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2026 송구영신 예배











송년주일
예수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
Jesus is not ashamed of us
히브리서 2:10-11, 17-18
10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완전케 하셨는데,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
1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자기 형제인 우리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형제인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18 결국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쉬운말 성경)
10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was made, chose to bring many children into glory. And it was only right that he should make Jesus, through his suffering, a perfect leader, fit to bring them into their salvation. 11 So now Jesus and the ones he makes holy have the same Father. That is why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his brothers and sisters… …
17 Therefore,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made in every respect like us, his brothers and sisters,[h] so that he could be our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before God. Then he could offer a sacrifice that would take away the sins of the people. 18 Since he himself has gone through suffering and testing, he is able to help us when we are being teste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송년(送年)주일입니다. 지난 한해도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매일 드렸던 새벽기도회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등불이 되었고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2025년 사순절 새벽 기도회는 ‘섬김의 십자가’란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코비드로 인해 우리의 신앙생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듯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주의 뜻을 따라 함께 걸으며 인도되는 길이었기에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금요찬양 예배를 통해서는 봄 학기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를, 가을 학기에는 야고보서 강해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에서 무신론자 철학 교수는 수업 시작전 80명의 수강생들에게 종이 위에 ‘신은 죽었다’라고 쓰라고 강요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평하지만 학점을 받기 위해 ‘신은 죽었다’라고 적었지만 조시라는 주인공은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화가 난 교수는 3주 동안 조시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을 과제를 주고 증명하지 못하면 낙제 시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의 인내로 복음을 전하고 결국 무신론자 교수는 논쟁에서 패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조시는 과제를 풀어낸 것이 아니라 진리의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히브리서 2장 18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2:1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진리 보다는 거짓을, 사랑과 용서보다는 권위와 압박의 시험에 부딪히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 길을 먼저 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시험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는 위축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죽음의 위협에서 풀려지도록 자신이 온 몸으로 죽음을 껴안고 자기 안에 받아 들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예수께서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가 주는 고통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죄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죄의 즐거움이 우리를 여전히 유혹하지만 성령께서는 죄의 쾌락과 영적 싸움을 하게 하십니다. 죄는 지금도 기회만 나면 틈을 타고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하지만 성령은 죄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말씀의 빛으로 우리 안에 죄를 드러내셔서 죄의 열매를 제거해 나가는 일이 어렵거나 두렵지 않도록 한없는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덮어 주십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율법과 형식의 경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을 하나의 형제로 묶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도해도 여전히 응답이 보이지 않을때가 있고, 선하게 살려고 애써도 고난과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의 거절감이나 마음에 남은 상처들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죄성은 우리를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살아가게도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 속에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섬김의 자리에 서고, 오래 교회에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괜찮은 신앙인으로 인식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인간의 신념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신념 위에 세운 신앙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결핍을 느끼게 되고 복음이 아닌 판단과 기준으로 불평하게 합니다. 그 불평이 기쁨보다 커지니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스스로의 신념으로 변화가 될수 있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확신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굴곡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지니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복음 안에서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능력이 우리를 다시 은혜의 자리로 데려다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현실속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다 여기지 않으시며 형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결핍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걸음을 걷다 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또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세상오시던 역사적 상황도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로마제국은 칼과 창으로 주변 민족들을 다스렸습니다. 헤롯 왕의 위협속에서도 동박박사들은 특별한 한 별을 보고,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별을 따라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사들의 순종과 믿음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도전을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무엇인지, 성경은 마리아와 요셉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예수를 뱃속에 품고 수태해야 했던 마리아는 사회적인 수치와 오해와 말없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도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주의 천사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마리아를 보호해 주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에게는 마리아 데려오는 일이 부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도 성령으로 수태된 아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세상이 알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께서 이렇게 오셨습니다. 혼란스런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오해 한가운데로, 부끄러움이 아닌 사랑을 안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연약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주저함없이 가족으로 대하시며 “너는 나의 형제요 나의 친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의 감추어진 보석 중 하나라고 불립니다. 말씀 앞에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서 지쳐 있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되어 버려 순종이 아니라 나의 열심으로 하다가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섬김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시기보다, 이 자리에 나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왜 이 자리에 있게 하시는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 뿐입니다.
함께 회복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속에도 주님의 모습이 조금씩 배어 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문제와 우리의 신앙의 길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주님이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형제 된 우리를 회복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때, 앞으로 이루어질 몸의 부활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시편34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바라보고 그 삶을 닮아가려고 할 때,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세상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정이 들고 익숙해지듯 우리 삶에도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삶을 닮아가고 따르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는 다른 가치와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외롭고 힘들때가 많지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함께 걸으며 함께 회복하고 격려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함께 도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믿음 생활이 종교적 열심으로 멈추어 있거나 주님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마다 이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러게 살순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알지만 여전히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형제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진정한 새해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는 넘어지고 현실에 매여 세상의 유혹에도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마음이 조급하여 요동칠 때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일어서도록 기다려주십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주저하고 버틸 힘이 없어 낙심했습니다. 삶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고 가장 두려운 것은 주님 없이도 예배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고 자녀삼아 주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회복하며 걸을 때 세상과 다른 가치속에서도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이 아파하고 눈물 흘려야 했던 순간 조차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거룩한 여정은 참 감사한 길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고 주님의 마음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삶의 다른 조건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이 진리를 깨닫는 귀한 은혜의 삶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탄 :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Christmas — God Has Come to Us
누가복음 2:10–14, 마태복음 2:10-11
눅 2:10 그러자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이 소식은 모든 백성에게 아주 큰 기쁨이 될 것이다.” 11 오늘 밤,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의 구주가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뵙게 되면, 그분이 바로 주님이신 줄 알아라.” 13 그때 갑자기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쉬운말 성경)
10 but the angel reassured them. “Don’t be afraid!” he said. “I bring you good news that will bring great joy to all people. 11 The Savior—yes, the Messiah, the Lord—has been born today in Bethlehem, the city of David! 12 And you will recognize him by this sign: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snugly in strips of cloth, lying in a manger.”13 Suddenly, the angel was joined by a vast host of others—the armies of heaven—praising God and saying, 14 “Glory to God in highest heaven, and peace on earth to those with whom God is pleased.” (New Living Translation)
마2:10 박사들은 그 별이 멈추어 선 것을 보자, 뛸 듯이 무척 기뻐하였다. 2:11 박사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었다. 박사들은 아기에게 엎드려 절한 후,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쉬운말 성경)
10 When they saw the star, they were filled with joy! 11 They entered the house and saw the child with his mother, Mary, and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him.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 chests and gave him gifts of gold, frankincense, and myrrh. (New Living Translation)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세상의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전하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적인 사건이며 예언의 성취입니다. 로마 황제의 인구조사 칙령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호적 등록을 위해 이동했고 이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예수의 탄생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 황제의 칙령까지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찬송하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눅 2:14)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삶에도 참 많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힘든 순간 앞에 서보니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심을 알게 되었고, 믿음이 단단하다 여겼지만 속사람은 참 많이 흔들렸고, 기도하기보다는 내 경험을 의지했으며, 예배보다는 내 삶이 더 중요하여 분주한 날이 더 많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나의 삶만이 너무 고단하고 외롭다 생각했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홀로 버티며 눈물 흘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까지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성탄의 참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당시 예수님의 탄생이 헤롯왕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목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 찾아가 유대인의 새로 태어난 왕에게 예를 갖추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헤롯왕의 마음은 불안해 졌습니다. 그에게 아기 예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일뿐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으면 나도 함께 경배하려고 하니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예배하려는 마음이 아닌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동쪽의 한 별이 나타나 동방의 박사들을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인도합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나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했습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개인의 삶의 안정과 성공을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세상은 개인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소유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한 구조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빛을 남겨 두셨습니다. 치열한 세상속에서 죄로 인해 메마를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위대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합니다.
바울은 권면합니다.”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영적 예배입니다.” 왕권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내면은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치열한 현실속에서도 마음을 새롭게 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세상 풍조를 본받지 말고 물질이 왕이 되버린 사회속에서도 거룩한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헤롯왕은 예수를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안에는 자기의 권력을 지키려는 욕심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심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도 매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세상의 유혹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유향은 고대시대 신께 드리는 제사의 용도에 쓰이는 향수입니다.
이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구약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인간을 압도하는 경험일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그렇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닫혀 있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슬픔과 인생의 불확실함을 기쁨과 평안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임재의 목마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 거룩함이 살아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몰약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몰약을 시체에 발라 방부제로 썼습니다. 수천년 전에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나의 것으로 경험되어질때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건강을 잃고 난 후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고, 늘 곁에 있던 소중한 이들이 떠나고 난후에 그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주의 죽으심은 우리의 믿음을 다시 살리는 힘이 되고 사랑할 수 없는 본성을 지닌 우리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외침은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겪는 수많은 갈증과 마음의 상함, 불과 같은 시련속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압도하는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전에는 후회하고 완고한 의지로 이겨내려고 했다면 주의 십자가는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주의 손에 붙잡힌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탄의 기쁨, 그리고 우리의 예배(προσκυνέω)
예배라는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온 몸으로 전해져 손에 입 맞추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프로스퀴네오는 엎드려 경외를 표현하는 행위로, 나의 존재를 낮추는 예배를 뜻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는 예배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히 서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 높아진 예배는 현실속에서 금방 무너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느헤미야 시대, 40일 동안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 앞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듣다가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때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만 느헤미야는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예배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슬픔을 지나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을 나누고 베풀며 모인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은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의 자리, 교회와 가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은혜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매년 우리교회는 성탄 예배를 드리며 세례식과 입교식을 거행합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적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기 전 부모에게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 세상속으로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정에 맡기신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고, 가정에서 부터 삶을 통해 기도와 예배의 본을 보이겠다는 결단의 자리입니다. 세례받는 아이들이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깊이가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함께 하는 믿음의 지체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도와 사랑으로 동행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시간입니다.
성인 세례를 받는 이들과 입교하는 이들은 주님을 따르겠다는 믿음의 고백과 결단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신앙 공동체안에서 거룩한 길을 시작하며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믿음을 공동체 앞에서 확인하고, 초대받는 시간입니다. 부서별 성탄 발표회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행하신 성탄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느끼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주를 기뻐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시며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함께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떡을 떼어 나누셨고 사람들을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쁨의 고백과 감사의 모양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간절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로 흘러갈 것입니다. 성탄은 단순히 연말에 찾아오는 이벤트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온 기쁨의 소식이며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평화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 기쁨을 누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 기쁨의 누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지만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의 빛을 따라 걸으며 흔들리는 길 위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한주간 들판의 목자들 처럼 깨어서 주님의 성탄의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주시는 성탄의 은혜가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작은 나눔과 격려, 기도의 손길을 통해 홀로 있는 외로운 이웃들의 삶 속에 전해지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 움직이는 증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