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1. 2025 주일설교

(어버이주일/ 졸업예배)

주는 나의 목자시니

The Lord is My Shepherd

시편 23: 1-6

23:1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무 부족함이 없도다. 23:2 주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눕히시어 편히 쉬게 하시고,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23:3 내 영혼을 생기 넘치게 다시 살리시고, 자기 이름을 위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다. 23:4 비록 내가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깊숙한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내게는 아무 두려움이 없으니, 주께서 항상 내 곁에 계셔서, 권능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잘 보살펴 주시기 때문입니다. 23:5 정녕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내게 풍성한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또한 내 머리에 기름까지 발라주시니, 내 잔이 철철 넘쳐납니다. 23:6 아, 진실로 주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내 평생 나와 항상 함께 하실 터이니, 내가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쉬운말 성경)

1 The Lord is my shepherd; I have all that I need. 2 He lets me rest in green meadows; he leads me beside peaceful streams. 3 He renews my strength. He guides me along right paths, bringing honor to his name. 4 Even when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a]I will not be afraid, for you are close beside me. Your rod and your staff protect and comfort me. 5 You prepare a feast for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honor me by anointing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with blessings. 6 Surely your goodness and unfailing love will pursue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live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어버이 주일과 졸업 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졸업은 단순히 학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시작입니다. 매일을 살아내며 치열하게 버텨낸 곳을 떠나는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동역자로, 믿음의 어른으로, 신앙의 격려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여정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믿음을 지켜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윗도 유다 광야에서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물맷돌을 던지며 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그 훈련이 없었다면 거인 골리앗의 이마를 돌 하나로 명중시킬수 없었겠지요. 학업과 연구의 현장은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고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손끝에 물집이 생기도록 연습을 해야 했고, 밤낮으로 외로움과 씨름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홀로 남은 연구실은 마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과도 같은 장소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졸업은 수고와 인내의 시간을 다 보내고 평화롭게 지난날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눈물의 기도가 쌓이고 사랑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떠나 낯선 외국 땅에 와서 만나게 된 우리 모두는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편 23편은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되어 집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인도는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해 줍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의 자리, 고난의 깊은 골짜기,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아픔의 자리가 떠오릅니다. 모두가 다르지만 우리는 꺼내 보이지 못하는 아픔을 품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마주해야 하기도 하고, 홀로 있는 자리에서 버티고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픔의 자리에서 이 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를 만나게 되고, 그 위로가 우리의 삶에 은혜의 간증이 됩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무 부족함이 없도다”라는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입니다. 다윗의 삶을 돌아보면 부족함이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새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기름 부을 왕을 찾으러 왔을 때, 처음엔 다윗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형들은 그를 하찮게 여겼고, 심부름하러 전장에 나간 다윗을 향해 첫째형 엘리압은 교만하다고 오해했습니다. 이후에도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광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궁에서 도망쳐야 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삶은 순탄치 않았지만, 다윗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무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당시에는 다 이해할수 없는 일들도 지나고 나면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주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눕히시어 편히 쉬게 하시고,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현대인들이 쉬지 못하는 이유는 몸은 쉬어도 경쟁사회에서 내 삶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매일 쫓기듯 살아가다 보면, 정서적 피곤함, 마음의 불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눕히시어’라는 구절은 주께서 우리를 편하게 누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평안으로 이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돌보심의 손길 보다 경쟁의 구조안에서 안식을 놓치며 살아가곤 합니다. 지나친 경쟁심리는 현대인들을 멈추지 않고 달려가게 합니다.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를 더 바쁘게 만들지만, 멈추지 않으면 진정한 회복과 안식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매일 주어진 일들속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요히 자신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돌아 볼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교훈은 성취하는 삶을 통해서도 경험되지만 내려놓음을 통해서도 얻게 됩니다. 젊은날의 아름다움도 소중하지만 나이 들어가며 얻는 성숙함도 귀한 것이겠지요. 삶은 우리에게 앞으로 달려가게 하지만 때때로 말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걸음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빚어 줍니다.

다윗의 삶은 죽음의 골짜기 같아서 원수의 위협이 그를 둘러 싸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셨음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푸른 풀밭’과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깊숙한 골짜기’라는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안식이 얼마나 완전한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인간은 권세나 명예로 인해 일시적 만족과 기쁨을 경험할 수는 있겠지만 삶의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토록 올라가려는 길도 막상 올라가 보면 더 높은 길이 있고, 소유하고 채우는 길도 그 한계가 없습니다. 결국 세상은 우리를 계속 목마른 사람들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많을 것을 가질수록 잠깐의 안정과 누림의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여전히 풍요로움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 100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과거에 비해 의식주의 문제도 풍요로워 졌고, 스마트 폰의 개발은 우리의 삶에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폰의 보급은 또 다른 형태의 불안감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노모포비아’란 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NO MOBILE POBIA의 준말입니다. 스마트폰을 멈출 때 느끼는 공허감과 불안한 마음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이 영적인 결핍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전자기기가 아니라 성경책을 붙들고,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나의 삶의 길을 차분하게 따라가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우리를 부르시는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은 목자를 하나님에 비유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전했습니다. 에스겔 34장입니다. “34:15 나 주가 말한다. 그때에 내가 손수 내 양 떼의 목자가 되어,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눕혀 그들로 편히 쉬게 할 것이다. 34:16 또 그때에 내가 잃어버린 내 양들을 찾고, 길 잃은 내 양들을 다시 데려오며, 다친 내 양들을 싸매어 주고, 병든 내 양들을 튼튼하게 기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양들을 해치고 못 살게 구는 살찐 양들과 힘센 양들은 내가 다 없앨 것이니, 이렇게 나는 공의에 따라 내 양 떼를 보살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빗대어 하셨던 배경이 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말씀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예수님을 암시해 줍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너무도 놀라운 구원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선한목자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시간,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 되시고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목자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졸업생들은 새로운 길을 향해 문을 열게 됩니다. 때로는 그 길에서 갈바를 알지 못해 멈춰야 할때도 있을 것이고, 치열하게 씨름하고 헤쳐 나가야 할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와 두려움속에서도 이길 힘을 주시고 감당할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지 마시고 그 과정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가는 목자 없는 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편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사자나 곰, 이리로 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기를 들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골짜기에서도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위해 지팡이를 들고 계십니다. 이처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생각하며 시편을 묵상하면, 슬픔과 절망은 사라지고 참된 만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는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 탐욕이 여러분을 좀먹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십시오. 사람의 생명은 그가 가진 재산의 많고 적음에 결코 달려있지 않습니다.”(눅 12:15) 참된 만족함이 의식주의 문제의 해결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족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부터 옵니다. 히브리어로 ‘푸른 초장’은 단순히 양들이 먹을 수 있는 풀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양이 안전하고 공급받는 풍성한 ‘거주지’를 의미합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안전한 품’이고 ‘사랑의 품’이 되어 줍니다. 나만을 위해 살아가다가 부모가 되어 보니 사랑스러운 자녀에게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희생과 섬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외국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 청년들과 교우들에게 단순한 안식처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그 사랑을 통해 영적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양들이 옳은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3:3 내 영혼을 생기 넘치게 다시 살리시고, 자기 이름을 위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다.

우리는 단순히 높은 곳만을 추구하는 리더가 아니라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알고 걷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성취감이나 인정받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서 마주하는 영혼들을 돌보며 책임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삶에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속에서 크고 작은 불안감으로 부터 위협받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지속적으로 찾아 옵니다.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조언하는 능력은 있지만 정작 내 삶을 살아 낼 실력과 힘은 점점 약해져 갑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의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격려나 위로가 아니라 삶의 고백이 되고 은혜의 간증이 됩니다. 하나님은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전히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의 잔이 흘러 넘쳤습니다. 23:5 정녕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내게 풍성한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또한 내 머리에 기름까지 발라주시니, 내 잔이 철철 넘쳐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풍성한 상을 차려 주시는데 우리는 늘 배고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데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만족함을 잃곤 합니다. 하늘의 영광 보다 이땅의 영광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하나님의 식탁의 자리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마저 떠나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의 잔에 흘러 넘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바울은 인생의 고난과 핍박속에서 사명을 지니고 이방인의 사도로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어둔 감옥에서도 후회가 아니라 감사와 찬양을 불렀고, 그날에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23:6 아, 진실로 주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내 평생 나와 항상 함께 하실 터이니, 내가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임하는 미래적 은혜는 그날에 베풀어 주실 하나님의 나라의 최후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살아서 호흡하는 동안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라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은 영원히 함께 할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 밖에서 하루 하루를 애쓰며 살아갑니다. 더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사랑할 시간조차 없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세상은 사랑해야 할 사람들로 부터 멀리 떨어지라고 유혹합니다. 세상은 내가 베푼대로 그대로 되돌려 받기를 기대합니다. 기다려도 되돌아 오지 않으면 상처 받고, 불편한 마음이 찾아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집은 한결같은 사랑이 넘쳐 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평생 동안 따른다면 우리가 무엇을 염려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사랑은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그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3장 27절입니다. “3:27 너의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선을 행하도록 하여라.” 로마서 12장 18절입니다. “12:18 할 수 있는 대로, 여러분 쪽에서 먼저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며 우리의 삶에 맡겨 주신 사람들을 성실히 돌보고 돕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거예요.’ 이 찬양의 가사는 인생의 폭풍과 비바람,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돌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 속해 살아가지만, 가정과 교회 안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현실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힘을 줍니다. 우리가 함께 나눈 시편 23편은, 믿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평생의 여정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합니다.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상을 베푸시는 은혜를 선포하고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때에도 주님이 함께 걸어가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이 시는 단순히 위로와 격려를 주는 시가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삶으로는 진짜 믿음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은 인생의 골짜기를 지날 때, 목자 되시는 주님을 붙드는 믿음의 자리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부족하다 느낀 내 인생에 목자 되시는 주님을 만나서 연약하고 부족한 삶이 감사의 삶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따르는 삶으로 진정한 변화와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집에 머물고 있음을 믿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과 그가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히11:6)

주님과 동행하며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서로 기도하고 사랑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주의 인도하심 따라 기뻐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에게 기도의 품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0504 2025 주일설교

(부활절 제3주)

 진노는 잠깐, 은총은 영원

Anger for a Moment, Grace Forever

시편 30: 5–12

5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도다. 비록 밤에는 슬피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아침이 되면 기쁨이 흘러넘치리라. 6 내가 잘 나가던 형통의 시절에는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하였지만, 7 오 주여, 나를 어여삐 여기시어 산처럼 크고 든든한 은혜로 나를 지켜주시던 주님께서 그 얼굴을 돌려 나를 외면하시자, 나는 그만 큰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8 그때에 내가 주께 부르짖고, 주의 은혜를 바라며 간구하기를, 9 “주여, 내가 이렇게 죽어, 저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주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죽어, 한 줌의 티끌 된 자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주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10 하오니 주여, 내 간구를 들어 주소서. 이 몸을 어여삐 여겨 주소서. 제발 나를 도와주소서!” 하였더니, 11 그제야 주께서 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고, 나에게서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 옷을 입혀 주셨도다. 12 그러므로 내 영혼이 어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어찌 입 벌려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렵니다.(쉬운말 성경)

5 For his anger lasts only a moment, but his favor lasts a lifetime!Weeping may last through the night, but joy comes with the morning.

6 When I was prosperous, I said,“Nothing can stop me now!”
7 Your favor, O Lord, made me as secure as a mountain. Then you turned away from me, and I was shattered.

8 I cried out to you, O Lord. I begged the Lord for mercy, saying,
9 “What will you gain if I die,if I sink into the grave? Can my dust praise you? Can it tell of your faithfulness?
10 Hear me, Lord, and have mercy on me. Help me, O Lord.”

11 You have turned my mourning into joyful dancing.You have taken away my clothes of mourning and clothed me with joy,

12 that I might sing praises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you thanks forever!(New Living Translation)

교회력에서 부활절기는 7주간 지속되며, 이 절기를 보내고 나면 성령강림절이 옵니다. 지난주에 비해 한주 사이에도 더 많은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생명을 지닌 인간의 마음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칼빈(John Calvin:1509-1564)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감각이 인간 안에 내재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멀리하게 만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감각을 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한 시간에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삶의 예배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을 찾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은 복음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니다.

본 시편은 다윗이 심각한 질병에서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감사시입니다. 다윗은 6절에서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진술합니다. 30:6 내가 잘 나가던 형통의 시절에는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하였지만, 30:7 오 주여, 나를 어여삐 여기시어 산처럼 크고 든든한 은혜로 나를 지켜주시던 주님께서 그 얼굴을 돌려 나를 외면하시자, 나는 그만 큰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번영의 시기에 그 형통함으로 인하여 교만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자기를 과신하는 교만과 자만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시기를 다윗 통치의 말기로 봅니다. 당시 다윗의 왕권은 견고했고, 그를 위협하던 주변의 적들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이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에도, 다윗은 그것을 자신의 인간적 성취로 착각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감각이 무뎌지면,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지게 됩니다. 다윗의 마음에 교만을 보시고,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 -1963)는 『순전한 기독교』 에서 “교만은 본성이 경쟁적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모든 나라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 주된 원인은 바로 교만입니다. 다른 악들은 그래도 사람들을 맺어 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여러분은 술 취한 사람들이나 방종한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거나 농담을 주고받거나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언제나 적대감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일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교만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은 통치 말기에 인구조사를 합니다. 왕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가 했던 인구조사는 자기 나라의 국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한 후에 그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7만명이나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로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내면에 자만한 마음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셨던 것입니다.

교만은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며 하나님을 보여지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교만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인간 안에는 내가 높아져서 인정과 영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말씀만을 고집하다 보면 이것도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빚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계명 1, 2계명에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출애굽기 20:3-4)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주께서는 그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아주 싫어하시므로, 그런 자들은 반드시 주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잠 16:5) “교만은 멸망으로 이끄는 앞잡이요, 거만한 마음은 몰락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잠 16:18). “주께서는 교만한 사람의 집은 사정없이 헐어 버리시지만, 과부의 담장은 튼튼하게 지켜 주신다”(잠 15:25)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노가 함께 언급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국 회복을 위한 길로 이끄시는 사랑입니다. 오히려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하나님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인구조사 이후 하나님의 징계에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면 자신이 한 줌의 티끌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1절로 4절에 보면, 그는 죽음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 짖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위기에 처했던 이유가 자신의 죄에 대한 주님의 진노 때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다윗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푸시고 다윗을 죽을병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모습을 자신이 경험과 삶에 비추어 연결 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웠던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더 두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부재 속에 결핍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실감하는 것이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본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0:5 그분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도다. 비록 밤에는 슬피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아침이 되면 기쁨이 흘러넘치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나 구속적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의 인생에 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얼굴을 돌리신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밤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진노는 끝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때면 하나님의 은총은 짧고,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한 것 같다 여겨지겠지만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되는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8절로 12절입니다. 30:8 그때에 내가 주께 부르짖고, 주의 은혜를 바라며 간구하기를, 30:9 “주여, 내가 이렇게 죽어, 저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주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죽어, 한 줌의 티끌 된 자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주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30:10 하오니 주여, 내 간구를 들어 주소서. 이 몸을 어여삐 여겨 주소서. 제발 나를 도와주소서!” 하였더니, 30:11 그제야 주께서 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고, 나에게서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 옷을 입혀 주셨도다. 30:12 그러므로 내 영혼이 어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어찌 입 벌려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렵니다.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 왔습니다. 불순종은 교만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순종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안에 자랑 할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을 좀더 낮은데 두시고, 주님의 겸손함을 배워 보시면 좋겠습니다. 복음이 효과적이려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의 이 기록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여러분은 한마음과 한뜻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행함으로써,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2:3 무슨 일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십시오. 2:4  무엇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

예수께서 죄인들의 편에 서자 당시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 버린 그들의 외식적인 모습을 드려내셨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복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적 행위로 의로워 질수 있었다면 주님께서 인간의 죄로 인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우리를 위한 구속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이러한 겸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심으로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할 때 종종 인간의 분노처럼 감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불안정하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함과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공의의 표현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본 정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표제어는 ‘성전 봉헌하는 찬양시’입니다. 하지만 성전이 다윗 시대에는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 봉헌과 다윗의 시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후대에 시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표제가 붙여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유대인들이 성전을 완공하고 찬양을 불렀던 그들의 심정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은 후 다시 살 기회를 얻고 부른 노래와 같았을 것입니다. 죄로 인해 무너졌던 마음의 회복은, 마치 고칠 수 없었던 중병이 의사의 손길을 통해 완전히 치유된 뒤, 밀려오는 깊은 감사와 기쁨을 노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죽을 병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음의 성전을 다시 점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낮과 밤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건강할때와 질병이 찾아올때, 기쁠때나 슬플때, 멈춰야 할때가 있고 나아가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밤의 시간은 절망과 좌절, 답답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로 비유되는 밤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시 동안 그러나 더 큰 긍휼과 자비로 자기 백성을 품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기쁨의 아침이 오게 됩니다.

현재 내 삶이 고통스러운 밤의 시간이라면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해도 주님이 나를 외면하시면 우리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 조차 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으로 반응할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믿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은 단순히 은혜의 간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한 살아있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은혜와 사랑은 단지 말과 경험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었고, 십자가에서의 피흘림으로 남겨진 생명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의 속삭임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선택하는 담대함, 가정과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치열하게 살아내고, 엎드려 기도로 나아가는 삶이 진정한 복된 삶임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짧은 내 인생길 오직 주의 은혜라 달려갈 길 모두 마치고 주 얼굴 볼때 나는 공로 전혀 없도다 오직 주의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의 공로를 포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바쁘게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지만 주 얼굴볼때 주앞에 설때 나의 공로 전혀 없음을 고백하게 될텐데, 왜 이렇게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움켜쥐고 갈등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면서도 진정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20절은 ” 사실 율법이 더해짐으로써 죄가 더욱 증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죄가 많아진 그만큼, 은혜 또한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서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그 죄가 많아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죄보다 더 크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걷는 걸음이 참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세상의 가치 앞에서 복음을 아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이 외로울지라도 힘써 지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실력이 없기에 반복되는 쓰러짐에 길을 잃어 버릴지라도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값진 은혜 앞에서 결단하고, 두렴 없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박우정의 “나의 하나님” 이라는 찬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다윗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겠다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잠시의 기쁨이 아닙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려움 없는 믿음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함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기뻐할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감사의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의 기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살아냄 속에서 그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 받은 자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을 모신 사람들이지만 매 순간 마음을 돌아 보아야만 합니다. 형통하고 평안할 때 일수록 주님을 더 깊이 의지하고 곤고한 날에는 주께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교만과 은혜는 같은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겸손한 자에게 허락됩니다. 교회 문을 열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실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을 남겨두고 가지 않도록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