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22 송구영신 설교

하늘의 예배

The Heaven’s Worship

요한 계시록 5: 1-10

유민용 목사

5:1 나는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씌어 있었고,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봉해져 있었습니다.  2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4 나는 그 두루마리를 펴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울고 말았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쉬운성경)

1 Then I saw a scroll[a] in the right hand of the one who was sitting on the throne. There was writing on the inside and the outside of the scroll, and it was sealed with seven seals. 2 And I saw a strong angel, who shouted with a loud voice: “Who is worthy to break the seals on this scroll and open it?” 3 But no one in heaven or on earth or under the earth was able to open the scroll and read it. 4 Then I began to weep bitterly because no one was found worthy to open the scroll and read it. 5 But one of the twenty-four elders said to me, “Stop weeping! Look,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heir to David’s throne,[b] has won the victory. He is worthy to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6 Then I saw a Lamb that looked as if it had been slaughtered, but it was now standing between the throne and the four living beings and among the twenty-four elders. He had seven horns and seven eyes, which represent the sevenfold Spirit[c] of God that is sent out into every part of the earth. 7 He stepped forward and took the scroll from the right hand of the one sitting on the throne. 8 And when he took the scroll, the four living beings and the twenty-four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Each one had a harp, and they held gold bowls filled with incense, which are the prayers of God’s people. 9 And they sang a new song with these words:

“You are worthy to take the scroll and break its seals and open it. For you were slaughtered, and your blood has ransomed people for God from every tribe and language and people and nation.
10 And you have caused them to become a Kingdom of priests for our God. And they will reign[d] on the earth.”(New Living Translation)

2022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하늘의 예배’입니다. 이땅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큼 복된 일이 없습니다.

새해 첫시간를 맞이하며 예배를 향한 ‘창조적 갈망’이 더 깊어 지기를 바랍니다. 존 웨슬리는 1755년 언약예배(Wesley Covenant Service)를 시작하여 1778년에 이르러 모든 교우들과 함께 새해 첫주일과 새해를 맞이하는 밤에 지금처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갱신하기 위한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 언약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저를 붙들어 매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저를 붙이소서. 저를 행하게 하시고, 저에게 고난을 주소서. 저를 주님께서 고용하소서. 주님의 처분에 맡깁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를 높이시고 혹은 저를 낮추소서.저를 채우기도 하시고, 비우기도 하소서. 저에게 모든 것을 주기도 하시며, 또한 제게서 모든 것을 가져 가기도 하소서. 제 모든 것을 주님의 기쁨을 위해 쓰시도록 기꺼이 그리고 마음 다해 드립니다. 오, 영광스럽고 복되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저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저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제가 이 땅에서 맺은

이 언약을 하늘에서도 확증하여 주소서. 아멘” 이 기도문을 드리며 감리교도들의 믿음은 증진시키기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언약을 두루마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7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5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로 듣기만 하지 말고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은 어느 시대속에서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최고의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의 핵심은

‘세상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당시는 거대한 로마제국이라는 박해의 풍랑 속에서 표류하는 상태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이단의 거짓 가르침과 영적 타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요.

로마의 법 앞에서 말씀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박해 상황속에서 복음은 아주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 되었습닌다. 그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사도 요한의 눈에 보여주시는 것은 ‘하늘의 예배’였습니다.

5:1 나는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씌어 있었고,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봉해져 있었습니다.  2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4 나는 그 두루마리를 펴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울고 말았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상징인 보좌에 앉으시고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계시는데, 그 두루마리가 일곱 인(Seal)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그 안에 ‘완전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루마리 안팎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사도요한이 애통하며 울기 시작합니다.

예배자들은 현실적인 삶에 부딪히고, 시대마다 절망의 현실을 만날때에 최대한 울어야 합니다. 요한도 아무런 위로를 얻을수 없는것처럼 크게 울고 말았습니다. 요한의 마음에 로마의 핍박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메세지를 기다리던 성도들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요한은 성도들이 실망할 모습에 깊이 낙담합니다. 주제할 수 없는 슬픔에 크게 울었습니다. 울음 가운데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울고 있을때 하늘의 장로 중 한사람이 ‘울지마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기에 그가 봉인된 일곱인을 풀어 계시할 것이니 ‘울지말라’는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가 독자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때 그녀를 찾아가 ‘울지 말라’ 말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속에서 과부였던 여인이 그녀의 독자까지 잃었으니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이 일로 많은 무리가 그녀를 위해 독자의 죽음의 행렬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비통함에 젖어 무덤을 향해 가고 있는 죽은 자의 행렬을 향해서 예수께서 다가옵니다. 주님은 죽음의 행렬을 마주하며 독자의 관에 손을 대시고 장례의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행렬에 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류의 죽음의 행렬을 멈춘 분이 계십니다. 죽은 자를 향해 외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라 하십니다.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청년이  ‘깨어났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케임브리지 교우 여러분 예배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다 들으시며, 생명의 행렬을 이뤄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3자리 중요한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예배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다시 찾으십시요.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갈망해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행위는 아름다움과 연결되는데, 인간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영적인 본능입니다. 예배의 아름다움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영성이 깊어 질수록 하나님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될때에 세상속에서 주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영적인 삶을 채워가실 것입니다.

토론토 큰빛교회를 섬기시며 20여년간 북한을 오가며 북한 주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셨던 임현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2015년 1월 평소와 같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는 최고존엄 모독죄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 받고 북한에 억류되셨다가 2년 7개월 9일 동안의 종신 노동역을 하며 독방 생활을 하다가 풀려났습니다. 수감된 첫날밤 두렵기도 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질 않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묵상하게 하시며 예수님처럼 억울한 재판을 받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깨닫게 하시니 성령님께서 억울한 마음을 풀어 주시는데 ‘하늘의 평안함’이 임하더랍니다. 그리고 첫날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풀려지게 될 것을 보여 주시더랍니다. 끝이 없는 노동 종신형이 시작된 둘째날 아침에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지는데 디바인 스케쥴이라 말씀 하시더랍니다. ‘이제 네게 거룩한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마음을 주셨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2년 7개월 9일 동안 캐나다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요셉처럼 북한감옥으로 부터 구출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분의 일을 해나가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린 성도들 곁으로 돌아오신 목사님을 뵌 그날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생하신 흔적이 그분의 모습에서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단위에 서신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두려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 앞에서는 이길수 없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배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면 아름다워 보여도 그 예배는 결국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 영적인 갈망을 추구해야 합니다. 보스턴에는 분야별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두도록 깨워야 합니다. 군대에서 총기를 0점 조준하듯이, 창조성을 주시는 분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창조적 행위와 능력은 껍데기일뿐이며 철저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의 능력과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움하면 우리는 외적인 아름다움, 보여지는 풍성함을 생각하는데, 내면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에 맞춰 기도했습니다.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에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을 divine office라 불렀습니다. 거룩한 기도, 거룩한 일은 예수께서 오시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새해에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를 누리길 원합니다.

찬송가 143장에 보면 ‘웬말인가 날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죄로 부터 스스로 구할 능력이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되면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벌레와 다른 것 없음을 보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넌 벌레가 아니란다. 존귀한 나의 자녀야.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감리교 예배학자 돈 셀리어스는 그의 책 ‘거룩한 예배’에서 예배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자기주심’이기에, 인간이 자기만을 드러내려는 정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동떨어져 진다고 지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하고,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며, 거룩성을 채워가는 신적 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2.어린양 되시는 예수가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펴셨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릴때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특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유월절 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에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대문 기둥에 발랐더니 언약의 피로 인해 죽음의 천사가 유대인의 집을 지나치고, 그 흔적이 없는 이집트인들 집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예배’의 광경을 왜 보게 하셨을까요? 하늘의 영광을 본 자라야 이땅의 수고와 슬픔을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경험하게 될 때 세상의 실패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늘의 예배’의 주인은 오직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도요한 당시에는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황제의 보좌는 통치, 권위, 심판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하늘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권위 마지막날 심판과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예배’는 하나님의 보좌에 ‘죽임당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죠. 주님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드려야 할 예배의 본질입니다. 예배는 하늘과 땅을 잇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그리스도를 향한 관심이 시들어져 간다면 예배의 본질이 사라져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를 하늘 높이 올리셔서 하늘의 보좌에 그리스도를 앉히셨습니다. 그러니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고 구원의 계시가 풀려진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로마 황제 도미티안을 ‘주’ 라고 부르라는 명령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정한 날에 ‘사자’와 같은 권세와 권능으로 오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이땅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과 일체된 사역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현실의 두려움을 이기고,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게 도와주십니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과의 오랜 싸움으로 고통과 실의에 빠져 몸져 누워 있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남편의 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하고 묻자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라고 슬피 울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다음과 같이 나무랐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돌아가시지 않소.” 그러자 카타리나는 이렇게 맞받아치며 말했습니다.“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당신의 오늘 이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같이 맥이 빠져 누워 있지 않습니까?” 이 말에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시를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한해의 마지막 예배에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은 무엇이며, 잃어버린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믿음의 대로, 은혜의 대로, 시온의 대로를 걷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어린양을 잠잠히 털 깍는 자 앞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지만 요한 계시록에서 어린양은 더이상 종으로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의 권위를 이어받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어린 양’은 이제 힘없고 약한분이 아닙니다. ‘어린 양’ 되시는 예수의 피만이 모든 백성과 모든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기도와 찬양은 예배의 향기입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세상은 지금도 전쟁과 공포, 전염병, 분쟁과 다툼, 불의와 부정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성도들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마주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허락하실 새하늘과 새땅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으로 부터 억압당하고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 하는 성도들에게 사도요한이 바라본 ‘하늘의 예배’는 용기와 위로였습니다. 어려움이 없던 시대는 인류 역사속에서 없었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우상들과 핍박은 늘 존재했지요. 그러나 끈질긴 기도는 노년의 때에도 청년의 마음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 안에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하늘의 백성들은 예배의 영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주어진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매일마다 구원의 말씀이 계시되어야 합니다. 광야에서도 절망의 긴 터널일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최후승리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깊은 구렁에서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영국 속담에 “사랑하면 천 개의 눈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 개의 눈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기도의 향기입니다. 기도는 잠자는 예배를 깨어나게 합니다. 금대접 위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의 향기 외엔 처해진 시대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본질을 강화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찬송하게 하시려고 인간을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유진피터슨은 ‘이 책을 먹으라’라는 그의 책에서 거룩한 공동체는 개인의 체험을 성경의 권위 아래 두어야 한다. 성경을 다시 중심부로 이끌어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있게 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큰 복은 설교를 준비하며 성경의 말씀을 매순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날마다 저의 부족함을 비추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도 케임브리지 교회가 44년동안 걸어 온 것처럼 말씀과 기도, 새노래 위에서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2.11.22 주일설교

(성탄예배 I 부 메세지)

크리스마스의 빛

The Light of Christmas

히브리서 1:1-7

유민용 목사

1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여러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 아들을 통해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의 모습이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굳게 붙들어 보존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4 ○ 그리하여 그 아들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되셨으니, 곧 천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5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또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 곧 자기 맏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7 또 천사들을 두고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천사들을 바람처럼 부리시고,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라고 하였습니다.(쉬운말성경)

1 Long ago God spoke many times and in many ways to our ancestors through the prophets. 2 And now in these final days, he has spoken to us through his Son. God promised everything to the Son as an inheritance, and through the Son he created the universe. 3 The Son radiates God’s own glory and expresses the very character of God, and he sustains everything by the mighty power of his command. When he had cleansed us from our sins, he sat down in the place of honor at the right hand of the majestic God in heaven. 4 This shows that the Son is far greater than the angels, just as the name God gave him is greater than their names.5 For God never said to any angel what he said to Jesus:“You are my Son.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a]”God also said,“I will be his Father,and he will be my Son.”6 And when he brought his supreme[c] Son into the world, God said, “Let all of God’s angels worship him.”7 Regarding the angels, he says, “He sends his angels like the winds, his servants like flames of fire.”(New Living Translation)

콜로라도의 달빛(Moonlight On The Colorado)이라는 1930년도에 지어진 미국 민요가 있습니다. 콜로라도는 고지대이고 공기가 맑아서 배 위에서 다른 불빛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달빛이 밝다고 합니다. 그 밝은 달밤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쓴 노래 가사이지요.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 마음 그리워 / 저 하늘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 물결 위에 비치네 /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 콜로다로의 달 밝은 밤을 / 나 홀로 걸어가네”

1930년에 로버트 킹(Robert A. King)이 작곡한 곡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가 콜로라도 강을 비추는 달빛 아래 향수에 젖어 그리운 마음을 담은 노래말입니다. 1937년 박영호 선생이 번안해서 이미자 씨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세상의 곳곳에 정착하며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요. 베들레헴 말구유를 비친 그 빛은 오늘날 세상 곳곳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분의 교회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브리서의 배경을 보면 저자에 대해서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2세기 동방 교부 오리겐은 저자에 대해서는 ‘하나님만 아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걷는 길을 아시고, 마음 깊은 곳까지 다 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밀실에도 주님의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꺼진다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인공적인 불빛을 모두 제거하고 세상에 어둠이 내린다면 지상에서 가장 밝은 빛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빛은 하늘에 있을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빛으로 오셨습니다.

1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여러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2 이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시대 구약의 역사를 보면 여러시기와 단계를 거쳐 선지자들에게 점진적으로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만 그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구원의 그림을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마지막 시대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살아가는 시간은 이미 시작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춰져 있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고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은 주의 시간으로 볼때에 그때는 속히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시간안에 우리의 고난도 속히 지나갈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으니 우리의 잠깐의 고난은 속히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이 빛이라 자처하며 살아갑니다. 빛을 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이성으로만 빛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몽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머리와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어둠만 짙어 질 뿐입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빛이 되려는 믿음은 결국 어둠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히브리서의 1차 독자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을 했는데 시대적으로 과격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유대교는 로마 정부가 허가된 종교였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64년 폭군 네로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대박해가 시작되었으니 유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강렬한 요구를 받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성도들은 유대교의 울타리 속으로 다시 들어가가만 하면 다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배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자기의’로 섬기는지 아닌지 구별도 안됩니다. 그러니 상처 받았다고 해서 ‘내뜻’데로 안 된다 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까지 저버리면 안됩니다. 믿음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심을 굳게 붙들고 최후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성탄예배로 드리며 그리스도로부터 온 빛이 우리의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깨트리고 우리의 지성을 파고 들어와 식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안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전에는 혼돈과 공허함, 분쟁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고 (사 9:2) 말씀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밤하늘의 별을 따라 예수께 경배하던 때에도 세상에는 불의와 폭력, 헤롯왕의 압제와 두살 미만의 유대인 아이의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시대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은 공허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희망의 주로 오신 분을 모르고 깊은 절망과 흑암속에 있지요.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나간 젊은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갔지만 한순간에 주검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은 공포, 두려움, 혼돈과 깊은 어둠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한 실제적 고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열고 나가게 된 이들의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생명의 빛이라 말씀합니다. 그 빛이 비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은 공허함과 깊은 절망뿐입니다.

‘하늘 소망’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제레미 워커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라는 그의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 생을 시작하지 않는다. 타고난 혈통이나 유산이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사도요한도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지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요1:13) 하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한줄기 빛의 은총입니다.

2.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의 모습이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굳게 붙들어 보존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여주는 분이십니다. ‘형상’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라크테르’는 ‘각인’이라는 뜻인데, ‘같은 모양의 복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대로 드러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실로암 연못에서 날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대부분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시다”(요10:3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람어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아빠’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아빠’라는 호칭에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담겨 있지요.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신데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10:30) 말씀하셨고,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의 장례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장례식 앞에서 손님으로 서 있지 마십시요. 무늬만 그리스도인들로 살면 안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주의 말씀과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고 예수와 함께 걷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그분의 장례식장에서 서로 헐뜯고 분쟁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아픔도 주님이 죽으심으로 함께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벗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인격의 품이 넓어졌는가’입니다. 몸된 교회를 위해 내가 구경꾼이 아니라 ‘부르심 받는 자로 헌신하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롬 8:34)

 그러나 사단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도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부터 멀어지도록 위장해서 다가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마치 이성이 진리임을 믿게 했고, 문명의 발달로 인해 과학과 의학은 창조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돈은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가운데 허덕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고,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문명의 발달은 편리하게 해줄 뿐이지 하나님의 창조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의 결과는 죽음이고 파멸일 뿐입니다.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그의 마음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것을 보고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더 옳다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주인은 주님이 아니라 물질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그의 말은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훔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제자들도 메시아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위세를 높여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게만 들릴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이 되십시요. 성도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과 깊은 하나됨을 이뤄가게 하십니다. 성도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기에 죄를 반복적으로, 무감각하게 지속하지 않는것입니다. 죄가 점점 더 힘을 잃고 은혜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삶은 없습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 온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4 ○ 그리하여 그 아들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되셨으니, 곧 천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5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또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 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구약성서에 하나님을 가르키는 명칭은 많습니다. 그리스어로는 Theos, 히브리어로는 엘(EL)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엘욘, 엘샤다이, 엘올람, 엘로힘 등 많은 이름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고대 히브리 사람이 하나님에게 붙인 명칭들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이름을 밝힌 구절은 한구절도 없습니다. 그분은 존재 위에 존재이시고,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이름이 없어야 맞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름으로 규정하면 이름 안에 가두는 존재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분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시에는 천사숭배사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천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반응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를 수종하는 영입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실때에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을때 (마태복음 26:3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천사를 보내셔서 힘을 더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3). 천사들이 예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천사는 경배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성탄절이 기독교의 기쁨의 축제가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축제이다 보니 기독교인의 성탄절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특별한 경배의 의미인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보다 해피홀리데이(HAPPY HOLYDAY)인 세속명절로 여겨집니다. 성탄절은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보내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열으신 문을 헤롯왕은 막을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탄생하시며 마지막 시대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은 사람에게는 열린 새로운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지만 만민의 깃발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인데요. 어느날 한 기자가 런닝머신에서 운동하다 사망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다가 비극적 사건을 초래한 여인의 사망이라 제목으로 기사를 쓰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며 오늘날 사람들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죽음을 당한 외모 집찹증에 중독된 여인들 비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사인은 그 여인은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가 아파서 장기를 이식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죠. 그 여인은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자신의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런닝머신 위에서 목숨을 걸고 뛰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결국 죽게 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죄와 고통의 자리에 오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크리스마스 불꽃으로 삼으셨습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물건을 찾으려면 불부터 켜야 합니다. 세상에 참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기사와 사건들에 현혹되지 마십시요. 믿음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사실적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흠뻑 빠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자기를 포장하고 내 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마시고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7 또 천사들을 두고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천사들을 바람처럼 부리시고,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꽃을 드러내는 전시품일 뿐입니다. 보통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소멸 시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 가운데 임한 불꽃은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불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모세의 인생 120년 중에 성경은 떨기나무 앞에서 부르심을 받는 80세 이후의 삶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르시기 위해 80년 세월을 보내게 하십니다. 자기를 죽여야 하는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성도들도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경찰이 외부인이 집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해서는 집에 있는 보석에 눈이 멀고, 귀중품에 눈이 멀어 탐욕으로 자신의 것을 채우고 있다면 부르심을 잃어버린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흰색 촛불이 켜지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망망대해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전쟁과 경제의 불안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불안하고 공허해 합니다. 성탄의 주인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빛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빛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촛불에 세번째 불이 켜졌습니다. 성탄의 빛이 화해와 사랑, 회복과 나눔의 빛이 될수있도록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빛의 삶을 잘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