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3 주일설교

(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17)

우리 안에 시작된 선한 일

A Good Works That God Began Within Us

빌립보서 1:3-8

김태환 목사

3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또한 늘 기쁨으로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5 여러분은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늘 도움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들은 그 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도 그러합니다. 6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그 날에 그 모든 선한 일을 확실히 완성하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을 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제 마음속에 늘 살아 있습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나 복음을 지키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그 모든 시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8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쉬운성경)

3 Every time I think of you, I give thanks to my God. 4 Whenever I pray, I make my requests for all of you with joy, 5 for you have been my partners in spreading the Good News about Christ from the time you first heard it until now. 6 And I am certain that God, who began the good work within you, will continue his work until it is finally finished on the day when Christ Jesus returns. 7 So it is right that I should feel as I do about all of you, for you have a special place in my heart. You share with me the special favor of God, both in my imprisonment and in defending and confirming the truth of the Good News. 8 God knows how much I love you and long for you with the tender compassion of Christ Jesus. (New Living Translation)

약 한 달 반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울 남연회에서 주관하는 은퇴식에도 참가했습니다. 제가 저의 은퇴식을 따로 알리지 않았습니다만, 우리 교회를 거쳐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가보지 못했던 남해 여행을 했고, 후배 목사들과 함께 동해 여행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과 또 눈부시게 발전한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모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져 우리 교회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교회를 섬겼는지, 지난 37년 간의 저의 목회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회 있는 대로 설교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신약성경의 핵심 말씀은 빌립보서 1:3-8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곳곳에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끈끈한 사랑의 관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절) “나는 늘 기쁨으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4절) “여러분은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도움을 주었습니다.” (4절)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해 왔습니다.” (5절) “여러분은 늘 제 마음 속에 살아 있습니다.” (7절)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여러분은 그 모든 시간에 나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7절)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8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8절) 우리는 이런 표현들을 통해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라는 사람을 통해 바울의 선교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습니다(빌립보서 4:18).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빌립보 교회를 대표해서 바울을 섬겼습니다(빌립보서 2:25).

이런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God began the good work within you, 6절)”라고 합니다. 자연히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 ‘착한 일’ ‘a good work’가 무슨 일일까 하는데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번역성경들이 있지만 NKJV이 이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God has begun a good work within us.”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시며,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은 어떤 일일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결코 우리 안에서 시작될 수 없는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혹은 하나님의 뜻, 삶의 목표, 사명, 하나님의 은혜, 이런 말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이것들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되었습니다. 맞습니까? 이런 가치들은 모두 우리가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을 믿을 때 형성되는 가치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 중심의 삶(Christ-centered life)’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4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My conscience is clear, but that doesn’t prove I’m right. It is the Lord himself who will examine me and decide).” 그리스도 중심의 삶은 내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혹은 하나님이 내 삶의 가치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대하여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세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 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My old self has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So I live in this earthly body by trusting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맞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by trusting in the Son of God(하나님의 아들을 신뢰함으로)’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은 매일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면서,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쪽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사시는 사람의 삶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꼭 우리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착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선한 일을 계획해 놓으시고 우리가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의 죄성(罪性, sinfulness)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삶이 변화되어야 ‘선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계 속에서 하고 계시는 일을 말합니다. 서기 1세기는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으로 펴져 나가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언젠가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1934)’라는 저서로 유명한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 영국)의 말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의 연구’는 토인비가 1934년에 집필을 시작해서 1961년에 마친 12권의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토인비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When a wooden boat carried the Apostle Paul from Troas of Asia Minor to Macedonia, it moved the center of the world from the birthplace of civilization to Mediterranean and to the European Continent (소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사도 바울을 태우고 간 (작은) 목선은 세계의 중심을 문명의 발상지로부터 지중해와 유럽 대륙으로 옮겨 놓았다).”

토인비가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 중요한 시기에 바울이라는 사람을 선택해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겼습니다. 누가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나의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된 나의 도구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할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사도행전 9:15-16) 왜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바울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바울에게 선교비와 선교에 필요한 물자를 전달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빌립교 교회에 대하여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고마운 마음을 빌립보 교회에게 보낸 편지 서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늘 도움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들은 그 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5절) 또 빌립보서 4:18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 준 선물 때문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선물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빌립보 교회가 그 시대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깨닫고 그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빌립보 교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가 바울을 도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교회들 중에 마지막까지 바울의 선교를 도왔던 교회는 빌립보 교회가 유일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 속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이 바로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이제 눈을 우리 자신들에게 돌리고, 우리 교회에게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는 분은 그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게 주신 시대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나무를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큰 그림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시작하시는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성장하도록 할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선한 일’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내 안에 시작되고, 자라고 있는 하나님의 ‘선한 일’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사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깨닫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라는 말은 어떤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어렵거나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 사람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주께서 지시하시는 길로 가며 주님의 명령을 지켜 주님을 가까이하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고 섬기시오(Love the LORD your God, walk in all his ways, obey his commands, hold firmly to him, and serve him with all your heart and all your soul).” (여호수아 22:5) “Draw near to God and He will draw near to you. Cleanse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야고보서 4:8)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어떻게 합니까?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니까 죄된 일에서 손을 씻고 손을 떼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싫어하시니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죄된 일에서 손을 씻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과 연결되어 있는 끈을 끊기 시작한다면, 그 시간부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친근하게 생각되고,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관계는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장하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는 말씀을 가슴으로 깨닫게 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사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1.29.23 주일설교

(새해 메시지3)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

God’s Mysterious Plan Revealed to Us

에베소서 1:7-11

김태환 목사

7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8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지혜와 지식으로 9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10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계획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쉬운성경)

7 He is so rich in kindness and grace that he purchased our freedom with the blood of his Son and forgave our sins. 8 He has showered his kindness on us, along with all wisdom and understanding. 9 God has now revealed to us his mysterious plan regarding Christ, a plan to fulfill his own good pleasure. 10 And this is the plan: At the right time he will bring everything together under the authority of Christ—everything in heaven and on earth. 11 Furthermore, because we are united with Christ, we have received an inheritance from God, for he chose us in advance, and he makes everything work out according to his plan.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에베소서 본문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A.D. 62년경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에서 대 화재가 일어난 것이 A.D. 64년이니까요. 크리스천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기 2년 전에 쓴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두 5절인데요.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7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8절), 셋째로,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9절), 넷째로, 그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10절), 다섯째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오래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11절)입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우리(we)’라는 말은 바울과 동시대를 살던 크리스천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히브리서 4장 말씀을 읽다가 놀라운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와, 이런 말씀이라니!”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Since those who first heard this good news failed to enter because they disobeyed God, God’s rest is there for people to enter…….God’s promise of entering his rest still stands, so we ought to tremble with fear that some of you might fail to experience it(구원의 소식을 처음 들었던 그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가 안식을 누릴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그러므로 모두 조심하여 우리 중에서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4:6, 1)

처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 아닙니까? 만일 처음에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순종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갔더라면 오늘 우리에게 안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오늘 읽은 에베소서 말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2,000년 전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신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 그들을 도구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실에만 집중했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제가 2주 전에 소개했던 톰 라이트(N.T. Wright)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하지 못한 덕분에 오늘 우리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말이 어려울 수도 있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God’s mysterious plan)’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로마서 11:13-27 말씀을 읽어 보시면 저의 오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2,000년 전에 자기와 동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이 말을 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 우리에게 이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대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때에 살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껴야 합니다. 시대적이 사명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바울은 “At the right time he will bring everything together under the authority of Christ(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모이게 할 것입니다, 10절)”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때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the right time’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인 사명’을 느끼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로마서 12:2 말씀을 보십시오. “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 but let God transform you into a new person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Then you will learn to know God’s will for you, which is good and pleasing and perfect(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말은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라는 말입니다. ‘새 사람(a new person)’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꼭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의 상대적인 말은 ‘옛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 사는 방식은 ‘세상의 일(earthly things, NIV, 빌립보서 3:19NIV)’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하늘의 일(heavenly things)’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땅의 일’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일’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라는 유대의 랍비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계십니까? “So don’t be surprised when I say, `You must be born again.” (요한복음 3:7) ‘거듭나다(born again)’라는 말이 희랍어 원문에 ‘γεννηθῆναι ἄνωθεν (gennēthēnai anōthe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γεννηθῆναι’이란 말은 ‘to be born(태어나다)’이라는 뜻이고, ‘ἄνωθεν’이란 말은 ‘again(다시)’ ‘from above(위로부터)’ 혹은 ‘from God’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라는 말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ἄνωθεν’을 ‘다시’라는 뜻으로만 알았던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반문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8, 현대어 성경)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if anyone is in Christ)’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새 사람’은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뀐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So we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At one time we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we know him now).” (고린도후서 5:16) 이 말씀에서 ‘a human point of view(인간적인 관점)’라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엔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paradeigma)’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토마스 새뮤얼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이라는 과학자가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과학 혁명의 구조, 1962)’라는 책을 썼는데, 그가 그 책에서 처음으로 ‘paradigm shift’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책을 쓸 당시 쿤은 UC Berkeley의 교수로 있었습니다. 쿤은 그 전에 하버드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톤에서 가르쳤고, 마지막으로 MIT에서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많이 읽혔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영문 철학서라고 평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임(TIME)’에서는 이 책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100권의 도서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그만큼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이 20세기 후반 지성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겠습니다.

쿤은 탁월한 학문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버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학부에 과학사(The History of Science) 과목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는 촉망받는 인재로 주목받고 있던 쿤에게 과학사 강의를 맡겼습니다. 그 때가 1948년, 그의 나이 26살 때였습니다. 이후 쿤은 1956년까지 8년 동안 하버드에서 조교수 자격으로 과학사를 강의합니다. 그 때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과학 혁명의 구조)’를 썼습니다. 쿤은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쿤 덕분에 ‘패러다임’ 혹은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화면을 한번 보십시오. ‘패러다임’은 사물을 보는 방식, 관점, 혹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해석과 판단의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이 관점과 틀이 바뀐 것입니다. 다시 이 화면을 한번 보십시오. 병아리가 막 알을 깨고 나온 그림입니다.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병아리는 사방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껍질 속에 갇혀 있던 병아리는 세상은 캄캄하고 답답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자기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패러다임 쉬프트’입니다. 또 이 사진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어항에 금붕어 네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먹이가 생기면 서로 먹으려고 싸워야 하고,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금붕어 한 마리가 자기가 살고 있던 어항을 박차고 뛰어올랐습니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큰 어항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서 뛰어오른 것입니다. 큰 어항에 무사히 뛰어들 수 있다면 이 금붕어는 자유로운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뛰어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따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더 이상 그 어떤 사람도 ‘세상적인 관점(a human point of view)’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고했습니다. 그에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의 변화,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통적인 용어로는 ‘회심(conversion)’입니다. 청년들에게는 ‘회심’이라는 말보다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이 훨씬 마음에 와 닿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 이후 바울의 삶이 어떠했는지 한번 보십시오. 그는 회심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갈라디아 1:18). 그리고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생활을 했습니다(사도행전 9:30). 그 기간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9:23). 제자들에게 외면당했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외면당했습니다(사도행전 9:26). 금붕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앞에 보이는 어항으로 뛰어오른 것처럼 ‘패러다임 쉬프트’를 원하는 사람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무릅쓸 각오를 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패러다임 쉬프트’을 경험하지 못하고 예전에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자기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 절반도 누구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생각나면 네 배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9:8). 삭개오에게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그의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의 것을 나누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Matthew Fox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system is not working. That is how a paradigm shift begins: the established way of seeing the world no longer functions(기존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이 패러다임 쉬프트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곧 기존의 세상을 보는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사람’에게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입니다(And God has given us this task of reconciling people to him. So we are Christ’s ambassadors).” (고린도후서 5:17, 20) 실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읽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시대적인 사명’을 느껴야 합니다.

“너희의 직분은 세상에 나가 화목의 메시지를 너희들의 삶을 통해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이 ‘시대적인 사명’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까? 이 사명의 말씀을 외면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에 이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변화되어 ‘새 사람(a new person)’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대사로 세상에 내보내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마이크를 입에 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2월 12일 주일 예배 안내

교회 밴 운행 스케줄

교회 밴 두 대를 올스턴 방향과 보스턴 방향으로 정상 운행합니다. 아래 운행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밴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제 시간에 나가서 밴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업뎃

예배 동시통역 시스템

예배 동시통역을 들을 수 있는 QR Code입니다. 대면 예배에서도, 온라인 예배에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개인 이어폰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http://bitly.ws/xUgLh
ID: 617 491 0855 / Passcode: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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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안내

1. 현재 대면(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병행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1) 사전 등록 없이 11시 대면 예배(현장 예배)에 교회로 오시면 됩니다.

(2) 온라인 예배 중계는 유튜브에서 FKCC Media Ministry를 찾으시거나, 교회 앱에서 Media Ministry 메뉴를 누르시면 됩니다.

(3) 대면예배 때 가족들은 같이 앉으시면 되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목회부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예배 중 매스크를 착용하시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5) 예배 후 친교시간에 간단한 음료수가 제공됩니다.

(6)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염려나 건강 상의 이유 외에는 대면예배에 나오시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2. 1부 예배

(1) 주일 오전 9:30분

(2) 장소: 소예배실

(3) 대상: 주일학교 교사들과 주일에 일찍 예배 드려야 하는 분들

3. 주일학교, 중고등부 예배

주일 오전 11시

4. 새벽기도 안내

새벽기도 온라인(Zoom)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주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6시에 드리고 있습니다.

https://bit.ly/3E2X4gi
Meeting ID: 884 280 6263
Passcode: 392766

5. 온라인으로 헌금하는 방법

1) Venmo: FKCC- (뒤에 -를 붙임)

송금 후에 Online Offering Verification Form을 작성해서 재정부로 보냅니다. 교회 웹사이트나 교회 앱에서 간단히 작성하여 ‘send’하면 됩니다.

2)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

Rev. Tae Whan Kim
100 Rivers Edge Drive Unit 212
Medford, MA 0215

6. 온라인 헌화 신청하는 링크

https://form.jotform.com/fkcc/calendar

7. 교회 앱 다운로드 링크

Apple Store

https://apps.apple.com/us/app/fkcc/id1364772616?mt=8

Google Play Store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lgwithj.FKCC