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42
어둠을 밝히는 빛
The Light that Shines in the Darkness
이사야 9:2-7
9:2 그리하여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위로 그 영광의 빛이 비쳤도다.
9:3 “주님, 진실로 주님께서는 이 나라를 번성하게 하셨고, 이 백성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농부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듯이, 군인들이 전쟁에서 이긴 후 전리품들을 나누어가질 때 즐거워하듯이, 지금 이 백성이 주님 앞에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9:4 옛적 기드온 때에 주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여지없이 쳐부수신 것처럼, 이제 또다시 주님께서 이 백성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멍에를 부숴 버리시고, 이 백성의 등짝을 후려치던 압제자의 채찍과 몽둥이를 부러뜨리셨기 때문입니다.
9:5 이 땅을 쿵쿵 짓밟았던 침략자들의 군화와 이 땅 백성들을 마구 죽였던 그들의 피 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 모조리 불살라졌기 때문입니다.”
9:6 ○ 보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도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들을 주셨도다. 그 아기가 장차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니, 그분의 이름은 ‘기묘하신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불릴 것이다.
9:7 그분께서 다스리실 때, 그분의 왕권은 날로 더욱 더 커지고, 그분의 나라는 언제까지나 평화로울 것이다. 그분께서는 자기 조상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분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다. 정녕 전능하신 만군의 주님께서 열심을 내셔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쉬운말 성경)
2 The people who walk in darkness will see a great light. For those who live in a land of deep darkness, a light will shine. 3 You will enlarge the nation of Israel, and its people will rejoice. They will rejoice before you as people rejoice at the harvest and like warriors dividing the plunder. 4 For you will break the yoke of their slavery and lift the heavy burden from their shoulders. You will break the oppressor’s rod, just as you did when you destroyed the army of Midian. 5 The boots of the warrior and the uniforms bloodstained by war will all be burned. They will be fuel for the fire. 6 For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The government will rest on his shoulders.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7 His government and its peace will never end. He will rule with fairness and justice from the throne of his ancestor David for all eternity. The passionate commitment of the Lord of Heaven’s Armies will make this happen! (New Living Translation)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시는 26세의 요제프 모르(Joseph Mohr)라는 오스트리아의 사제가 1816년,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에서 쓴 시입니다. 당시 교회 오르간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바탕으로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성탄절에 부르는 평화롭고 따뜻한 찬양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 찬양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의 이프르 지역에서 평화의 메세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전쟁과 참호전의 일상에 병사들은 자연스레 지쳐갔고, 어느덧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참호에서 대치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어둠속에 묻혀 있던 각자의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는데, 상대방 참호에서도 캐럴이 들려오자 누군가가 참호 위에 촛불과 전등으로 장식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양측의 수많은 병사들이 너도나도 참호 위로 올라왔고, 서로 포옹하고 담소를 나누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양측 참호 사이 버려져 있던 양군 시신들을 수습했고, 뒤이어 축구장을 급조해서 팀을 나눠 축구까지 했습니다. 밤이 되자 이들은 같이 캐럴을 부르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한 다음, 다시 각자의 참호로 돌아갔습니다. 이 기적을 이끌었던 노래가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고 합니다.
찬양이 전해주는 힘은 이렇듯 음악이라는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메세지가 됩니다. 두려움과 혼돈의 시간속에서 성탄의 기적은 서로의 마음에 평화와 어두운 곳을 밝히 비추는 사랑의 힘을 전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둔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며 기쁨의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한밤중에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일치할 때 기쁨으로 노래하지만, 그 뜻이 어긋날 때에는 실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내 뜻과 내 믿음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많은 예술 작품들이 고통의 밤을 지나며 후대에 걸쳐 위대한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시달리던 반 고흐의 작품들,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창조된 베토벤의 명곡들은 모두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예술의 승화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은 ‘환희의 송가’로 불리며, 듣는 사람들에게 글자 그대로 환희와 감동을 줍니다. 그 가사 중 일부는 성탄의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만인이여, 엎드려 빌겠는가? 세계여, 창조주가 느껴지는가?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서 아버지를 찾으라! 별의 저편에 주님께서 반드시 계실 것이다. 환희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리라!”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현시대가 아닌 후대에 더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당시에도 마리아와 요셉은 호적 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에 도착했으나, 출산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그 밤은 어둠에 묻힌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오심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위로 그 영광의 빛이 비쳤도다. 농부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듯이,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누듯이, 백성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이 예언은 구원의 빛이 백성들에게 비춰질 날이 올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6절은 더욱 자세히 말합니다. “보라,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났도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아들을 주셨도다.” 여러분, 여기서 ‘태어난 아기’와 ‘우리를 위해 주어진 한 아들’이라는 두 표현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1531년 12월 24일, 종교개혁의 중심지인 비텐베르크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 한날 2번의 걸친 설교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아이의 탄생이 단지 역사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태어났다는 확신을 갖고 루터는 설교를 전했습니다. 그의 설교문을 보면 “이 아기는 내게 주어진 10굴덴 금화처럼,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이 아기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임을 확신하는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당시 10굴덴는 독일에서 사용되던 금화로, 그만큼 확고하고 깊은 믿음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16세기 초 독일에서 노동자는 대개 한 달에 1에서 3 굴덴 정도를 벌었으므로, 10 굴덴은 한 사람의 수개월 또는 1년 치 급여에 해당할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 그림을 한번 보시지요. 하지만 주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수준이 아니라 그 보화를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태어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주어집니다. 이사야는 이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하며 그에게 4가지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 아기가 장차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니, 그분의 이름은 ‘기묘하신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불릴 것이다.
‘기묘하신 모사(Wonderful Counselor)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생각을 초월하시는 신성의 표현입니다. 예수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주어진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삶의 순간에도 우리의 상담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가 확신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흔들릴 때에도 신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절실히 느낄수록, 주님은 더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평안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기는 본래 연약한 존재로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데,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라는 칭호는 한 아기로 오신 것과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탄의 신비 가운데 참사람이자 참하나님이신 그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친밀함과 훈계가 우리를 성숙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직접 찾아 오신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어둠 속에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며 빛을 창조하셨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이 사실은 성탄에 담긴 가장 분명한 은혜입니다. 우리를 위해 오심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셨고, 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어깨 위에 세상의 죄와 고통을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어깨 위에 놓인 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음을 치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은 모두가 ‘우리를 위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분의 의의 옷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화려한 것들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빛을 잃고, 잠시의 치장에 불과합니다.
기드온이 살던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두운 암흑기였고, 고통과 고난이 가득한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미디안 군대에 비하면, 전쟁을 위해 선발된 300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은 지극히 초라한 숫자였습니다. 13만 5천명의 미디안 군대를 상대하려면 한 명의 군사라도 더 있어야 할 텐데, 하나님은 불필요한 자들을 다 돌려보내고, 오직 믿음으로 남은 300명만을 선발하셨습니다. 이 숫자는 세상의 방법과 승리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단단한 마음도 부드럽게 변화됩니다. 인생이 평생을 짊어지는 고통과 수고라면, 주 안에서 우리는 그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내어주고 용납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회복의 과정입니다.
오늘 성탄예배를 맞이하여, 5명의 아기들이 유아세례를 받게 됩니다. 유아세례는 부모와 교회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이 아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것을 결단하며 책임을 지겠다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하듯, 세례를 통해 이 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 자라도록 인도할 것을 다짐하게됩니다. 부모는 태어난 아이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 순간을 소중히 다루며 사랑을 전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내 살이 아픈 듯 느끼고, 아이가 성장하여 마주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부모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아이를 맡기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 주신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불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책임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성탄절은 단지 우리만의 기쁨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해져야 할 기쁜 소식이자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고, 그 빛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비추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어둠에 묻힌 밤에 있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십시요. 평화를 애쓰는 그곳에서 성탄의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림절 셋째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41
“분주한 세상 속에서 찾는 기쁨과 너그러움“
Finding Joy and Consideration in a Busy World
빌립보서 4:4~9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한번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십시오. 주께서 가까이에 계십니다. 6 어떤 일이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오직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도록 하십시오. 7 그렇게 하면, 모든 인간적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8 ○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형제들이여, 무엇이든 참된 것과 무엇이든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 옳은 것과 무엇이든 거룩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무슨 덕이나 칭송이 있든지 모쪼록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살도록 하십시오. 9 그리고 여러분은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4 Always be full of joy in the Lord. I say it again—rejoice! 5 Let everyone see that you are considerate in all you do. Remember, the Lord is coming soon. 6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7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 8 And now, dear brothers and sisters, one final thing. Fix your thoughts on what is true, and honorable, and right, and pure, and lovely, and admirable. Think about things that are excellent and worthy of praise. 9 Keep putting into practice all you learned and received from me—everything you heard from me and saw me doing. Then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New Living Translation)
대림절 세 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잘 알면서도, 때때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상처로 인해 잠 못 자며 뒤척이기도 하고,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기쁨이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내면 깊은 곳을 밝혀 주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지난주 Emmanuel Gospel Center에서 열린 목회 연구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인 2세 사역자가 북미 신앙 공동체를 연구하고 신앙 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들을 의미있게 나누었습니다. 이민교회 안에서 1세대와 2세대가 동일한 말씀을 들음에도, 문화적 차이로 인해 동일한 단어 조차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commitment’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한인 2세대는 개인의 의지적인 결정과 헌신, 자기결정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이해하는 반면, 1세대 들은 ‘commitment’가 공동체를 위한 희생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 차이로 인해 공동체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서로 다른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열려진 복음, 즉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통해 구별됨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너그러움을 보이면서도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기독교적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하며, 더 넓은 차원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한번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십시오. 주께서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와 문화를 연결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참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세기를 살아 내시고 현재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쓰신 ‘교회 밖 하나님 나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책의 일부입니다.
“1962년 봄학기에 하버드 대학에 가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 라인홀드 니버가 와 있었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들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선조나 선배들 덕분에 세계 최고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데, 그것을 다 우리 것이라 여기고 우리끼리만 행복하고 즐겁게 누린다면 미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선조들이 물려 준 부를 못살고 힘없는 나라들에 나눠 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 보내고 아시아에도 보내 그 나라들이 잘 살게 되면 미국은 더 잘살게 되어 있습니다. 나눠주지 않고 움켜 쥐려고 하면 위험합니다.”
62년 전 라인홀드 니버는 하버드 강의에서 부유함을 독점하려는 위험성과 나눔의 가치를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현재 미국과 한국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과 너그러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리처드 니버는 기독교 윤리학자로 신앙 공동체가 주변 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탐구하면서, 그리스도와 문화의 유형을 구분하는 작업을 통해 후대에 탁월한 고전을 남겼습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너그러움은 너무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참된 기쁨이 있어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너그러운 태도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너그러운 태도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심을 인식하고 있을 때 비롯되는 행동인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의 기쁨과 너그러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우리의 마음을 걱정거리에 두다 보면, 마음 안에 더 큰 염려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께서 가까이 계심을 인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실의 어려운 문제 앞에서 주님의 기쁨을 잃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신앙 생활이 세상이 만들어낸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들에 영향을 받아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일이든 걱정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걱정과 근심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구하면,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1611-1691)가 쓴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그 당시 16세기 프랑스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엄청나게 불안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니콜라 에르망(Nicholas Herman)인데, 그가 어느날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생활하며 ‘로렌스 형제’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주방 일과 신발 수선을 하던 그는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경건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수도원에서 주방일은 가장 힘든 곳이었는데 그로 인해서 수도원 주방이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깨졌습니다. 그는 부엌일이 아무리 바쁘고 어려워도, 하던 일을 혼자 하게 될때에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이 책은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없이 평범한 일상에서 실천한 하나님의 임재 연습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뛰어난 글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실천했던 그의 연습들이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당시 모든 문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마틴로이드 존스의 영적침체의 책에 실린 구세군 교회의 대장으로 섬겼던 존 조지 카펜터(John George Carpenter)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과 아내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던 딸, 동양의 선교사로 청춘을 바친 사랑하는 딸을 어떻게 잃었는지 기록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부부는 당연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기도하면서도 ‘주님이 원하시면 이 아이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고쳐달라고 하지 못하고 원하시면 고치실 수 있습니다’ 라고만 했습니다. 그 이상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6주동안 기도했고 어여쁜 딸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딸이 죽던 날 아침 존 카펜터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정말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안하네. 아내는 자신도 그렇다고 하면서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평강이예요. 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평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속에서 느껴지는 평강은 어떤 것일까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평강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평강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이해를 넘어서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할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이 부부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기독교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세상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8 ○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형제들이여, 무엇이든 참된 것과 무엇이든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 옳은 것과 무엇이든 거룩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무슨 덕이나 칭송이 있든지 모쪼록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살도록 하십시오.
9 그리고 여러분은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헬라 문화에서 중요시되었던 덕목들을 생각하면서 배우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거룩한 것, 사랑스러운 것과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무슨 덕이나 칭송이 있든지 모쪼록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영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도 칭송받는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우선시 하면서도 세상속에서 덕을 쌓는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에게도 칭찬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사람들로 부터 칭송을 받을 만한 가치를 염두 해 둔 표현입니다.
이러한 덕목들을 삶에 녹여내는 것은 세상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삶의 간격을 줄여가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평생 추구해야 할 거룩함입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리 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속에서 만족을 누리며 자족하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9:22-23)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책임은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들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여전히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십니다. 희망이 위태로워지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등불을 밝혀 하나님의 빛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 세상의 소망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 사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일생을 바쳐 훈련해야 할 일입니다. 두려움과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에게 없는 평안과 기쁨을 가득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주의 깊게 보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과 너그러움을 실천하며, 주님을 증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의 삶에 하나님의 평강이 풍성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