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27. 2025 주일설교

(부활절 제2주)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The Lord is Always at My Right Hand

시편 16: 8–11

8 내가 항상 주님을 내 앞에 모셔 두고,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즐거우며, 나의 육체도 소망 가운데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10 정녕 주께서는 이 몸을 보호하시어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주의 거룩한 자를 무덤에서 썩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1 주께서 내게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실 것이니, 주 앞에서 나의 기쁨이 항상 흘러넘칠 것이요, 주 옆에서 나의 즐거움이 영원히 충만할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8 I know the Lord is always with me. I will not be shaken, for he is right beside me.

9 No wonder my heart is glad, and I rejoice. My body rests in safety.
10 For you will not leave my soul among the dead or allow your holy one to rot in the grave.
11 You will show me the way of life, granting me the joy of your presence and the pleasures of living with you forever. (New Living Translation)

부활절을 지나 꽃이 피어나는 봄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교회 화단 앞에도 튤립과 수선화가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하나님의 섭리와 생명의 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은 시편 16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메시야의 예언시로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1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정녕 주께서는 이 몸을 보호하시어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주의 거룩한 자를 무덤에서 썩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며 다윗이 먼 미래를 내다보며 한 말씀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증언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이라고 설교합니다. 사도행전 2장 31절, 32절입니다. 2:31 그래서 다윗은 장차 올 일을 미리 내다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분은 무덤 속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분의 몸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다. 32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증인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시편 2편과 본 시편의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셨다고 설교합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로 35절입니다. 13:33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후손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2편에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13:34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시고, 다시는 죽지 않게 하신 이 사실은, 성경에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도 확실한 복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3:35 또 다른 시편에도 기록되기를 ‘주님께서는 주님의 거룩하신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시편의 예언과 사도들의 증언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부활의 믿음은 죽음보다 강한 생명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믿음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의 인생에는 위기와 위험의 순간들이 참 많았고,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광야에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항상’이라는 단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며 그가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16:8) 다윗은 삶과 죽음의 외나무 다리 위를 걸으면서도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을때 하나님은 더욱 더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항상’ 그리고 ‘언제나’라는 표현 안에 다윗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양을 돌보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신다는 보호의 의미를 삶을 통해 배웠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언제나 내 가까이 오른편에 계시니’ 라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사랑하는 딸의 손을 붙잡고 결혼식장에서 함께 걷는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딸의 손을 사위의 손에 넘겨주는 것은 앞으로 딸을 든든히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또한 험한 세상 마지막까지 보호해 주고 싶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는 옆이 아니라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오른편은 하나님의 힘과 보호, 구원과 축복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자로 서 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의 절규는 승리의 선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의 손을 놓치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손쳤을 때에도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강한 손으로 우리를 변함없이 붙잡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새사람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 사랑의 즐거움이 아니고서는 바울과 베드로의 생애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위기 가운데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즐거움입니다. 성도는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 믿음의 길 위에서 즐거움의 대상이 바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이전에 우리가 살았던 옛삶의 마침을 의미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새사람된 성도는 주님이 여전히 함께 계신다는 참된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 말씀을 하실때 제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양과 이리의 싸움은 당연히 이리의 승리일 겁니다. 양은 이리보다 느리고, 겁도 많고 약합니다. 양의 입장에서는 위태롭고, 불안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 세상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여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면서 ‘나는 언제 믿음을 불들게 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불확실한 삶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은 우리에게 불안이 아닌 소망을 전해줍니다. 때때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주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전의 습관과 삶의 패턴,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참된 믿음으로 이끄시는 연단의 여정 속에서 예수님은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알의 씨앗이 죽어져야 이를 통해서 뿌리 깊은 곳에서 부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의 길을 주신 것입니다. 죄의 지배아래 살던 우리를 건져내시고 존귀한 자녀로 삼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속에서 주님이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며, 세상 속에 감춰진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씩 삶속에서 풀어내며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속에서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우리가 평생 붙잡고 가야 할 생명의 말씀을 찾아냅니다.

2025년 2월 5일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황가람이라는 가수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고, 돈을 아끼기 위해 노숙자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그의 인생에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자기도 하고, 라디에이터가 켜져 있는 화장실에서 자기도 했답니다. 쓰레기를 모아 생활하고 노숙생활을 하면서 몸무게는 40kg까지 빠지고, 이러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온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벌레 같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무명의 삶을 벗어나 빛나는 별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벽에 부딪히고, 현실의 어둠을 만나기도 하고, 절망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스스로 빛이 날거라 기대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빛날수 없었던 존재입니다. 그의 오랜 무명생활은 “나는 반딧불” 이라는 노래를 통해 알려졌고 그의 고통과 눈물의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황가람이 부른 “나는 반딧불” 이라는 노래 가사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그분 안에서 빛의 자녀인 것을 깨닫는 성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과 실패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주의 자녀들은 빛처럼 세상을 밝히고, 소망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 시민의 명예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책임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앞서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에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고, 죄된 본성을 거슬러야 하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을 붙들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여겨질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본 시편은 메시아의 예언시로 우리로 하여금 부활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11 주께서 내게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실 것이니, 주 앞에서 나의 기쁨이 항상 흘러넘칠 것이요, 주 옆에서 나의 즐거움이 영원히 충만할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3가지로 표현합니다. 참된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는 분, 나의 기쁨을 흘러 넘치게 해 주시는 분, 나의 즐거움을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 마음 안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언제나 저 멀리에 있기에 현실은 여전히 흔들림 속에 있습니다. 막막할 때도 있고 잘 해내고 있지 못하는것 같은 마음에 하루에도 몇번씩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불안속에 머물러 있는것이 아니라 새 삶을 살아갈 믿음의 용기와 인내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불안에 흔들리고 상처에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에서 말하는 화려한 성공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의 위기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비록 그 안에서 느린 걸음일지라도, 분명한 믿음의 발자국이 남겨질 것입니다. 옛것을 잃고, 놓아버린 자리에서, 현실의 유혹 속에서도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 가는가?” 삶에서 진지하게 반복되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오직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 답이 명확하지 않으니 우리가 씨름하고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헨리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 ~ 1996)의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라는 책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감히 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 죄 때문에 다 내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합당한 반응을 찾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주님의 거룩한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노라면 저는 겸손히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고 주님의 십자가는 소망의 새 징표로 이 세상에 우뚝 섰습니다. 오 주님 십자가 아래 살면서 십자가의 소망을 끊임없이 전파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에 분명한 소망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영원에 이르도록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주저 앉게 될 때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단순히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위로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의 기쁨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구체적인 실천의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깊이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주님은 우리 모두의 속도에 맞춰가며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주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완고했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가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픔과 죄의 모습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압박과 미래를 향한 불안함은 우리를 낙심하게 하지만 부활의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작고 낮은 자리 그리고 여전히 상처 난 자리, 반복적으로 씨름하는 자리에서 믿음의 훈련과 순종을 통하여 부활의 능력이 생명의 길이 되는 부르심의 현장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깊은 영적 기쁨과 부활의 소망은 우리의 삶에서 생명의 능력이 되어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죽은 것 처럼 보였던 꽃이 다시 피어나듯 무감각 했던 우리의 삶과 마음에 참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주 앞의 기쁨과 주의 오른편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며 진정한 생명의 기쁨을 찾아가시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04 20 2025 주일설교

 (부활절 설교/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 설교36)

내가 세상을 이겼다!

I Have Overcome The World!

요한복음 16:31-33

김태환 목사

3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잘 들어라. 너희가 뿔뿔이 흩어질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이미 그 때가 되었다. 너희는 저마다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쉬운성경)

31 Jesus asked, “Do you finally believe? 32 But the time is coming—indeed it’s here now—when you will be scattered, each one going his own way, leaving me alone.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33 I have told you all this so that you may have peace in me.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New Living Translation)

웨슬리는 1791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임종 전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작 와츠 (Isaac Watts, 1674-1748, 영국)의 찬송가 ‘숨쉬는 동안 나는 창조주를 찬양하리라 (I’ll Praise My Maker While I’ve Breath)’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오늘 요한복음 16장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게 되겠지만 그 때도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엄청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떻게 나를 지켜줄 수 있는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편 46편 말씀을 한번 보세요. 이 시편은 ‘고라의 자손 (the descendants of Korah)’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 안에 계시므로, 그 성(城)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그 성을 도우실 것입니다 (God dwells in that city; it cannot be destroyed. From the very break of day, God will protect it., NLT).” (5절) 이 말씀에서 ‘성’은 문자 그대로 ‘castle’ 혹은 ‘city’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을 그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우리의 산성 (fortress)이신 전능하신 ‘엘 샤다이 (El Shaddai)’ 하나님께서 새벽부터 온 종일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고린도후서 4:17). 이 말씀에서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이란 말과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이란 말을 대조해서 읽어 보세요.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당장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된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희망이고,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로마서 8:28).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던 사람들(히브리서 11:27)’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8:24).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

그러면, 예수님이 이기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그리스어 원문에 ‘코스모스 (κόσμος)’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 속에 다양한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영적인 실체 (實體)’를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 ‘마귀’, ‘바알세불’이란 말을 사용하셨고, ‘이 세상의 통치자 (the ruler of this world)’라는 말도 사용하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말합니다.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the commander of the powers in the unseen world, NLT, 에베소서 2:2)’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마음을 붙어 넣습니다. 이밖에 ‘이 세상의 신’, ‘속이는 영’, ‘빛의 천사 (고린도후서 11:14)’라는 말도 사용했습니다.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의로운 하나님의 일꾼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사탄은 제자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와 마치 예수님을 위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일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8:32-33). 사탄은 제자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요한복음 13:26-28). 이처럼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게 만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인 죽음 (spiritual death)’이라고 합니다.

죄를 히브리어로 ‘하타트(חַטָּאת)’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합니다. 모두 ‘과녁에서 빗나가다 (missing the mark)’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떠난 자기 시대 백성들을 향해서 “우리는 다 (목자를 떠난)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NKJV, 이사야 53:6, 베드로전서 2:25)”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길을 잃은(astray)’, ‘돌아서다(turn)’, ‘제 자신의 길로(to his own way)’라는 말들은 모두 ‘과녁에서 빗나간’ 죄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보면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어느 책을 읽다가 본 것입니다만,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미국)가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목적과 방향이 없다면 노력과 용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fforts and courage are not enough without purpose and direction).” 무조건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 올바로 설정되지 않으면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은 삶의 목적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유용하고, 고결하며, 동정심을 가지며, 잘 삶으로 말미암아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The pur­pose of life is not to be happy. It is to be useful, honorable, and compassionate, making a difference by living well).” 삶의 목적이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은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된 삶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고귀한 희생과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산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서른 세 살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제자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학생이고, 언제까지 청년으로 내 젊음이 계속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What on earth am I here for)?” 이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잘못된 과녁을 설정하고 우리의 시간과 젊음의 화살을 낭비하도록 우리를 유혹해서 죄의 길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6:23에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쉬운 말씀 같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wages’는 보통 우리가 ‘임금’, ‘급료(給料)’, ‘대가(代價)’, 혹은 순수한 우리 말로 ‘삯’이라고 해석하잖아요? 하지만, “죄의 삯은 죽음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 뜻이 금방 들어오지 않지만 ‘wages’라는 말을 ‘대가’로 번역하면 뜻이 금방 들어옵니다. 이 경우 ‘대가’라는 말에 ‘결과(結果)’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혹은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환난도, 죄의 권세도, 죽음도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담대하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살아계신 주 (Because He Lives)’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게이더 부부 (William J. & Gloria Gaither)가 가사를 쓰고 작곡을 했습니다. 이 찬양의 후렴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주께서 살아 계시니 내일을 마주할 수 있네).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주께서 살아 계시니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네).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주께서 나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내 삶은 살 가치가 있네. 주께서 살아 계신다는 이유만으로).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그리고, 성경적인 가사입니까?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두려움 없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 때문에 삶에 의미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삶의 의미와 목적과 이유가 생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당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의회를 나왔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 뜰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내용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5:29-30, 32, 5:41-42).” 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불안한 내일을 마주할 수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도 달게 받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살아야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톰 라이트 (N.T. Wright)라는 영국의 성서 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완성하는 사건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부활절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드러났으며, 이제 당신도 그 나라에 속할 수 있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입니다 (The resurrection completes the inauguration of God’s kingdom…. It is the decisive event demonstrating that God’s kingdom really has been launched on earth as it is in heaven. The message of Easter is that God’s new world has been unveiled in Jesus Christ and that you’re now invited to belong to it).” —Surprised by Hope: Rethinking Heaven, 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N.T. Wright, 2008)

톰 라이트는 사탄이 패배하고 무력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9-13)”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대로, 이제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이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이렇게 확장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학교에서나 우리가 주어진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살고, 진리와 거짓이 싸울 때 망설이지 않고 진리 편에 서고, 정의와 불의가 싸울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정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을 밝힙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완성하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초대받은 우리는 나만 위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를 구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