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16 2025 주일설교

(주현후 제 6주)

복 있는 사람은

The blessed person

시편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비웃는 거만한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며, 2 오직 주의 교훈을 즐거워하면서, 그 교훈을 밤낮으로 읊조리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3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풍성히 맺고 그 잎사귀가 조금도 시들지 아니하는 것처럼, 하는 모든 일마다 다 형통할 것이다. 4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그런 자들은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견딜 수 없을 것이며,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6 진실로 주께서는 의인의 길은 인정하고 지켜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쉬운말 성경)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이 시편 1편이었습니다. 본문으로 주일 설교를 준비하는데 신천 장로님들의 장로고시 설교학 시험 역시 같은 본문이었습니다. 한주 동안 같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더욱 뜻깊고 감사했습니다.

시편 1편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복(אֶשֶׁר)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복(אֶשֶׁר) 있는 사람의 삶의 자세가 부정문으로 시작됩니다. 악한 사람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하나님을 비웃는 거만한 사람들과 함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이 결국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안돼’라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아이에게는 거절로 느껴지지만, 부모는 아이가 바르게 자라도록 보호하고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가르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스스로 구분하고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먼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복된 길로 가기 위해, 저는 다른 버전의 말씀도 살펴보았습니다. 쉬운성경에서는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지 않고”라고 번역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시편의 복은 히브리어 에셰르(אֶשֶׁר)라는 단어인데 ‘곧다, 똑바로 가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복 있는 사람은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바른 선택을 통해 우리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복(אֶשֶׁר)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충돌할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가 주의 교훈을 즐겁게 받으며 밤낮으로 묵상하고 깊이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성은 악한 사람들의 꾀를 따르면서도 성공을 이루면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됩니다. 선거철만 되면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험담을 해서라도 뜻을 이루려 하고, 이를 승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지 말라, 그 자리에서 떠나 돌아서라”고 교훈합니다.  ‘복’을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바라크(בָּרַךְ)는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주어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복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복의 두 단어 바라크(בָּרַךְ)와 에셰르(אֶשֶׁר)가 주는 의미를 종합해 보면, 말씀에 순종함으로 바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주변에 복 있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도 복 있는 사람이 되어 그 복을 누군가에게 함께 나누어 주기를 바랍니다.

시편은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동안 노래했는지를 모아 놓은 신앙시입니다. 복 받은 사람들의 이 노래는 몇천년의 시간속에서 드려졌고, 편집과 재편집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편 150편을 5권로 나누며 완성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 1편은 전체 시편을 대표하는 말씀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많은 분들이 시편 1편을 한 번쯤은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익숙한 말씀일수록 내가 잘 알고 있는 길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한국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서는 일은 이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참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도 단단해질 것입니다. 말씀 안에 복(אֶשֶׁר)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는 성경을 ‘펼치는’ 시대가 아닌 ‘켜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삶의 방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접하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안에 담긴 복(אֶשֶׁר)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이 매우 편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더 어려워 졌습니다.

건강과 행복, 평안한 삶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복된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현재 내 삶이 부족하고 작다고 느껴질지라도, 여전히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복을 외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복을 단순히 결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저자는 복(אֶשֶׁר)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자, 삶의 태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 오직 주의 교훈을 즐거워하면서, 그 교훈을 밤낮으로 읊조리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의 교훈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믿기보다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삶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세상의 가치관과 흐름에 영향을 받기 쉬우므로, 주의 교훈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게 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의의 길로 인도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어도, 말씀 앞에 내 삶을 비추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성경 안에 그분의 뜻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즐거움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그 길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길이 곧 복된 삶입니다.

세상의 트랜드, SNS는 우리를 비교하게 하고 다양한 목소리들 듣게 합니다. 여러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아시지요? 실제로 노이즈 캔슬링의 기능을 광고할때 주변의 소음과 세상의 간섭에서 바로 벗어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여 내가 듣고자 하는 음악을 더 명확하게 듣게 해주는 기능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소리와 비교, 불안과 두려움이 더 작게 느껴지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때가 많습니다. 말씀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보다 내 삶의 행복을 추구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다 보면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되면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직장과 학교에서의 압박, 그리고 삶에서 느끼는 불안은 원수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며, 자기 부인을 실천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듭니다. 세상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39)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팔복도 이와 연결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5:3-10) 말씀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더해 주십니다.

말씀의 능력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그 뜻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의 교훈은 우리의 삶에서 살과 피가 됩니다. 때때로 말씀이 기쁘게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럽거나 소화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수록,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이 기쁘고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아픔과 슬픔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1:3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모든 일에 대한 ‘형통’은 단순한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은 그분의 뜻 안에서 얻는 영적 열매이고 결실을 의미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푸른 잎을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1:4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그런 자들은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도다.

1:5 그러므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견딜 수 없을 것이며,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1:6 진실로 주께서는 의인의 길은 인정하고 지켜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시편 1편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결론짓습니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시들지 않으며,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고,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아, 하나님의 심판 때에 견디지 못할 것이고 사막의 떨기 나무 같아서 메마른 황야에 아무런 낙도 없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이 걷는 길의 끝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 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는 복을 누리며,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길로 인도함 받습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지만 복 있는 사람이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폴워셔 목사님의 ‘좁은 문, 좁은 길’에서 참된 신앙은 변화와 결단을 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회개를 동반한다고 가르칩니다. “회개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함 가운데 성장하며, 세상의 우상과 헛된 가치관에 물들지 않으려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나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정한 복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형통한 삶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지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시편의 시작은 복 있는 사람의 삶에 대한 교훈을 주지만, 마지막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할렐루야로 마무리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는 이미 죽음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미래의 승리를 보장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길이 좁을 길이라도 이탈하지 않고 가면 됩니다. 능력의 차이에 따라 앞서 가는 사람도 있고 뒤쳐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좁은 길 위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입니다. 서로가 이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삶입니다.

요한계시록 21:6-7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다. 내가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할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다 상속받게 될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된 길, 곧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세상의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결국 우리를 참된 생명과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이 길 끝에 영원한 대로가 펼쳐질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날을 기대합시다. 한주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믿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0209 2025 주일설교

(주현후 제 5주)

온 마음 다해 믿고 가자!

Let’s trust with all our heart and go!

시편 138:1-8

1 주여,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주를 찬양합니다. 내가 모든 신들 앞에서 주를 찬양합니다. 2 내가 주님의 성전을 향하여 엎드려 경배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진실로 주께서는 주님의 이름과 말씀을 이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도 더욱 높이셨습니다. 3 내가 부르짖는 날에 주께서는 내게 응답해 주셨고, 내 영혼에 힘껏 힘을 불어넣어 주시어 나를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4 주여, 온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 모두가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5 진실로 주의 영광은 한없이 크시니, 그들 모두가 힘차게 주의 길을 노래하게 하소서. 6 주께서는 지극히 높은 데 계셔도 이 땅의 낮은 자들 하나하나를 굽어 살피시고, 아주 멀고 먼 데서도 이 땅의 교만한 자들을 한눈에 다 알아보십니다. 7 내가 비록 고난의 한복판에 있을지라도, 주께서는 나를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강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분노하며 날뛰는 내 모든 원수들을 짓누르시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8 주여, 주께서는 내게 하신 모든 약속들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니, 진실로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부디, 주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몸을 저버리지 마소서! (쉬운말 성경)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주현절기(Epiphany)를 보내고 있습니다. “Epiphany”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것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갑자기 이해하거나 깨닫는 순간’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런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혹은 기도하는 중에,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우리의 삶을 비추고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시편 138편을 통해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했던 믿음의 고백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윗은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의지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다윗의 부르짖음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138:1 주여,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주를 찬양합니다. 내가 모든 신들 앞에서 주를 찬양합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NIV 성경에서는 이를 ‘전심으로’라고 번역했습니다. “All my heart”라는 표현은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담고 있습니다. 유진피터슨 목사님은 메시지 성경에서 ‘내 안에 모든 것이 외칩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윗의 찬양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 나오는 간절한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화살과 창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위협받으며 도망자의 신세로 살아야 했습니다. 아들의 반란으로 인해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고, 왕의 위치에서 백성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고난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안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기도의 응답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에 기도의 힘을 불어 넣으시고 그가 이겨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2 내가 주님의 성전을 향하여 엎드려 경배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때는 언제였을까요? 그것은 그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그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과 목마름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그의 죄와 실수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한 다윗은 영적으로 갈급해졌고, 이 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개와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회개를 받아주시고, 그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 안에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올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길을 잃은 듯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매일 새로운 빛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고통의 순간에서도 우리를 담대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말씀 생활과 기도에서 멀어질수록 세상의 방법들이 더 안전하고 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실패와 고난 가운데에서도 마음을 다하고 전심으로 주를 찾을 때 더 깊어집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이유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죄된 본성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죄의 유혹을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달려가 그 이름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전념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3 내가 부르짖는 날에 주께서는 내게 응답해 주셨고, 내 영혼에 힘껏 힘을 불어넣어 주시어 나를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음은 우리의 내면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갈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소리까지 다 들으십니다. 이 간절한 부르짖음은 한나의 기도에서도 느낄수 있습니다. 한나는 자녀를 갖지 못한 고통 속에서 깊은 갈망을 담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허락하셨습니다.

미국 역사에 신앙의 영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당시 유명한 부흥사처럼 우렁찬 음성이나 과장된 제스처 없이 원고를 읽곤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성경연구에 보내고, 2시간이 넘는 설교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한 거룩한 삶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삶으로 체험한 그가 남긴 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수 있겠는가?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 하나님의 일을 위해 봉헌된 삶이 거룩한 삶이다. 하지만 기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그런 삶을 살수 없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성령과 동행한다고 말할수 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 주장할수 있으랴?…” 지금도 기도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4절에서 다윗의 기도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 왕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4 주여, 온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 모두가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다윗의 이 기도의 성취를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볼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이방 나라의 왕도 이것을 깨닫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을 합니다. 2:47 …“그대가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신이요, 모든 왕들의 주인이로다. 그대가 이처럼 비밀스러운 일을 다 드러낼 수 있었으니, 과연 그대의 하나님은 모든 비밀스러운 일들을 능히 드러내시는 분이시로다.”

다니엘은 노년의 때에도 기도의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총리로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었고, 다리오 왕이 그의 탁월함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를 질투한 다른 고관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왕에게 30일 동안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게 만듭니다. 이 명령에 따르기 위해서는 다니엘은 기도의 방에 들어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26 이제 나 다리오가 그대들에게 조서를 내려 명하노라. 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마땅하나니, 진실로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분으로서, 그분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요, 그분의 권세는 대대로 무궁할 것이기 때문이도다” (단 6:25-26)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의 기도의 습관이 세상의 왕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면 원로 장로님에게 찾아오는 주일학교 아이들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매주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주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따뜻한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장로님의 작은 사랑이 아이들에게 전해졌고, 이제는 아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하여 함께 장로님을 찾아갑니다. 할아버지 장로님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뜻한 교제를 나누는 모습이 참 흐뭇합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지만, 점점 늘어나 이제는 2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흘러가며 감사가 확장되는 모습입니다. 감사와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흘러가며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5 진실로 주의 영광은 한없이 크시니, 그들 모두가 힘차게 주의 길을 노래하게 하소서. 6 주께서는 지극히 높은 데 계셔도 이 땅의 낮은 자들 하나하나를 굽어 살피시고, 아주 멀고 먼 데서도 이 땅의 교만한 자들을 한눈에 다 알아보십니다. 7 내가 비록 고난의 한복판에 있을지라도, 주께서는 나를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강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분노하며 날뛰는 내 모든 원수들을 짓누르시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8 주여, 주께서는 내게 하신 모든 약속들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니, 진실로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부디, 주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몸을 저버리지 마소서!

‘모두가 힘차게 주의 길을 노래하게 하소서’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분의 영광과 위대함을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고, 모든 입술이 주님을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이새의 막내 아들이었던 다윗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은, 길을 잃고 방황하던 우리도 자녀 삼아 주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의 한복판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때와 방식이 아닐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그의 뜻 가운데서 건지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고난의 의미를 로마서 5:3-4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켜 주며, 그러한 성품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 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손길은 희망의 꽃을 피우시고 우리의 삶속에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신앙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힘과 생각을 의지하게 되고 연약함에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찬송가를 부를 때 성도들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아픔의 순간과 어려움의 과정을 지나는 성도들의 눈물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을 경험하는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학업의 현장에서 끊임없는 도전과 고민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학업의 현장에서도 함께하시며,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는 일터의 현장에서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의 연속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의 현장이라고 여기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터에서 찬양과 기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정은 서로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대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단순한 관계를 넘어, 하나님을 만나는 치열한 폭풍 속에서 함께 헤쳐 나가는 믿음의 중심이자, 함께 신앙을 훈련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서로 믿음으로 고백하며 자녀들을 말씀으로 축복해 준다면 우리의 가정 안에 있는 고통과 아픔조차도,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을 경험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며 서로 돕고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시대적 사명을 기억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다윗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힘들어 하는 지체들이 옆에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낮은 자리에서 부터 드러나며 그곳에서 회복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