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22 주일설교

물문 앞 광장에서

The place in front of the Water Gate

느헤미야 8: 1-12

유민용 목사

1 <에스라가 율법을 읽다>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왼쪽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습니다. 5 에스라가 율법책을 폈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데에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7 낭독을 듣기 위해 서 있는 백성들에게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가 율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8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1 all the people assembled with a unified purpose at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They asked Ezra the scribe to bring out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had given for Israel to obey.2 So on October 8[a] Ezra the priest brought the Book of the Law before the assembly, which included the men and women and all the children old enough to understand. 3 He faced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from early morning until noon and read aloud to everyone who could understand. All the people listened closely to the Book of the Law.4 Ezra the scribe stood on a high wooden platform that had been made for the occasion. To his right stood Mattithiah, Shema, Anaiah, Uriah, Hilkiah, and Maaseiah. To his left stood Pedaiah, Mishael, Malkijah, Hashum, Hashbaddanah, Zechariah, and Meshullam. 5 Ezra stood on the platform in full view of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him open the book, they all rose to their feet.6 Then Ezra praised the Lord, the great God, and all the people chanted, “Amen! Amen!” as they lifted their hands. Then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the Lord with their faces to the ground.7 The Levites—Jeshua, Bani, Sherebiah, Jamin, Akkub, Shabbethai, Hodiah, Maaseiah, Kelita, Azariah, Jozabad, Hanan, and Pelaiah—then instructed the people in the Law while everyone remained in their places. 8 They read from the Book of the Law of God and clearly explained the meaning of what was being read, helping the people understand each passage.9 Then Nehemiah the governor, Ezra the priest and scribe, and the Levites who were interpreting for the people said to them, “Don’t mourn or weep on such a day as this! For today is a sacred day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the people had all been weeping as they listened to the words of the Law.10 And Nehemiah[b] continued, “Go and celebrate with a feast of rich foods and sweet drinks, and share gifts of food with peopl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is a sacred day before our Lord. Don’t be dejected and sad,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11 And the Levites, too, quieted the people, telling them, “Hush! Don’t weep! For this is a sacred day.” 12 So the people went away to eat and drink at a festive meal, to share gifts of food, and to celebrate with great joy because they had heard God’s words and understood them. (New Living Translation)

설교 본문을 묵상하며 제 마음이 머문 곳은 총독 느헤미야도 학사 에스라도 아닙니다. 물문 앞 광장에 나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복받쳐 울던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곳 보스턴에 와서 매주일 제단에 올라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제 마음 한켠에 울컥한 마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익숙한 지역과 환경을 떠나 낯선 곳에 있어서도 아니고,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도 아닙니다. 현재의 시간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스 1:1) 여호와의 손길을 증거하며 성전을 재건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아닥사스다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여 관대한 정책을 펼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 안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역사속에서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를 도우심을 믿음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가 다르고 사람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맞는 은혜가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끝까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동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를 졸업 한 사람들, 한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을 이르는 말이죠. 우리는 선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통과한 문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되려면 주님의 DNA를 닮아가며 주의 바른 교훈을 듣고 실천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문을 함께 통과해야 합니다. 주님이 인생의 문을 여시지 않으면 내 앞에 닫혀진 문은 벽에 불과한 것이지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오는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갈망이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황금문으로 불리는 동쪽문을 통하여 성전에 들어가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황금문에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데,  하나는 ‘자비의 문’ 또 다른 하나는 ‘회개의 문’으로 불리는 문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동쪽 문(황금문)으로 들어간 뒤 문이 닫혀 다시는 열리지 않으며, 메시아가 올 때에야 문이 열린다고 생각했습니다.(에스겔, 44:1-3). 그래서 유대인과 무슬림은 지금도 메시아가 예루살렘 성전 동문을 통해 온다고 믿고 있었기에 AD 801년 이후 예루살렘을 점령한 무슬림은 성의 동쪽문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다가 1102년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의 승리로 다시 이 문을 열었지요. 그러나 무슬림에 의해 다시 폐쇄되었습니다. 현재는 무슬림들이 예루살렘 성 동문 앞을 공동묘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부른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 버린 종교적 열심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타자를 배려하는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해 나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 20절을 보면,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히 10:19,20)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 다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도행전 17:24).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놓으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문은 닫을 자가 없고, 그 길은 막히지도 않는 길입니다. 그 문은 누군가를 짓밟고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부르심을 받는 청지기들이 사명을 완수하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10개가 있었습니다. 10개의 문들 가운데 물문은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하나로 물을 실어 나르던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느 3:26) 이 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이 광장은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서는 10개의 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물문을 7번째 소개하고 있습니다. 7번째 언급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1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죄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경외감이 사라지면 가던 길에서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경외감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밖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느헤미야를 통하여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자기 마을에 자리 잡고 살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다른 선지자들 처럼 제사장의 가문도 아니었고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와 개인적인 경건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던 인물입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7장에 보면 그는 기도로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8장부터는 영적 회복의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이 모였습니다. 말씀은 삶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한계상황에서도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살아납니다. 말씀은 ‘information'(지식전달)이 아니라 ‘formation'(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태양계에 점에 불과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Spiritual formation'(주의 성품으로 닮아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살아납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도 말씀을 연구하다 보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 이해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씀을 갈망하다 보면 말씀의 신비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읽었으니 대략 잡아도 한 6시간 이상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말씀을 향한 목마름과 하나님의 말씀이 만나게 되면 새 역사가 시작되지요. 목마른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갈망하는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 지는 것이고, 찬양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며, 기도는 생수의 강이 입술을 통해 넘쳐나는 것이지요.

인류역사에 있어서 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있어서 물은 생존이며 생명입니다. 물에 담긴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정화(Wash)시키는데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가 됩니다. 주의 보혈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깨끗함이 있지요. 그래서 세례수에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홍해의 사건인 ‘구원’과 노아의 방주때 40주야 비를 내리시며 물로 의인과 악인들을 가려 내시는 ‘심판’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정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으로 접속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물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기가 넘치고 (Refreshment) 생명의 물을 마시는 자는 성령 안에서 새 삶을 발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비싸도 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과거에 물을 사 먹게 될꺼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웃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좋은 물을 사서 마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누릴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없습니다. 더 편리함을 찾는 세상이지요. 채우고 가져도 우리의 마음은 다른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채울수록 결핍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영적으로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갈망하지만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단 위에서 말씀을 낭독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게 되고, 매일의 양식을 통하여 영적 굶주림과 배고픔이 채워집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 ‘프리츠 크라이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악기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악기 상에서 자기가 정말 원하는 악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악기상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악기를 팔지 말라고 내가 돈을 모아 오겠다고, 그런데 그 금액이 너무 커서 수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돈을 다 모아서 악기 상에 왔더니 그 악기가 바이올린 수집가에 팔리고 없는 겁니다. 수소문 하여 그 사람 집에 찾아가 악기를 자기에게 팔라고 하니 거절합니다. 그래서 한 번만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 청을 하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부자의 얼굴이 점점 변하더니 마침내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바로 이 바이올린의 주인이셨군요. 제가 이 악기의 행복을 위해 주인에게 이 악기를 돌려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연주자이십니다. 내 삶을 연주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신앙을 조율하십시요. 하나님은 인생을 통해 놀라운 음악을 연주하실 것입니다. 저는 매주 성가대의 찬양을 들을 때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전부를 드려 노력하고 공부한 것을 드리는 자리이기에, 믿음을 표현하는 자리이기에 기쁨과 은혜가 차오릅니다.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같아서 그 마음으로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소리가 커지는 것을 줄이고 함께하는 ‘동행’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며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되면 경배의 모습, 예배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영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도록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초대하며,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입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니 백성들의 마음에 감정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 그동안의 아픔도 상처도 흘러 나갑니다. 눈물을 통해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눈물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요. 주일은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받아 누리는 기쁜날 인것입니다. 기쁜날 사랑의 교제를 하실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더없는 기쁨의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슬픈 감정들은 내려놓고 기쁨으로 살아가라고 그 눈물을 자제 시킵니다. 말씀에 기초해 은혜를 받으면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고, 회개하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순종함으로 삶의 자리로 나아가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  ‘힘’이란 단어의 원어는 ‘마우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이 ‘방파제’라는 뜻입니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답지요. 하지만 숲속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곤충, 벌레들, 부러진 가지들, 버려진 쓰레기도 눈에 들어옵니다. 꽃들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땅속 밑은 거칠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태풍과 비바람으로 부터 지켜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에 심긴 뿌리들입니다. 캐나다 산림 생태학 교수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20년 이상 연구해온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뿌리들이 어둡고 거친 땅 깊은 곳에서 균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양지에서 자란 큰 나무들의 뿌리들이 음지에 있는 작은 나무들에게 뿌리를 통해 탄소를 나눠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땅속 밑에서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교환하며 서로 소통하는 것이죠. 이 힘이 해충으로 부터 지켜내며, 숲을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땅을 디딛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이길 진정한 방파제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며, 서로가 돕고 베풀며 연약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생존에 밀려 낙오된 이들이 다시 일어 설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에 깊이 뿌리 내리며 거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의 신비속에서 서로 공생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비드가 시작되고 락다운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늘 가던 곳이 닫혀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마음도 서로를 향한 관심도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지요. 저도 그 시간에 늘 걷던 길이 있었습니다 매일 그 길을 걸으며 자연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구했습니다. 추운 겨울 성탄절이 다가오던 즈음에 언제나 걷던 그 길가의 큰 나무에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기뻐합니다. 어제는 그냥 걷던 산책길이었는데 누군가의 사랑과 섬김으로 따뜻한 산책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곳곳에 그런 사랑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환경과 역경들 가운데 진정한 교제 가운데로 나와서 아픈 삶을 드러내시며 말씀으로 위로 받고 깊이 뿌리 내리십시요. 하나님의 집은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연결되어 유지되고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영혼이 기쁨을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서로를 바라보시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채교수는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종양내과 의사입니다. 그는 말기암 희귀암 전문의인데, 실제 병실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Can I pray for you?)’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이 말이 책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하는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이 없는 마음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셔서 아프고 피곤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진료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린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겸손, 이 가난한 마음이 없이는 나에게 소망이 없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나는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쭐해 하고 잘난 사람을 보고는 우울해 했다. 배후에는 엘리트들이 놓 지 못하는 자기사랑, 자기연민이 있었다. 자아가 없어진 공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고, 비로소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 옆에서 끝까지 옆에서 마라톤을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완주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자아가 깨어진 곳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사랑이 필요한곳에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우리가 만나는 지체들에게 많은 말보다 이 한마디로 마음을 전할수 있는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9.11.22 주일설교

하나님 백성의 품격

The dignity of God’s people

스가랴 4:1~7

4:1 <다섯 번째 환상: 등잔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내게로 돌아와서 나를 깨웠는데, 나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2 천사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다. “순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그 꼭대기에는 그릇이 있고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 받침도 일곱 개 있습니다. 3 그 곁에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그릇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릇 왼쪽에 있습니다.” 4 내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5 천사가 말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내가 대답했다. “내 주여, 모릅니다.” 6 그러자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7 어떤 산도 스룹바벨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모든 산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꼭대기 돌을 가져올 것이며, ‘은혜, 은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쉬운성경)

1Then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returned and roused me, as a man who is awakened from his sleep. 2 He said to me, “What do you see?” And I said, “I see, and behold, a lampstand all of gold with its bowl on the top of it, and its seven lamps on it with seven spouts belonging to each of the lamps which are on the top of it 3 also two olive trees by it, one on the right side of the bowl and the other on its left side.”4 Then I said to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saying, “What are these, my lord?” 5 So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answered and said to me, “Do you not know what these are?” And I said, “No, my lord.” 6 Then he said to me,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to Zerubbabel saying,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says the LORD of hosts. 7 ‘What are you, O great mountain? Before Zerubbabel you will become a plain and he will bring forth the top stone with shouts of “Grace, grace to it!”(NASB)

이번주는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는데 마음안에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하나님 나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나님 나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누려야 하는 나라’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스가랴서는 성전 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시는 서신입니다.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환상은 하나님이 스가랴에서 주시는 5번째 환상이지요. 순금으로 된 등잔대, 등대 곁에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 나무를 받치는 기름 그릇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고 다시 세워짐을 상징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올리브 나무 좌우의 기름 그릇은 성전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였으며, 이스라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학개서는 무너진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현실적인 부분을 다르고 있는 반면에, 스가랴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1 <다섯 번째 환상: 등잔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내게로 돌아와서 나를 깨웠는데, 나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2 천사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다. “순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그 꼭대기에는 그릇이 있고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 받침도 일곱 개 있습니다.

등잔대(메노라:Menorah)는 가지가 일곱 등대인 성막시대부터 유대인들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로 촛대라는 뜻인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타지 않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회당안에 들어가면 제단 위에 일곱 등대의 모습을 한 메노라가 있습니다. 아치를 이루는 모습은 두 천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지성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보고 계시는 메노라는 1956년 영국 통치하에 있던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의회가 이스라엘국가에 기증한 작품입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순금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상징하지요. 순금은 고난을 이겨낸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깊은 고난을 이겨내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엡 2:20-21) “너희는 사도들과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계시록에 사도 요한의 환상을 보면 일곱촛대가 일곱교회를 상징하는데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스가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개의 환상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들 찾아보시며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묵상하는데 큰 흥미가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 교회 곳곳을 둘러보며 교회의 역사를 느끼고 기도의 자리를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졌을 당시 보스턴 지역은 영적 부흥이 물결치던 시기였습니다. 부흥의 물결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지게 했고,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로 파송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던 많은 이들은 뜨거움을 주체 못해 거리로 나와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지역 케임브리지 지역만 해도 메인 교단의 교회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부흥의 물결 가운데 함께했던 성령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을 보십시요. 많은 교회들은 관광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이름의 교회들도 화려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교회를 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팬데믹 이후 교회가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더 어려워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현실에 보이는 것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더 절망하게 되고 답답해 집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이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세워 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꿔야 합니다. 팬대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것이 변한 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찌보면 이 변화의 물결속에 나의 마음이 가장 많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보기 전에 실패를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회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보고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가랴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고 하나님의 꿈을 다시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4: 7 어떤 산도 스룹바벨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모든 산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꼭대기 돌을 가져올 것이며, ‘은혜, 은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주저앉아 있는 우리를 다시 살게 하고, 절망 가운데서 있는 자들을 일으키십니다. 내 사랑이 너희를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깨어지고 부서지고 낮아져도 내가 너를 포기치 않고 사랑하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 내버려 두셨습니다.

제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정돈 되지 않을때 기도하며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큰 꿈은 없습니다. 눈물로 뿌린 씨앗들 세상을 뒤덮지 않아도 여전히 충분합니다

큰 꿈은 없습니다 맡겨주신 영혼들 그들을 사랑하며 섬기면 그것만으로 난 충분합니다

그래도 한꿈은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안고 푸른 들판을 사는 이들 그 안에 꿈을 봅니다

하늘 보좌 버리고 낮아져 이땅에 오신 주님 주님만이 나의 꿈이십니다. 주님 만이 내 사랑입니다

세상을 내려놓고 엎드리오니 그런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만이 나의 꿈이십니다”

이 찬양을 부를때마다 분주한 생각들이 멈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나의 열심인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나의 만족을 위함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내가 하려는 말이 하나님의 뜻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참 많은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의 가사를 들을때 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내 마음을 드리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우리의 예배 안에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4:3 그 곁에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그릇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릇 왼쪽에 있습니다.” 4 내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5 천사가 말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내가 대답했다. “내 주여, 모릅니다.” 6 그러자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4:14 천사가 말했다. “그것들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섬기도록, 주께서 기름 부어 거룩히 구별하신 두 사람을 나타낸다.”

올리브 두 그루의 나무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하는 스가랴에게 천사가 알려줍니다. 주께서 기름 부어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다. 성전을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지어가는 거룩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올리브는 지중해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지중해 사람들의 필수 음식입니다. 하나님께는 거룩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품격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품격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등잔을 비추려면 기름이 필요한데요. 이 기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급되는 성령의 영입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는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성전의 완공이 성령의 능력에 의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고전 3:6) 농부는 거름을 주고 병충해로 부터 곡식을 보호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 인격이 성품이 마음의 성전이 하나님의 품격으로 갖춰지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과 성품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거룩함 앞에 서는 일이고, 성령의 존재를 계속적으로 기도를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지요. 물고기는 헤엄을 치기 위해 물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의 호흡이 필요한 것이지요. 촛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마음의 성전을 회복시키시고, 주저 앉아 있는 자들을 일으켜 주시는 분입니다. 절망의 입술을 희망의 입술로, 분쟁과 시기의 입술을 사랑의 입술로, 거짓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포로 생활하고 마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포로로 학습된 습관으로 인해 당당함을 잃어 버리고 낙심과 절망의 마음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스가랴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복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길 원하십니다. 세상은 교회가 문제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합니다. 죄가 있다고 회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은혜를 주셔야 회개가 됩니다.

성경은 “너희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행2:17)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로 부터 청년들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를 다닌 년수에 있지 않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꿈을 꾸는 모든 세대는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의 공동체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성전을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요 2:19) 이때 예수가 말씀하신 성전은 그리스도로 인해 세워지는 마음의 성전을 가르켜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돈과 힘이 있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잘 해 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배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릴수 있던가요? 마음의 성전을 짓는 일이 우리의 힘으로 능력로 되던가요? 주님의 겸손함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데로 닮아지던가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고 싶다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꿈을 보며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꿈의 사람하면 요셉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며 살았던 요셉은 절망과 죽음에 직면해서도 꿈을 간직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꿈을 지닌 이에게 모든 만남은 축복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꿈을 품고 있는 자에게는 삶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계속되는 만남 가운데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백성의 품격을 지닌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욕망의 한복판에서 그분의 뜻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어둔 세상에서 주의 뜻을 선택하며 갈라진 마음 틈새에서 그리스도의 꽃을 피워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찬들은 세계의 여러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며, 시간을 거슬러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믿음의 사람들과 영적인 관계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무엇보다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꿈을 잃어버리고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에게 그 품이 사라지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입니다.

지난 주일 청년 수련회 말씀을 인도하며 청년들이 흘리는 기도의 눈물을 보며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저들의 삶을 중보했습니다. 낯선땅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들의 마음에 익숙한 것들로 부터의 단절, 고독, 외로움이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안에서 외로움과 삶의 문제들까지도 하나님의 값진 선물로 이해할 수 있는 믿음의 깊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두려움, 상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두가 다른 환경과 처지에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예배안에 있을 때에 우리가 품었던 마음의 온도가 동일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믿음을 끝까지 붙드는 이들을 통해 유지되고 존재합니다. 스가랴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저버린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부흥을 허락하실까? 내게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약속하셨고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인생의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 흩어 뿌리셨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품격이 다른것이지요.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은혜가 사라지면 마음 안에 늘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내 삶에 안전한 둥지를 마련하고 싶은 욕망, 나만을 위해 편하게 살고 싶은 안일함,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욕망과 하나님의 꿈을 선택하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욕망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 사이에서 하나님의 위한 삶을 선택 보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꿈을 보여주며 이 시간 우리에게도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것은 여러분의 일상생활과 몸과 마음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변에 보면 부유하지만 가난한 이들도 있고, 가난하지만 부유한 이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부유하기를 바라지만, 결핍의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의 인생에는 불행이 시작됩니다. 결핍에 눈길을 주며 사느라 이미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욕망과 결핍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을 끊임없이 무너뜨려 갈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 틈으로 끊임없는 유혹과 욕망은 채우고 채워도 마음의 공허함과 우울감만 계속 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꿈을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찮은 일을 통해 큰일을 행하시고 지극히 작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마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넘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조용히 묵상해보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보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불꺼진 예배당 그림입니다. 그의 동료가 그에게 삶의 신조를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 주는 것이라네.” 합니다. 신앙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나의 욕심과 자아가 주님 앞에서도 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여러분 우리의 간절한 예배의 자리에서 아직도 흔들리는 나의 영적인 갈급함을 마주하고 계시다면 혹은 너무 많이 알고 들어서 영적인 배부름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한다면 이 시간 주님의 마음으로 나를 채워 달라고 결단하며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주를 살아내야 할 우리의 삶의 일터와 현장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되어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헨리 나우엔의 ‘꼭 필요한 것 한가지 기도의 삶’의 기도문을 함께 나눕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소원도 많고 욕심도 많고 기대도 많습니다. 이루어 질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루어 질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 모든 만족과 실망의 한복판에서 저는 주님을 소망합니다. 주님이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실 것과 주님의 거룩한 약속을 이루실것을 저는 압니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실은 주님 뜻대로 풀리고 있음과 결국 주님 뜻이 제게 최선의 길임을 압니다. 오 주님 제 소망을 굳게 하소서. 특히 제 많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그리하소서. 주님의 이름이 사랑임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