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6 2025 주일설교

(당회 주일)

새해 말씀 시리즈 4

새해 어떻게 살 것인가?

How Should We Live in the New Year?

시편 111:1-10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 새로운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와 반대되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영생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우리의 목마름이 아니라 영적 갈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 알게 되는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 한구절을 더 보시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영생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나타납니다. 순종하지 않는자는 영생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의 구절들에서 영생이 예수님을 아는 것, 믿는 것, 순종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시편의 찬송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영원’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3절에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도다. 5절에는 그들과 맺은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신다. 8절에서는 주께서 정하신 법도는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다. 9절에는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으니, 진실로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위대하도다. 10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들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게 되리니, 영원토록 주를 찬양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영생을 믿고, 영원한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끝없는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것,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 주어진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인생의 풍랑을 만나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수 없는 불확실한 삶을 헤쳐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힘과 권세로 내몰고 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일으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의와 신실한 언약을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시편에서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도다’ 라고 찬양하는 선언은, 그 의로움이 영원히 변함없음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은 우리 수준 이상의 위대한 일을 이룰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결단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여전히 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일까요? 고백만 하고 결단하지 않는다면, 정말 주님을 닮아가려는 길에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기 위한 선택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결정입니다.

세상은 죽음을 향해 가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셔서 영원한 통치와 영원한 언약이 되셨습니다. 이 소망이 현실을 사는 성도들을 인내하게 합니다. 영생을 추구하는 삶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모호한 세상에서 겪게 되는 고난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은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과 대조가 되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영적인 체육관에서 믿음의 삶을 훈련받게 합니다.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도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라고 선언했습니다. 고난속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길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고난도 믿음의 훈련의 길이었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 고난의 아픔을 공동체에서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고 찾아온 공동체에서도 많은 상처와 거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은 ‘삶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서로의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영성이 공동체의 제자도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괴롭게 덧없이 끝날 때가 많다. 세월이 갈수록 오래오래 공고해지는 관계가 아니라 불화와 결별로 치닫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인 친밀함을 채워줄 사람을 찾다가 우리는 점차 절망에 빠진다. 내 외로움을 없애줄 사람을 찾다 보면반짝반짝하던’ 기대가 하루아침에먹구름으로 잔뜩 흐려진’ 탈진과 우울로 변할 수 있다. 어디를 보나 외로운 사람들 천지다. 현대 서구사회에서 고난의 주된 원인은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공동체란 외로움이 외로움에 매달리는 게 아니다. ……공동체란 고독이 고독을 반기는 것이다. “나도 사랑 받는 자이고, 너도 사랑 받는 자다. 우리는 함께 집을 지을 수 있다.” 서로 가까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참 좋다. 사랑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힘들다.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 우리는 충실할 수 있다. 함께 집을 지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을 위한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 공동체의 훈련 속에 용서의 훈련과 기쁨의 훈련이 있다. 부부 사이, 친구 사이, 기타 모든 형태의 공동체는 용서와 기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헨리 나우웬, 삶의 영성)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오직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용서를 베푸십시오.”(엡 4:32)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현실 속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단순히 우리의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영생이 되시는 주님으로 부터 한줄기 빛을 찾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10 그러므로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누구든지 주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들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게 되리니, 영원토록 주를 찬양하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원했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지혜를 말하지만, 실제로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합니다.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인생의 목적은 단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1절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온 마음 다해 주님을 찬양하리라.”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모여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정직함은 모든 행실의 청렴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자세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 드리고,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만일 지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시금 구해야 할 때입니다.

2절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들이 참으로 크고 놀라우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 모두가 두고두고 그 일을 깊이 생각하고 또 연구하는구나!” 주께서 행하신 일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맡겨진 소명을 깊이 생각하며,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그 악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서 품고 추구하게 하십니다.

3절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들은 진실로 영광스럽고 장엄하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도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냅니다. 이 의로우심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씨앗의 비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씨앗은 땅에 묻혀 썩어져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하고, 그것이 열매를 맺는 과정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 안에 심겨지면, 우리의 삶의 목적과 가치가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이나 가정, 사회에서 겪는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따라 정직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려 할 때, 우리는 그 의로우심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이 현실 속에서 우리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4절 5절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사람들로 다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의 은혜와 자비가 가득 차고 넘치는구나. 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매일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며, 그들과 맺은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신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사건을 말하고 있고, 매일의 양식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여 주신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인듯 합니다. 6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다수의 보고와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주시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믿음으로 보고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자기백성들에게 그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인간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6 주께서는 뭇 민족들의 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심으로써, 그 백성들에게 자신의 크신 권능을 보여주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고, 배고픔과 목마름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매일 양식을 공급하시며 자기백성에게 인내와 순종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광야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가 인내하고 견디는 힘이 됩니다. 믿음은 영생의 개념처럼 추상적이지만, 믿음 생활은 실제적입니다. 기도의 습관을 통해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매일 새벽마다 오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할때 광야에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양식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양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 필요와 일상적인 삶의 어려움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와 자비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유진피터슨 목사(Eugene H. Peterson,1932-2018)는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의 책에서 충만한 삶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이며, 모든 상황과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살균처리가 된 신학 연구실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상황속에서 다루어져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7절과 8절입니다. “7 주께서 손수 하시는 일마다 한결같이 참되고 의로우시니, 주의 법도는 진실로 믿음직스럽도다. 8 그러므로 주께서 정하신 법도는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으리니, 이는 그 법도가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이라.” 오늘날 사람들은 욕망을 따라 나를 위한 삶을 위해 법을 무시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법은 시대가 변하면 변할 수 있습니다. 만일 법이 수시로 바뀐다면 삶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주께서 정하신 법은 영원토록 흔들림이 없습니다. 말씀의 법도를 따르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보호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따르는 자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며, 그들은 영원토록 나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깨달음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할 때, 그분의 지혜와 깨달음은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결국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하는 빛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찾아오시고, 그 안에서 부활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삶의 자리나 형편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걷는 믿음의 여정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보여줄 사명을 받았습니다. 아픔과 상처. 외면 당하고 고통 가운데서도 교회의 공동체에서 사랑 받고 위로 받아 하나님을 다시 붙들수 있도록 서로가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주의 법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마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단지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려는 헌신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도 우리의 공동체도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사랑과 정의로 살아갈 때, 세상은 그 사랑과 정의를 통해 변화하게 됩니다. 이번 한 주도 삶의 자리에서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축원합니다.

01. 19. 2025 주일설교

(주현 후 제 2주)

새해 말씀 시리즈 3

시편 36편의 희망

Hope in Psalm 36

시편 36:5-10

5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6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8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 9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샘물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주의 환한 빛 가운데서 광명을 봅니다. 10 오 주여, 주께서는 주를 섬기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마음이 올바른 이들에게 주의 변함없는 의를 베풀어 주소서. (쉬운말 성경)

이번 미서부 지역의 산불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산불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곳도 있고, 평소에 장을 보던 마트도,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평생을 살아온 자택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고 재만 남았습니다. 뉴스를 듣는데 66세 한 사람이 56년 동안 살던 집을 지키려고 하다가 생명을 잃게 된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 56년 동안 살았던 그 집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때로는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안식처였고, 고된 일을 마친 후 돌아오면 쉼을 주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어릴 때는 그 집에서 성장하며 꿈을 키웠을 것이고, 가족들과 함께하며 안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5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집은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켜켜이 쌓인 소중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불로 그 집이 불타는 순간, 그가 느꼈을 감정은 죽음과도 같은 절망감이었겠지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상실감에 휩싸여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피해 입은 이들을 돕기 위한 특별 헌금을 하려고 합니다. 모아진 헌금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잘 쓰여질 수 있도록 전달하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권면합니다.

오늘 시편 36편은 다윗의 찬양시입니다. 다윗은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다윗은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 라고 찬송합니다.

여기서 ‘주의 집’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의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켰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언약궤를 안치한 성막이었습니다. 성막 안에 있던 언약궤는 하나님의 은혜와 속죄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신앙에서 언약궤는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뜻을 깨닫게 되는 계시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약궤를 전쟁을 이기기 위한  마법상자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할 것들인 돈이나 사람들, 우상들을 섬기고, 섬겨야 할 하나님을 우리의 수단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정확히 드러내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이기심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죄가 감추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약궤 안에 담긴 세가지 성물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드러냅니다.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시며 주신 율법을 나타내지만 또한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죄를 지적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면서도, 당시 고라 자손의 반역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 아론을 선택하신 표적이기도 합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기가 없음을 불평할 때 그들에게 베푸신 하늘의 양식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처럼 언약궤 안에 담긴 성물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의 집은 오늘날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며,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 구속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로 이어집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또 때를 따라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구약시대의 ‘속죄소’가 신약에서는 ‘은혜의 보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보좌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여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총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열려 있으며, 우리는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됩니다. 7절을 보시겠습니다.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학자들은 7절의 주의 날개를 언약궤의 속죄소를 덮은 그룹의 날개에 비유한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언약궤의 뚜껑에는 양 옆에 서로 마주보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그룹이라고 불리는 두 천사가 마주보고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호하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우리는 보호받고 안전하게 숨을 수 있으며 그 은혜는 성도들의 삶을 온전히 감싸고 있습니다.

다윗의 바라본 주님의 은혜는 시편 36편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절에서 4절에서는 악한 자들의 마음이 드러나고,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5절에서 8절에 이르러,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감싸고 보호하는지 고백합니다. 이 두 대조적인 부분을 교차하여 살펴보면, 다윗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악한 자의 마음속에는 온통 죄의 속삭임뿐이어서, 그의 눈에는 하나님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구나. 5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2 저들은 자만심에 가득 차서, 자기 죄를 찾아내어 버릴 생각일랑 전혀 하지 못하는구나.
3 저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모조리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지혜롭고 선하게 행동하기는 애당초 틀려버렸구나.

6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4 저들은 잠자리에 누워서까지도 악한 궁리를 꾸며내고, 스스로 죄의 길에 들어서며, 악한 짓 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구나.

7 오 주여, 한결같은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소중한지요!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8 그들은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실 것입니다.

찬송가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이 찬송가의 유래를 살펴보니까, 프레드릭 밀러(Miller, Frederick S.:1886-1937) 선교사가 찬송가를 작사하고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한국이름은 민노아 선교사입니다. 그가 지은 5곡의 찬송시가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1892년 조선에 도착합니다. 1898년 11월 첫 아들을 낳았으나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고, 1902년 3월 태어난 둘째 아들도 하루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년 뒤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이기에 가족마저 잃으며 힘들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민노아 선교사는 응답 대신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 찬양이 바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입니다. 충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인생의 아픔속에서도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노래했던 것입니다. 양화진에 안장된 그의 아내 안나 밀러의 묘지에는 ‘In Jesus’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평안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복음의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두려움과 절망이 힘을 잃고, 오히려 그 흔적을 지닌채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77세의 일기로 고인이 된 영성학자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1935 – 2013)는 “잊혀진 제자도: The Great Omission”라는 그의 책에서 천국 열쇠가 있다는 것은 천국 접근을 통제하는 의미가 아니라 천국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이며 즐거이 드나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천국 열쇠를 두고 교회는 오랜 논쟁을 벌여 왔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믿는다면 천국의 부를 실제로 가져다 쓸수 있기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믿음으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교회는 이 믿음 위에서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선한 일을 주목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인생을 살면서 예상치 못한 길에서도 꽃을 피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인자와 성실, 즉 자비로우심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거짓됨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의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살리고,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집에서 배불리 마음껏 먹고, 주께서 베푸시는 어진 은총의 시냇가에서 기쁨의 물을 한없이 마시는 것은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9절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9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샘물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주의 환한 빛 가운데서 광명을 봅니다. 10 오 주여, 주께서는 주를 섬기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마음이 올바른 이들에게 주의 변함없는 의를 베풀어 주소서.”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우들의 사랑과 헌금으로 한 개인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는 사랑과 복을 다시 빌립보 교우들에게 흘려 보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 19)

하나님의 구원의 빛 가운데서만 성도는 참된 삶 ,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 냅니다. 주께 속죄함을 받는 빛의 자녀들은 어둠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 빛은 우리가 먼저 받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직접 이 땅에 와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하나님은 참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그는 실패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바라 보며 우리를 희망찬 빛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주여, 주의 인자하심은 하늘까지 닿았고, 주의 신실하심은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주의 의로우심은 웅장한 산줄기 같고, 주의 공평하심은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오 주여, 정녕 주께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결같이 잘 보살펴 주십니다.”

인생은 아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쌓여가는 과정입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자라온 환경과 시간을 보여줍니다. 비가 많이 오고 햇빛이 잘 드는 때에는 나무가 빠르게 성장하여 나이테 간격이 넓어지고, 가뭄이나 햇빛 부족으로 성장이 느려지면 나이테 간격이 좁아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려운 시간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도,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고,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됩니다. 빛의 자녀는 절망하는 이들에게 새 힘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의 삶을 나누며 그 은혜가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때에 성도의 삶속에 귀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