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2. 2025 주일설교

(주현 후 제 2주)

새해 말씀 시리즈 2

“있는 모습 그대로”

“Just As You Are”

시편 8:3-6

8:3 주께서 주의 손가락으로 친히 만드신 저 하늘과 또 창공에 매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우러러 바라봅니다. 4 참으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듯 생각해 주시며, 과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토록 보살펴 주시는지요! 5 주께서는 사람을 신적인 존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지만,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또 주께서는 손수 지으신 것들을 사람이 일일이 다스리게 하시고, 온갖 피조물들을 사람의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쉬운말 성경)

3 When I look at the night sky and see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you set in place
4 what are mere mortals that you should think about them, human beings that you should care for them?
5 Yet you made them only a little lower than God and crowned them[e] with glory and honor.
6 You gave them charge of everything you made, putting all things under their authority(New Living Translation)

이 사진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입니다. 미켈란 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 벽화는 그가 33세에 그리기 시작해서 4년의 시간 동안 목과 머리를 뒤로 젖힌채 작업을 마친 작품입니다. 벽화의 그림을 요청을 받고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온 열과 성의를 다하여 작품에 임하게 되었는데 벽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그가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완성했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성당 문을 나서던 순간 그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작품임을 깨닫게 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 서명 같은 것을 남기시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를 그려 놓고는 나를 자랑하려 했다니” 그는 즉시 되돌아가 천정 벽화에서 자신의 서명을 지워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에서 그의 믿음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본문에서 시편의 기자는 하늘, 땅, 자연만물, 하늘의 달과 별들, 무한한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와 비교할 때, 인간은 너무나 작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특별히 생각하시고 보살펴 주시며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8:3 주께서 주의 손가락으로 친히 만드신 저 하늘과 또 창공에 매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우러러 바라봅니다. 4 참으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듯 생각해 주시며, 과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토록 보살펴 주시는지요!

수천 년 전 다윗의 눈에 비친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해를 보고, 공기와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내가 특별히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의 손가락’으로 창조하신 하늘과 달, 별들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크리스천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히브리서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과 함께 히브리서의 구절도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8:5 주께서는 사람을 신적인 존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지만,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9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낮아지셨지만, 마침내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이기고, 지금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신 채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를 우러러 봅니다. 정녕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구약 성경에 매우 해박한 인물로 추정됩니다. 그가 기록한 하나님이 행하신 비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깐 동안 낮아지셨다’는 구절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낮아지셨지만”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지만 그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신” 상태로 아버지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그가 얻은 궁극적인 승리를 나타냅니다.

시편 8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에 대한 찬양의 시인데, 히브리서의 구절은 시편 8편에서 말하는 인간의 ‘영광과 존귀’를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실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경험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잠깐 동안 낮아지신 이유를 첫째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주기 위함이며, 둘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귀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 보시겠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평생 마귀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히 2:15)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인간 안에 자신의 형상을 새기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억눌린 인간을 찾아오셨고, 그분의 오심으로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82년 12월 4일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받는 간호사들은 울었고, 태어난 아이를 안아 주라는 의사의 권면에 엄마의 반응은 이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고 데리고 나가 달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이 아이를 받아 들이기 까지는 목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에게도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의 부모는 절망과 충격속에서 틈만 나면 눈물을 쏟았습니다. 또한 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원망과 고통속에서 몸부림칩니다. 8살이 되었을때에 이 소년은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자 마음 안에 절망과 파괴적인 충동들로 인해 3번이나 자살 시도를 합니다. 그는 어릴때 부터 팔과 다리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이 소년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15살 때에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셨고, 그의 입술을 통하여 절망과 불행속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주님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가 바로 호주의 복음 전도자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1982-현재)입니다.

닉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발견할 때, 자신의 인생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신체적 약함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약함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잠깐 동안’의 세상에서 하나님은 닉을 구속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팔과 다리가 없는 몸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은 그의 몸을 고쳐주지 않으셨지만, 닉은 자신의 약함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도 사용하십니다. 당신이 느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부족함과 상처도 하나님 앞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분의 손길이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는 죽음이 죽어버린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땅에서 영원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한줌의 흙만 남게 되기에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해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삶을 영위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잊으시지 않지만 우리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잊곤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서로 누가 크냐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께서 형제라고 부르신다고 말씀합니다. 2장 11절 보시겠습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구절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형제가 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한 피로 형제 삼아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각자가 믿음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약함을 가진 바울은 오히려 그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을 통해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닫고, 그 약함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의 삶에 머물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합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기꺼이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9, 개역개정)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도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고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단순히 죽음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혹시 예수님을 잘 믿는데 억울한 일을 겪고 계십니까? 그럴 때일수록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의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셨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다.  6 또 주께서는 손수 지으신 것들을 사람이 일일이 다스리게 하시고, 온갖 피조물들을 사람의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와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단순히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내면을 채우지 못하여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영적 공허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과 능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메시지 성경은 오늘 본문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주님의 거대한 하늘, 캄캄하고 광대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손수 만드신 하늘 보석, 제자리에 박아 넣으신 달과 별들을, 그리고 한없이 작은 내 모습에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걱정하시고 우리 인생길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살뜰히 살피십니까? 하지만 우리는 신들보다 조금 못한 자들, 주님은 에덴의 새벽빛으로 빛나는 우리에게 손수 지으신 세상을 맡기시고 창조의 임무를 되새기게 하셨습니다.”(메세지 성경)

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면 그저 감사와 은혜 밖에 남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인간을 회복시키고,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유명한 사람도, 무명한 사람도 모두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또 다른 귀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새해에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문제와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하나님이 주신 뜻을 따라 맡겨진 책임을 적극적으로 다하며,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믿음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강렬한 빛과 같습니다. 그 빛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리 밝은 빛이라도 세상을 비추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믿음의 말 한마디가 어둠을 밝히고,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며, 새로운 생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01. 05. 2025 주일설교

(성탄 후 제2주)

새해 말씀 시리즈 1

“우리는 어디서 출발 했는가?”

“Where did we start from?”

시편 139: 13-16

139:13 진실로 주께서는 내 몸 깊은 곳의 모든 장기를 다 만드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몸을 온전히 빚어 주셨습니다. 139:14 이 몸이 이토록 신기하고 오묘하게 빚어졌으므로, 주께서 하신 일이 하도 경이롭고 놀라워, 내가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솜씨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신지, 내 영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139:15 내가 은밀한 어머니 뱃속에서 빚어지고 있을 그때에, 곧 내가 땅 밑 깊은 곳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짜 맞추어지고 있을 그때에도, 주께서는 이 몸의 형체를 이미 다 알고 계셨으니, 내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인들 어찌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겠습니까! 139:16 내 몸의 형체가 아직 갖추어지기도 전에, 주님의 눈은 나의 온전한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나를 위해 정해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책에는 이미 다 기록되었습니다. (쉬운말 성경)

13 You made all the delicate, inner parts of my body and knit me together in my mother’s womb. 14 Thank you for making me so wonderfully complex! Your workmanship is marvelous—how well I know it. 15 You watched me as I was being formed in utter seclusion, as I was woven together in the dark of the womb. 16 You saw me before I was born. Every day of my life was recorded in your book. Every moment was laid out before a single day had passed.(New Living Translation)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시작이자 기회입니다. 서로의 속도가 다를지라도, 주님께 드리는 모든 섬김과 예배 가운데 진심을 담아 한해를 시작하길 소망합니다.

작년에 52개의 주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2024년 성탄주일에 주보를 준비하면서 순번이 한주씩 밀리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지난 주보들을 살펴보니, 종려주일 12번 주보 이후 13번을 건너 뛰고 부활주일 주보를 14번으로 기록하는 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주보 번호가 하나씩 밀린 상태였고 성탄 주일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을 53번의 번호로 마무리해야 할지, 아니면 51번을 두 번 기록하고 52번 주보로 마쳐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온전하게 주보를 마치기 위해서는 51번의 주보를 2개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1는 2라는 분명한 명제를 믿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사랑의 개념 안에서는 우리의 자아가 죽고 주님만 드러낸다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생각끝에 결국 2024년도 주보는 52번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한 창조의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단지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창조하신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음을 믿고, 그 뜻을 따라 겸손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새해 말씀 시리즈는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이 한 문장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는 그분과 동행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선택하게 될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비록 13번 주보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연말에야 알게 된 것처럼, 결국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출생과 죽음에 대해 정직하게 대면해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것을 목격한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에 담긴 성경의 권위를 믿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궁금증을 품습니다. “왜 그런지?”, “이게 무엇인지?” 등 수많은 질문을 부모에게 던집니다. 진리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로부터 왔는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와 같은 궁극적인 물음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성경은 간단히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길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예수님의 선언 가운데 여섯번째 진술은 ‘내가 곧 길이요’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길이 되신 주님, 그 길을 우리는 기웃거리기 보다 용기 내어 따라가야 합니다. 홀로 걷는 길 같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당시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이 길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알려 주자 수제자 베드로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주님께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썩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런 다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졸지에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사단이라 불렸습니다.

최초의 인류의 죄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한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는 교만의 표출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선악과 나무 앞에서 했던 질문은 죄를 지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자유롭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유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기쁨과 자유를 주셨는데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형상을 주입시켜서 에덴의 언약을 깨뜨리게 했습니다. 오늘날 시대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우리의 관점으로 판단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부당하게 느껴지도록 유혹합니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자신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라고 주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삶에서는 정작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곧 길이니,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청지기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데 우리가 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강하신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의 기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생명 여정을 하나님의 신비로운 손길로 찬양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시편의 인간 창조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인간의 출생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몸속의 모든 장기는 단순히 오장육부를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정서, 의지, 개성까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139:13 진실로 주께서는 내 몸 깊은 곳의 모든 장기를 다 만드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몸을 온전히 빚어 주셨습니다. 139:14 이 몸이 이토록 신기하고 오묘하게 빚어졌으므로, 주께서 하신 일이 하도 경이롭고 놀라워, 내가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솜씨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신지, 내 영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솜씨에 감탄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위대하고 놀랍다고 표현합니다. 그 결과 모든 장기와 심장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만 터져 나오는 감탄입니다.

139:15 내가 은밀한 어머니 뱃속에서 빚어지고 있을 그때에, 곧 내가 땅 밑 깊은 곳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짜 맞추어지고 있을 그때에도, 주께서는 이 몸의 형체를 이미 다 알고 계셨으니, 내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인들 어찌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겠습니까! 139:16 내 몸의 형체가 아직 갖추어지기도 전에, 주님의 눈은 나의 온전한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나를 위해 정해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책에는 이미 다 기록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은 생명을 품어내는 사랑의 장소입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모든 생명은 탯줄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숨을 쉬며 10개월 동안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나올 때에는 탯줄을 끊고 새로운 방식으로 숨을 쉬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세상에 태어납니다. 시편 51편 5절은 “보라,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임신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태어난 이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어느 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마주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 안에서만 아니라, 구속의 계획 안에서도 온전하게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질문에서 감탄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감탄이 없는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강점이 교만을 부추기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약점은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자격지심에 빠지게 합니다. 수천 년 전, 이 시를 썼던 시인의 믿음과 통찰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디서 부터 우리가 왔는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참된 자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벨론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이 유년기든, 청소년기든, 청년기든, 혹은 청장년기든 그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앞에서 세상의 ‘바벨론’이라는 영적 탯줄을 끊고 살아가라고 2025년의 새로운 시간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또 다시 참된 인생을 부여 받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시작된 시간도 점차 지나가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발견된 구원은 궁극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세상의 눈물과 고통, 절망과 죽음을 거두어 가신 주님은 우리가 한해 동안 겪는 모든 일들 속에서 새로운 출구가 되어 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는 삶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로 믿는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비웃고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믿음이라는 기적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는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깊이 아시기에, 그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사계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이 있듯,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도 다양한 시기와 변곡점이 있습니다. 2025년이 어떤 이에게는 봄날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겨울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각자의 계절에 맞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은혜와 도우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이에게 노년기의 성숙함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온전한 삶의 배움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맞춰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계절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새해가 시작되며 새로운 결단을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믿음의 도전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이들은 점점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계절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적과 삶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고, 새해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