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06 2025 주일설교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시편 119:9-16

9 ○ 청년이 어떻게 해야 일생 동안 깨끗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 오직 그 길뿐입니다. 10 내가 온 마음 다 바쳐 주님을 찾겠사오니,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 11 내가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12 찬양을 받으실 주님, 주의 법도를 내게 가르쳐 주소서. 13 주께서 친히 입으로 말씀해 주신 그 모든 법도를 내가 입술로 크게 소리 내어 낭독하렵니다. 14 참으로 주님의 교훈을 배우고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욱 큽니다. 15 내가 주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주님의 법도를 깊이 살펴보렵니다. 16 오직 주님의 율례를 나의 기쁨으로 삼고,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쉬운말 성경)

9 How can a young person stay pure?
    By obeying your word.
10 I have tried hard to find you—
    don’t let me wander from your commands.
11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
12 I praise you, O Lord;
    teach me your decrees.
13 I have recited aloud
    all the regulations you have given us.
14 I have rejoiced in your laws
    as much as in riches.
15 I will study your commandments
    and reflect on your ways.
16 I will delight in your decrees
    and not forget your word.(New Living Translation)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힘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만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 말씀을 따라가게 되면 원수는 말씀에 의해서 친구가 됩니다. 실례로 손양원 목사님께서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서 예수를 믿게 한 것은 그분이 말씀을 따를때 임했던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아집과 인간의 본성으로 가득한 현실속에서 말씀에 기록된 사랑과 용서는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을 통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청년이 어떻게 일생동안 깨끗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질문하고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혜문학의 전형적인 기법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 오직 그 길뿐이라고 대답합니다.(9절) 어떻게 하면 일생동안 말씀을 지키며 깨끗하고 온전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이 기도를 하는 시인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가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통해 지금은 희미하게 하나님을 보지만 그때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고전 13:12)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면,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연약함도 강팍함도 훤히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이 입을 옷은 온유함과 겸손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3:15 오직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모시고, 또 여러분이 품고 있는 영생의 소망에 대하여 그 근거를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답변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되, 3:16 온유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또 언제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만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 준 마지막 편지라면, 아버지의 말씀은 그 아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 아들은 세상의 방법을 택하고 아버지를 떠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아버지의 살아계심을 부정하고 유산을 미리 요구하며,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던 아들은 돼지가 먹는 열매조차 먹고 싶었으나, 주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속에 이르러 다시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의 반응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으로 아들을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완전하지 않고 자격없는 부족한 우리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겠다고 고백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시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내가 온 마음 다 바쳐 주님을 찾겠사오니,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소서.(10절)라고 고백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둘째 아들의 뉘우침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졌고, 일꾼으로라도 좋으니 아버지 품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돌아옵니다. 세상에 많은 갈래의 길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이들에게는 이처럼 우리의 옛모습이 힘을 잃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됩니다.

본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절입니다. 히브리어 22개의 알파벳에 따라 배열된 22연의 시입니다. 본 시편을 각 연마다 알파벳 순으로 규칙적으로 짜놓은 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이 시를 쉽게 외우고 노래하도록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릴적 부터 자녀들이 밀씀을 암송하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크게 낭독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자녀들에게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글을 몰라도 암송한 말씀은 성장하면서 자녀의 삶에 있어서 큰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책을 먹으라’는 그의 책에서 강아지가 뼈다귀를 물고 음미하며 씹는 것처럼 말씀의 유익함과 즐거움으로 읽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말씀의 뿌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데 있습니다.

11 내가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왕의 명령과 이방 문화의 요구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살기로 정했습니다. 이 결단은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위험성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며,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바벨론 왕 앞에서 그들의 탁월함을 드러내셨습니다.

바울도 로마감옥에 2차로 투옥되어 순교할 것을 예감했습니다. 그는 제자 디모데에 편지를 쓰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고난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믿음 안에서 굳게 서서 사역을 해나가야 된다고 편지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1절과 16절,17절입니다. “1 디모데여, 그대는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말세에 고난의 시기가 올 것입니다…..16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책망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게 하고, 또 의로써 훈련시키기에 아주 유익한 책입니다. 17 그리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온전히 준비시켜 줍니다.”

바울은 말세의 시기에 넘쳐나는 세상의 풍조들을 열거하고 난 후에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고난임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럴때 일수록 말씀을 굳게 믿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기준과 내 삶의 편안함을 넘어서 우릴 위해서 죽으신 주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 우리의 삶이 구별되어 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잡을 때 자연스럽게 세상의 가치관이 분별되어 집니다.

2024년 빛과 소금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입니다. 지금처럼 모바일을 이용한 인터넷은 상상도 못하던 느린 랜선의 초기 인터넷 시대였는데, 숙소 예약 하나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들고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입국하여 숙소도 찾지 않고 처음 방문한 곳은 바로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였습니다. 의대 공부로 바쁜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미술사에 대한 뼈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베데스다 연못’ 그림을 보며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QT 중에 같은 본문을 묵상하며 주님께 이러한 환자를 보내주신다면 주의 뜻으로 알고 깊이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놀랍게도 그날 한 38세 남성이 근긴장이상증으로 진료실을 찾았고, 마침 요청하지도 않은 보툴리늄톡신 주사가 제약회사로부터 기부되었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시술했고, 일주일 후 환자의 손이 기적처럼 펴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진료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자신이 바로 혈기 마른 병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손이 마치 자신에게 다시 내미시는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 5:8)라는 말씀 한구절의 깨달음은 그를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네 걸음이 네 능력이 아닌 내가 준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주의 교훈과 율례를 따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으로 살던 바울에게 율법 자체는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지키면서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새로운 삶에 눈을 뜨고 난 뒤에 그의 순종과 겸손은 기쁨으로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내어 주는 삶에 자신을 헌신합니다. 그가 고난을 자기 죽음의 기회로 삼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섬김의 길로 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마시는 순간 그 잔은 지나가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는 자기 십자가는 우리의 짐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될수록 주님이 함께계심을 더 깊이 깨닫고 부활의 기쁨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14 참으로 주님의 교훈을 배우고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물을 얻는 기쁨보다 더욱 큽니다. 15 내가 주님의 가르침을 묵상하고, 주님의 법도를 깊이 살펴보렵니다. 16 오직 주님의 율례를 나의 기쁨으로 삼고,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안하고 평탄한 길을 원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하기 보다는 익숙한 길을 걷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새롭게 걷는 길 낯선 길을 걸을 때 만나는 인생의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도록 붙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전하며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은 때때로 외롭고 고된 시간이겠지만 그때마다 시인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때, 불안하고 두려울때 말씀을 붙드는 은혜를 깊이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순종할때에 말씀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교훈을 전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정교하게 지어졌지만, 마지막 절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내가 길 잃은 양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사오니, 주께서 오셔서 주의 종을 찾아 주소서. 나는 주님의 계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 119:176)

시편의 기자처럼 우리도 때때로 길 잃어버린 양처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친히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종을 찾아 주소서’라고 고백할때에 책망하시기 보다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인생에서 마음이 닫혀 있고 차가운 바람이 불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드는 말에 집중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의 힘이 느껴지지 않고 무겁고 낯선 시간이 그저 버겁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기쁨도 느껴지지 않고 불평의 언어들이 삶에 채워지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말씀을 품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내 삶의 가장 연약한 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성도들의 인생 길을 열어 가십니다. 길 잃은 양과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갈 2:20) 하나님 안에서 새생명을 부여받고 말씀을 따라갈때에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오늘의 양식의 말씀 구절을 필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암송하다 보면,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어느날 내게 다가온 말씀 한 구절이 믿음의 여정에서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매 순간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주 동안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보시고 하나님 말씀을 마음 깊이 담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의 언어가 되고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 되어 말씀을 삶속에서 지키고 살아 간다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화 될 것입니다.

03. 30. 2025 주일설교

(사순절 네번째 주일)

죄 사함의 복

Blessing of Forgiveness

시편 32:1-11

32:1 복되도다! 지은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덮어진 사람들이여. 2 복되도다! 마음에 거짓됨이 없어, 주께서 그 죄를 묻지 않는 사람들이여. 3 내가 입을 다문 채 지은 죄를 주께 다 토하지 않았을 때는, 내 마음이 온종일 괴로워 뼈 마디마디가 녹아내렸습니다. 4 그때에는 주께서 밤낮으로 이 몸을 무겁게 짓누르시니, 여름 뙤약볕에 물이 말라 버리듯 내 기력이 모조리 빠져 나갔습니다. (셀라) 5 마침내 이 몸은 ‘내 허물을 주께 다 고백하리라.’ 마음먹고, 내 죄를 감추지 않고 낱낱이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는 내가 저지른 모든 허물과 잘못을 기꺼이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셀라) 6 ○ 그러므로 주를 믿는 경건한 자들이여,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라.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칠지라도,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는 나의 피난처, 모든 재난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 그러므로 내가 소리 높여 주의 구원을 노래하리라. (셀라) 8 그때에 주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내가 몸소 너희에게 가르쳐 주리라. 너희에게서 나의 두 눈을 항상 떼지 않고,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리라 9 그러니 너희는 재갈이나 굴레를 씌워야만 붙잡아둘 수 있는 분별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하셨도다. 10 진실로 악인들에게는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주를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11 올바르게 살아가는 너희 의로운 자들아,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음을 올곧게 먹은 너희 정직한 자들아, 다 함께 기쁨으로 크게 소리를 질러라. (쉬운말 성경)

1 Oh, what joy for those
    whose disobedience is forgiven,
    whose sin is put out of sight!
2 Yes, what joy for those
    whose record the Lord has cleared of guilt,[b]
    whose lives are lived in complete honesty!
3 When I refused to confess my sin,
    my body wasted away,
    and I groaned all day long.
4 Day and night your hand of discipline was heavy on me.
    My strength evaporated like water in the summer heat. Interlude

5 Finally, I confessed all my sins to you
    and stopped trying to hide my guilt.
I said to myself, “I will confess my rebellion to the Lord.”
    And you forgave me! All my guilt is gone. Interlude

6 Therefore, let all the godly pray to you while there is still time,
    that they may not drown in the floodwaters of judgment.
7 For you are my hiding place;
    you protect me from trouble.
    You surround me with songs of victory. Interlude

8 The Lord says, “I will guide you along the best pathway for your life.
    I will advise you and watch over you.
9 Do not be like a senseless horse or mule
    that needs a bit and bridle to keep it under control.”

10 Many sorrows come to the wicked,
    but unfailing love surrounds those who trust the Lord.
11 So rejoice in the Lord and be glad, all you who obey him!
    Shout for joy, all you whose hearts are pure!(New Living Translation)

우리는 흔히 ‘복’ 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적인 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재물을 많이 가졌어도, 원하는 것을 다 이뤘다고 해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죄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 성경은 다른 관점의 복을 제시합니다. 죄 사함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2편은 “복되도다!”라는 선언과 그 복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성경은 본래 인간의 상태를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체질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한구절씩만 살펴보면, 시편 51편 5절입니다. “51:5 진실로 이 몸은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갈 때, 안개가 덮혀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것만 같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면 막연했던 삶의 길 위에서도 인도하시고 회복시키시며 다시 시작할 새힘을 주십니다. 죄를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죄는 우리를 깊은 어둠의 웅덩이에 빠뜨려 고통과 절망 속에서 희망 없이 머물게 만듭니다. 양 손과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그 짐을 내려 놓았을때의 가벼움과 홀가분함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죄 사함의 복은 이처럼 죄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회복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인생의 짐과 무게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평안과 기쁨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더 이상 우리를 불안과 어둠 속에 갇히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양심 안에 죄에 대해 민감성을 지니게 됩니다. 죄의 뿌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막혀있던 죄와 사망에서 풀려나 예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주 안에서 내 것을 내어주기 위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구원의 복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견디고 참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도답게 살면 됩니다.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려 두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약의 제사를 통해 이 죄사함의 복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배우며 살아갑니다. 고난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마음을 평생을 통해 이해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

시편 32편은 참회시입니다. 성서학자들은 다윗이 밧세바 간음 사건 이후 참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겼을때의 고백입니다. 죄로 인해서 나의 마음이 온종일 괴롭고, 뼈 마디마디가 녹아 내렸습니다. 죄가 밤낮으로 이 몸을 무겁게 짖눌러서, 마치 여름 뙤약볕에 물이 말라 버리듯 기력이 모조리 빠지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바울도 자신 안에 이 죄성을 자각하고 로마서 7장에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라고 탄식합니다. 뿌리 깊은 인간의 죄성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8장에서는 전혀 다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바울이 깨닫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죄와 사망의 힘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절망감 속에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때 부터 ‘내가 너를 위해 일하고 있다. 너는 내 아들이란다. 넘어져도 괜찮으니 다시 회복하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며 일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는 400년을 기다리며 일하셨고, 수천년에 걸쳐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기백성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복은 우리가 한 만큼 받는 복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승자가 되면 박수를 받고 상을 받는 세상의 기준에서의 복이 아닙니다.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며 이 은혜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함께 아파하며 내것을 나눠 주는 것이 복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모두가 복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도로 받아주셨기 때문에 신앙의 세계는 예수 안에서 누군가 죽어져야 지체들이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이 일을 위하여 죽기까지 헌신하도록 부름받는 사람들입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 ~ 1737)는 현악기를 제조하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제작한 악기들은 엄청난 가격에 팔렸습니다. 2006년 영국에서는 바이올린이 대략 43억원에 낙찰되었고, 2011년에는 바이올린이 대략 190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가 만든 현악기들은 긴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비결은 장인의 인내와 탁월한 솜씨이며, 그가 사용했던 악기의 재료입니다. 혹독한 겨울 바람을 견뎌낸 나무의 재료가 악기의 품질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 겁니다. 성도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인생의 무거운 십자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날때에 아름다운 찬양이 될것입니다.

2절은 죄사함을 받는 자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거짓됨이 없어, 주께서 그 죄를 묻지 않는 사람들이 복되도다” 암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두렵지 않습니까? 치료받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누워야 합니다. 두렵더라도 치료받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 의사의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환자가 자신의 옷을 그대로 입고 수술을 받겠다고 고집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 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는 자가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6 ○ 그러므로 주를 믿는 경건한 자들이여,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라.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칠지라도,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모든 상황이 주를 만날 기회가 됩니다. 마음이 답답할때,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칠때, 하나님은 믿는자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주어진 상황을 통과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부활의 승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홍수가 나면 모든 것을 휩쓸고 갑니다. 노아의 홍수를 떠올려 보세요. 하나님은 죄로 인한 결과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들고 피할 길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방주를 짓는 노아를 조롱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홍수가 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의 길을 걷는 노아는 비난을 사랑으로 견디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배를 짓는 동안 사람들의 조롱을 인내로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지속적으로 실천 할때 노아에게 사람의 소리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신 사랑입니다. 이 구원의 복이 다윗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시고(7절),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목자가 되어 주심을 고백합니다.(8절)

7 주는 나의 피난처, 모든 재난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 그러므로 내가 소리 높여 주의 구원을 노래하리라. (셀라) 8 그때에 주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내가 몸소 너희에게 가르쳐 주리라. 너희에게서 나의 두 눈을 항상 떼지 않고,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리라.

9 그러니 너희는 재갈이나 굴레를 씌워야만 붙잡아둘 수 있는 분별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살아갈 자유가 있습니다. 재갈이나 굴레를 씌워야만 길들여지는 말이나 노새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는 환경에 놓여져 있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양심의 가책을 주시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때 깨닫게도 하십니다. 완고한 마음을 가진 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서도 돌이키게 하시지만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평안과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잘한 것, 자랑할 만한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과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10 진실로 악인들에게는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주를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다윗의 참회시는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11 올바르게 살아가는 너희 의로운 자들아,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음을 올곧게 먹은 너희 정직한 자들아, 다 함께 기쁨으로 크게 소리를 질러라. 죄 사함의 은혜는 슬픔으로 그치지 않고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자신의 충신의 아내를 범하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한 그는 결코 완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언급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다. 그는 분명 내 뜻을 다 이룰 것이다.’(행 13:22)

죄사함의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이 지닌 소중한 특권입니다. 다윗의 참회의 간증이 우리의 노래가 되고, 주를 믿는 모든 성도의 노래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죄를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와 죄를 고백하고,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예배를 마치고 성전을 떠나기 전 내안에 숨겨진 죄와 마음을 짓누르는 삶의 짐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해 보시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487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찬송시는 19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조셉 스크라이븐(Joseph Scriven 1819~1886)에 의해 작사되었습니다. 젊어서 두번이나 사랑했던 약혼자를 잃고 평생을 혼자 살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며 쓴 시라는 유래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중병에 걸린 후 낙심했던 스크라이븐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작사한 것으로 보는 유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삶속에서 경험된 신앙의 고백이요. 주님께 드리는 찬송시입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은 죄사함의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한 상황에서는 특별한 사람으로 준비시켜 가실 것이고, 고통 당하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소망이 되어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한주도 일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며 기쁨을 나누시고 사랑을 실천해 보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