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후 제 26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7
주님이 찾으시는 거룩한 성전
The Holy Temple That the Lord Seeks
마가복음 13:1-8
1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려 하시는데,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성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십시오, 선생님, 얼마나 굉장한 돌들입니까! 참으로 멋진 건물이지 않습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이 건물들이 그렇게도 멋져 보이느냐? 그러나 장차 이 건물의 돌 하나도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3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맞은편의 올리브 산에 앉아계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예수께 와서 물었다. 4 “선생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그런 일이 닥치겠습니까? 그런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미혹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6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7 또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너희는 놀라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지만, 그것이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 8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고, 온 땅의 도처에서 지진이 일어나며, 곳곳의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쉬운말 성경)
1 As Jesus was leaving the Temple that day, one of his disciples said, “Teacher, look at these magnificent buildings! Look at the impressive stones in the walls.”2 Jesus replied, “Yes, look at these great buildings. But they will be completely demolished. Not one stone will be left on top of another!” 3 Later, Jesus sat on the Mount of Olives across the valley from the Temple. Peter, James, John, and Andrew came to him privately and asked him, 4 “Tell us, when will all this happen? What sign will show us that these things are about to be fulfilled?” 5 Jesus replied, “Don’t let anyone mislead you, 6 for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the Messiah.’[a] They will deceive many. 7 And you will hear of wars and threats of wars, but don’t panic. Yes, these things must take place, but the end won’t follow immediately. 8 Nation will go to war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earthquakes in many parts of the world, as well as famines. But this is only the first of the birth pains, with more to come. 9 “When these things begin to happen, watch out! You will be handed over to the local councils and beaten in the synagogues. You will stand trial before governors and kings because you are my followers. But this will be your opportunity to tell them about me.[b] 10 For the Good News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c] 11 But when you are arrested and stand trial, don’t worry in advance about what to say. Just say what God tells you at that time, for it is not you who will be speaking, but the Holy Spirit. 12 “A brother will betray his brother to death, a father will betray his own child, and children will rebel against their parents and cause them to be killed. 13 And everyone will hate you because you are my followers.[d] But the one who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New Living Translation)
한 방송인이 유럽을 방문 중, 중세 시대의 화려한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정교한 조각들과 천장의 그림들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눈물의 의미를 묻는 PD의 질문에 그녀는 자리에 앉아 기도하며 당시 성전을 건축하던 이들의 신앙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답했습니다. 시대마다 지어진 건축물은 종교와 문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나오실 때 한 제자가 성전을 보며 감탄합니다. ‘선생님, 얼마나 굉장한 돌들입니까! 참으로 멋진 건물이지 않습니까!’ 당시 성전의 주춧돌 크기가 가로가 7.3m, 세로가 1.2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크기만으로도 성전의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압도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성전 건축이 5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왔으니, 제자가 헤롯 성전을 보고 감탄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제자들의 대부분은 갈릴리 시골 출신이었기에, 그 웅장함에 감탄한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반응이 조금 이상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게 “이 건물들이 그렇게도 멋져 보이느냐? 그러나 장차 이 건물의 돌 하나도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 구원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성전이 무너진다는 예언은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성전이 보이면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성전을 향해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예언은 성전에 흠을 내는 것조차 불경스럽다고 여겼던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의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실제로 A.D. 70년에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헤롯 성전이 파괴되어 잿더미로 변했으며, 예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이 헤롯성전의 파괴만 두고 하신 교훈일까요?
성전을 우상시 하고 진정한 신앙을 잃버버린 것에 대한 유대인들을 향한 경고라고 여겨집니다. 학자들은 제자들의 이 질문과 예수의 대답에서 성전 파괴와 세상 끝이라는 두 사건이 신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예수의 사역을 완성하는 측면들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심판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시사합니다.
첫째,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의 파괴는 외식과 화려함을 간직한 유대교의 심판적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되었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은 성도들 안에는 성령께서 함께 거하십니다.
다니엘서 7장 14절에서 인자의 오심은 예수의 권위와 왕권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4 그러자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께서는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들을 주시고, 또한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과 각기 언어가 다른 온 땅의 뭇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게 하셨으므로, 진실로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여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의 나라 역시 영원한 나라여서 결코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쉬운말 성경) 주의 다스림과 권위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로버트 멍어(Robert Munger, 1911-2001) 목사의 책인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은 우리의 마음을 집에 비유하여 , 어떻게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어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마음의 공간들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보게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곳은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나만이 아는 공간이 됩니다. 누구나 내면의 깊은 곳과 죄성을 가진 연약함은 들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서재, 인간적인 욕구로 가득차 있는 주방, 오랜 시간 동안 주님만 홀로 기다리게 했던 거실, 세상의 기쁨으로 가득했던 오락실,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드릴 수 없다고 낙심하던 그래서 자기의 노력만이 남아있는 작업실, 이러한 마음의 공간을 주님과 함께 둘러보고 난 후에 그는 자기의 힘를 의지하며 살아 온 인생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비밀 공간인 벽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들키고 맙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모습들과 감추고 싶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드리며 항복했습니다. “주님 당신께 이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벽장을 여셔야 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십시오. 제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산과 가옥과 부지의 집문서를 꺼냅니다. 내 삶이라 여겼던 그곳 그 자리에서 삶의 주권을 주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날 그의 마음은 주님을 모신 깊은 평화가 영혼에 자리한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잠시 우리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 마음이 반복적으로 무너지고 넘어지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왜어려울까요? 내가 쌓아둔 것을 조금이라도 잃어 버릴까 두렵습니까? 버리고 싶지 않은 옛자아가 원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숨기고 싶었던 비밀스러운 마음의 공간까지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1장에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너희가 이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적 연약함과 죄성으로 인해, 마음 속에 끊임없는 이기심과, 분노, 시기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위선적 신앙에 대한 질책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 안에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고, 종교적 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 마음은 강도의 소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죄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시고, 율법으로 죄를 드러내셨지만, 온전한 순종을 이룰 수 없었기에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짐을 가능하면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셨고, 이어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기 위한 절규가 느껴집니다. 그럼으로 기도의 집은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머무르도록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들이 모여 교제하며 지나간 이 자리에는 미움과 원망, 거짓과 분쟁이 사라지고 ‘하나되게 힘쓰라고’ 하신 주의 말씀만이 남게 됩니다.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고통이 담긴 사랑을 이해하게 될때에 마음 안에 찾아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도 결국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트집을 잡고 잘못을 들추어 내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예수께서 헤롯성전을 나가시게끔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예배를 드리기 전에 성전 앞에 놓여진 촛불을 밝히며 “성령이여 이곳에 오소서, 이곳을 성별하소서”라는 고백을 드렸습니다. 켜져 있는 촛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공간을 만드시는 성령께서 지금도 이 자리에 운행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거룩함이 상실되어 진다면 인간의 마음은 언제든지 부패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불의한 세상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연한 순은 약하고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줄기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셨습니다. 그 빛이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고 계십니다.
둘째, 거룩한 성전을 지키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난 제자들은4 “선생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그런 일이 닥치겠습니까? 그런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종말의 때와 시기에 관심을 두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종말의 징조를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모두가 이 종말의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종말이 끝이 아닙니다. 이미 죽음 권세를 이기고 마음의 성전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겪게 되는 슬픔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신 주안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두려움과 절망이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이미 이전의 삶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시선은 종말의 시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나 종말은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안에 있는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라 보아야 하는 성전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마음 안에 찾아오는 수많은 아픔들 그런데 그 아픔을 씻겨 내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을 압도하고 있으신가요? 헤롯 성전이 주는 장엄함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신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미워하고, 맞서 싸우고, 맞받아 치고, 이기는 자와 지는 자를 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오히려 불편하고 아프고 힘든 순간에 더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허용하시는 고난이라면 모든 것은 주안에서 유익한 일이 됩니다. 예수께서 오시고 난 뒤에 이천년 동안 교회는 끊임없는 저항과 핍박속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보여지고 들려지는 일들로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종말을 사는 성도는 거룩한 마음의 성전을 잘 지키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세의 때에 주어진 임무는 기도의 등불을 켜고,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정작 이러한 때에 교회는 예수님으로 인해 모이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거룩해진 백성으로 삶을 살 각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끝이라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의 완성으로 이해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적 의식은 현실을 극단적으로 벗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극단적인 종말론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미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게 될 때에도 ‘너희는 놀라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지만, 그것이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나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고 하셨고,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때와 기한은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세의 징조만을 언급하신 것은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의 자세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줍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의 책 ‘영적 침체‘를 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영적인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형 잡힌 신앙과 영적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의 신앙생활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과업과 소명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을 쉽게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도 교훈합니다.
끝이 없는 듯한 문명의 발전에 우리는 길을 잃어 버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화려한 현대 문명의 그늘 뒤에 가려진 채 더해 가는 세상의 방법들을 멈추고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길은 많아 보이지만 출구가 없는 이 시대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며 우리 삶을 통해 거룩한 성전을 세우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1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미혹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13:6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13:7 또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너희는 놀라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지만, 그것이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 13:8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고, 온 땅의 도처에서 지진이 일어나며, 곳곳의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미혹은 억지로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동조하거나 추종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직전에는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내가 그리스도라고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미혹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러한 일들이 만연하게 되면 폭력과 전쟁, 무질서와 불법은 사회 안에서 횡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종말의식은 내 마음의 거짓과 부패함, 타락해져 가는 것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주어진 사명을 다해 살아가면 됩니다. 한주도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하늘의 교회를 향하여 지속적으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이땅에서 우리의 삶이,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성전이 되도록 살아가며 매일의 삶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강림후 제 25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6
작지만 가장 큰 마음
A small but the greatest heart
막 12:38-44
38 ○ 예수께서 또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율법 교사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긴 예복은 입고,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인사 받기를 좋아합니다. 39 또한 그들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만 찾고, 잔칫집에서도 윗자리에만 앉습니다. 40 뿐만 아니라, 과부들의 재산을 가로채 빼앗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장차 더 엄중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41 ○ 한번은 예수께서 성전 뜰에 있는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 넣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많은 돈을 넣는 부자들이 적지 않았다. 42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 43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넣었다. 44 다른 사람들은 넉넉한 가운데서 조금 떼어내어 넣었지만, 저 과부는 극히 가난한 중에서도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바친 것이다.” (쉬운말 성경)
38 Jesus also taught: “Beware of these teachers of religious law! For they like to parade around in flowing robes and receive respectful greetings as they walk in the marketplaces. 39 And how they love the seats of honor in the synagogues and the head table at banquets. 40 Yet they shamelessly cheat widows out of their property and then pretend to be pious by making long prayers in public. Because of this, they will be more severely punished.” 41 Jesus sat down near the collection box in the Temple and watched as the crowds dropped in their money. Many rich people put in large amounts. 42 Then a poor widow came and dropped in two small coins. 43 Jesus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I tell you the truth, this poor widow has given more than all the others who are making contributions. 44 For they gave a tiny part of their surplus, but she, poor as she is, has given everything she had to live on.”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율법교사와 가난한 과부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사회에서 상반된 신분을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율법교사는 부와 존경을 받으며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렸던 사람들이었고, 반면에 과부는 가난과 멸시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이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경건한 모습을 과시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린 것은 주님께서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부유한 율법교사들이 가난한 과부의 재산을 착취하는 탐욕적인 마음과,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모든 것을 드린 과부의 마음은 분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섬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는 이 말씀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마음의 자세를 재조명하게 합니다. 물질의 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와 가난한 과부를 대조하면서 참된 경건의 본질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율법교사들은 외적인 모습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한 반면, 가난한 과부는 모든 것을 드리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첫째, 참된 경건을 어떻게 채워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다윗의 연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르켜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칭찬 하셨는데, 다윗의 마음을 볼수 있는 기도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역대상 29장 12절에서 14절입니다.
12 이 세상의 온갖 부요와 영광이 모두 주께로부터 말미암으니, 진실로 주께서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강하고 위대하게 되는 것도 모두 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높이 찬양합니다. 14 주여, 우리가 이토록 즐겁게 예물을 바칠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저나 제 백성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주께로부터 나온 것이며, 우리는 주의 손에서 나온 것을 다만 주께 바쳤을 뿐입니다.(역대상 29: 12-14)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또한 다윗은 사람이 강하고 위대하게 되는 것도 결국 주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주님을 향한 찬양의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찬양과 감사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은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의 진실함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뜰 벽을 따라 일렬로 놋쇠로 만든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13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 뜰에 있는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 넣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당시 모든 화폐는 금속을 주조하여 만든 동전이었기 때문에 헌금의 많고 적음을 소리로 쉽게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여러 부자들이 와서 많은 돈을 헌금하는 것은 인간적인 과시로 헌금을 했다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을 주목하셨습니다.
“많은 돈을 넣은 부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 “넣다”, “던지다”라는 단어는 ἔβαλλον (에발론)으로 미완료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는 부자들이 반복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동전을 집어 넣은 모습을 묘사합니다. 아마도 놋쇠로 된 헌금함에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길고도 크게 들렸을 겁니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은 ἔβαλεν (에발렌)으로 부정과거형으로 쓰여있습니다, 이는 과부가 동전 하나를 조용히 넣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때 과부가 헌금을 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유추해 볼수 있는 것은 동전 한개의 소리가 작고도 초라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심으로 드린 과부의 헌금을 더 많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차이는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돈과 성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다르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물질과 명예가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내면의 진실된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외식하는 자가 되기 쉽도록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세상속에서 높아지기 위해, 소유하며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살아가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과 가정과 일터 그리고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 보시고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의 걸음입니다. 내가 가진 마음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아픈 마음도 먹먹한 마음도 주님 앞에 온전히 내어드리며 나의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회복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 참된 경건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세상의 섬김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성도의 섬김은 하나님을 위한 섬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서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의 죄와 내면의 연약함을 깨닫고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 그 사람의 내면의 동기가 변화하게 됩니다. 부족한 것이라도 채워주려는 마음,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는 자들이 되십시오.”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의 삶을 살아가십시오.(쉬운말 성경)
많은 사람들이 ‘경건’을 겉으로 드러나는, 눈에 띄는 말이나 행동으로 오해합니다. 경건의 삶은 먼저 마음의 동기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회개한 후에 그 동안 토색하던 물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반이나 돌려 주었습니다. 이는 그의 물질관이 변화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경건의 삶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경건해질수록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들은 자신을 더 낮추며, 주님처럼 내어주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율법교사들은 회당이나 잔칫집에서 항상 윗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를 길게 하는 등 외적인 경건을 중시했습니다. 물론 기도를 길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성전에서 일어난 마지막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앞장인 마가복음 11장에서 주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시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강력히 질책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성전이 그저 상업적 이익을 위한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으며, 이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회복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성전의 개념을 외형적인 건축물에서 신앙의 내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여 “마음의 성전”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고린도 전서 6:19-20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KRV 고린도 전서 6:19-20)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 안에 충만히 임재하시면, 점차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모습에 치중하며 살아갑니다. 겉모습은 깨끗하고 화려해 보여도, 내면의 상태가 부패하면 결국 그 모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만일 겉은 깨끗한 컵이지만 안에 담긴 내용물이 오래되어 신선하지 않다면 결국 그 컵의 내용물은 썩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지도자였던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1615 – 1691)는 ‘참목자상’이라는 책에서 ‘자아성찰’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은혜의 역사가 자신의 영혼안에서 온전히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라 둘째,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음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은혜가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보라 셋째, 행동이 자신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지 살펴 보라 넷째, 다른 사람의 죄는 지적하면서 자신은 혹시 그런 죄에 빠져 있지 않는지 살펴보라 다섯째 자신의 사역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갖추기 꺼려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라
경건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도움을 줄 때에는 드러나지 않게 도우라고 하십니다. 드러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낮아져야 하는 것이 성경의 지혜입니다.
마태복음 6:3-4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3 그러므로 당신이 친절을 베풀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십시오. 심지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조차도 모르게끔 하십시오. 4 그렇게 해서, 당신의 자선 행위를 아무도 모르게 고이 숨겨 두십시오.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는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쉬운말 성경 마 6:3-4)
교회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시선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형식과 겉모습만 남고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Oswald Chambers, 1874-1917) 는 ‘제자도’라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 아무도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영광을 구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자리가 신앙인들에게 위험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유혹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과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교사들의 경건이 형식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위엄과 지위를 과시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 했습니다. 물론 모든 율법교사들이 다 경건의 형식만 추구한 것은 아닐겁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교훈해주셨습니다.
믿음의 시선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려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원리입니다. 믿음의 본이 되신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실한 믿음의 길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걸어 가다보면 고난 앞에서 울 수 밖에 없고, 매일의 마음의 넘어짐 앞에서 주저 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까지도 내어 드리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작은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큰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 진실한 마음 붙들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순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의 삶에 이번 한주도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