓이, 높이와 길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더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사랑의 빚진자임을 기억할때에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셋째,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으로 마칩니다.
3:20 진실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3:21 교회 안에서와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빕니다. 아멘!
바울은 이전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안에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막힌 담이 허물어 지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연합되고 관계 맺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교회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넓은 사랑, 끝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측량할수 없는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냉냉한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것 같을지라도 옥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바울의 얼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일상 가운데 발견될 것입니다. 바울은 옥중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이전세대로 부터 지금의 세대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광의 중심에 교회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영광이 나타나는 영역들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간구합니다.
1995년에 개봉한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폴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벌어진 깡패들의 총격전으로 임신 중이던 아내를 잃게 됩니다. 그는 깊은 슬픔에 빠져 불행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작가였던 폴은 펜을 내려놓으며 슬픔에 잠깁니다. 그러던 중 담배를 사러 동네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14년 동안 그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은 매일 아침 8시에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 스크랩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계산대 위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 대화 하다가, 폴은 가게 주인이 찍은 4000장이 넘는 앨범들을 보게 됩니다. 가게 주인은 매일 아침에 찍었던 사진들을 폴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폴은 매일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의 비슷한 장면들을 보면서 황당해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담배 가게 주인은 다른 앨범들도 볼 수 있게 가져다 주며 이것이 내 인생의 프로젝트라고 말합니다. 사진 속에는 여름날의 밝은 빛, 가을날의 은은한 빛, 환했던 아침과 어두웠던 아침의 사진들, 주말과 주중에 찍은 사진들, 분주하게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속에 지나가는 계절이 담겨있었고 서로 다른 표정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담겨있었습니다. 같은 앵글 속에 담긴 사진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앨범을 보던 폴은 갑자기 동작을 멈췄습니다. 그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온 것입니다. 바로 임신 중이던 자신의 아내였습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아내의 일상의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폴은 그리워하던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며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내입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내면의 슬픔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영화의 장면을 보면서 매일 반복되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사소한 것이라 여겨질때가 있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의 의미가 초라해 보일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 특별한 것을 구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하시며, 우리의 처해진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속에 우리는 관객이 아닙니다. 세상이 무대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각본 가운데 인생의 한장 한장마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언제나 우릴 향해 있음을 믿고, 흔들리는 마음까지도 주님께 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기도로 나만의 공간을 채워나갈때 주님과 더 깊이 연결될 것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기도로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한주간도 교우들의 일상과 모든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넘치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